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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잠’을 깨우는 지도자의 양심과 책임

fabiano 0 1171  
도덕과 책임정신이 탈색된 무기력증 사회
역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역사 속에는 무수한 꿈과 신화를 바탕으로 미래의 통찰력이 살아 숨쉰다.
따라서 자칫 자신의 역사를 폄훼하거나 신뢰성을 훼손한다면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하게 된다.

얼마 전 일본 고고학계에서 자신의 고대 역사를 끌어 올리려고 선사시대 유적을 가짜로 묻은 사기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 되지 않아 탄로나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은 어지간한 유물로 자신의 고대 역사를 끌어올리려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평가받기 어렵게 되었다.

이와는 관점을 달리하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마의 위대함이나 역사적 가치는 그동안 인간의식이 서양 중심의 세계관과도 관계가 있었지만 그들의 귀족들, 특히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에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전쟁에 나가 먼저 죽었으며, 그들의 부를 제공해 주는 민생의 삶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상징물과 왕궁을 짓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 전역에는 공공의 시설 이외에는 개인적 역사 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로마는 이집트 등 다른 고대 및 중세, 그리고 동양의 여러 나라와 확실히 구분된다.

또한 그들은 모든 시스템을 민족과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서로 소통하고 개방했으며, 철저히 실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고 자신들의 제국을 인간가치 중심으로 키워 나갔다. 이점에서 우리의 고대 국시(國是)였던 고조선의 단군 왕검이 제시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 즉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상생·소통·관용
배려’의 정신과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 가치는 어느 순간 자기모순, 승자독식, 검은 카르텔, 책임 회피, ‘그들만의 이익 챙기기’로 변질되고 말았다. 법을 어기고도 그것을 범죄행위가 아닌 일순간의 실수와 재수 없이 걸린 것으로 치부하고, 또한 얼마 있지 않아 사면이라는 대단원의 찬란한 장막으로 치장하고 거리와 정치일선을 활보한다.

공무원들도 정책의 모순과 아집으로 엄청난 국민의 피를 낭비하고서도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정권 탓, 남의 탓, 국제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방관자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권위에는 악착같이 집착한다.

중국은 자신만의 춘추필법으로 역사를 재국성하기로 정평이 난 집단이다. 여기에 일본은 항상 중국의 입장에 동조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일본이 한국의 역사적 가치보다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인류 사회에 기여한 4대 발명품,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을 가장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역사적 기록이 중국에서 나타났을 뿐, 종이, 나침반, 화약도 다른 국가와 민족에서 이미 발명되고 활용되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소중히 간직하고 선전한다.

그러나 인쇄술은 금속, 목판 모두가 우리 한민족이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여기에서 기가 죽는다. 당연히 중국과 일본은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지금까지 혈안이 돼왔고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불국사 석가탑 출토 무구정광대 다라니경(无垢淨光大陀羅尼經)이 불국사 창건 무렵에 신라인들이 만들어 넣은 불경이 아닌 고려 초기인 11세기에 석가탑을 중수할 때 만들어 넣었을 수도 있다는 발표를 했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연히 중국과 일본은 환호했다. 그러자 금방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직 잘 모르며, 일부 학자를 통해 무구정광대 다라니경은 석가탑을 중수할 때 재안치한 것이라고 번복했다. 그리고 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물건 중에서 제석과 장수·통석 등은 이미 많이 훼손됐기 때문에 당시에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러면 정확하게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에 대해 정부기관이 앞장 서 분란을 조장하고, 언론은 검증없이 보도하여 그것을 시기하던 외국과 일부 식민사관과 사대주의에 젖은 역사학자들을 기쁘게(?)해 준 사실은 어찌하며, 그것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것도 아마 무리없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냥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이러한 무너진 정신자세로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책임이 있으면서도 죄가 없는, 재수없이 걸린 희생양이라는 정말 철면피적 오만을 우리의 지도자나 권력집단은 보여 왔던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책임소재를 복잡하게 만들고 줄거리를 복잡하고 애매하게 만들어 ‘그들만의 카르텔’, ‘검은 기득권‘을 향유하는 전문가적 기질을 가졌다는 것이 대부분 춥고 서러운 민생들의 관점이다.

부정한고 책임있는 스캔들이 터졌을 때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기술과 네트워크를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 습득해 있고 지금도 계속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민생들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비록 혐의는 벗었지만, 베스트셀러 번역이 대리 번역의 혼란에 휩싸이자 민생들은 분노했다. 검찰이 최종 판단했다기에 민생들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들은 얼마나 거기에 동조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민생들이 지식인과 권력집단을 바라보는 정확한 관점인지도 모른다.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 시비로 유명한 명문대 교수도 제자의 시를 자신의 작품으로 둔갑시키고, 교육정책의 부총리도, 대표적인 사학 명문의 총장도 표절 시비로 국민을 실망시켰지만 어느 누구도 이 사회와 민생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교도소에 가보라. 정말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평범한 그리고 가벼운, 또한 우연의 실수로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책임과 잘못을 솔직히 통감하면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형기를 마치고 있는 죄수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권력과 돈, 그리고 지식을 가진 집단들은 엄청난 잘못과 사회적 해악을 끼치고도 너무나 뻔뻔한 얼굴로 자신을 변명한다고 민생들은 분노하고 있다. 독성물질이 양식장에 공급됐어도, 헌혈한 피를 썩혀 하수도에 버려도,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전산망이 쓸모없이 폐기되어도 어느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또한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우리의 통치구조이고 언론의 잘못된 관행이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모순들을 우리 개별 민생들의 힘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다. 역사가, 예술가, 지식인, 정치인, 공직자, 자칭 사회적 지도자 및 유력 인사들의 오만과 염치없는 잠을 민생들이 앞장 서 깨워나가야 한다. 지금까지의 오만의 역사를 당연하게 즐기는 검은 기득권의 카르텔을 빨리 타파해야 나가야 한다.

우리는 빨리 21세기 선진사회의 기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이전에 하나의 예로, 왜 무구정광대 다라니경이 신라나 고려 때 제작됐을 가능성이 각각 반반이라면서 일찍 발표하고 보도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역사 왜곡과도 연계될 수 있는 미묘한 상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아직 묵서지편이 전체적으로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본을 전면 공개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왜 그러한 모순을 저질렀는지를 정부와 문화재청장은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정신이다. 역사가 바로 서야 정신과 도덕적 책임과 양심이 바로 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선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양심적 지도자가 어른으로 적극 나서는 사회가 바로 선진사회이다.

어른들이 이 사회의 구멍 난 잠을 깨워야 한다. 성숙된 양심, 함께하는 정의, 국가의 미래 비전에 대한 확실한 가치를 어른들이 일깨워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도 이러한 어른들의 교훈과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충정의 가치에 공감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어른은 존재하는가. 역사를 통하여 시대의 어른들은 그들 스스로가 책임지고 양심적으로 사회에 헌신한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서 나왔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영원히 역사가 주목하는 어른은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무구정광대 다라니경 보도에 나타난 스쳐간 역사적 시대인식이다.
[박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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