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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50 - 광복의 환희와 혼돈

fabiano 2 1637  

1945년 8월 15일은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을 한꺼번에 가져왔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와 함께 한국문단도 更生期를 맞는다.

그러나 뒤따른 남북분단의 비극은 문학계에도 단체의 양립과 문학이론의 대결로 분열을 초래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우는 林和, 金起林, 李箕永 등 좌익계 문인들은 <朝鮮文學家同盟>을

조직하였고, 순수문학의 이론을 표방하는 鄭仁普, 朴鍾和, 金珖燮, 梁柱東 등은 <全朝鮮文筆家協會>

를 결성하여 각기 문학자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문필가협회>에 참가했던 金東里, 崔泰應, 趙芝薰, 郭鍾元, 柳致環, 徐廷柱 등의 젊은 문학인

들은 따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여 <문필가협회>의 전위역을 담당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이들 문학인은 모두 반공 민족진영의 문학단체인

<韓國文學家協會>로 결집하게 된다.

이 시기에 <反民特委>에 걸린 李光洙는 근신하면서 회고록 <나의 고백>, 수필집 <돌베개>와

단편 <꿈>을 발표하고, 金東仁은 長短篇集을 발간했으며, 廉想涉은 <三八線>을, 朴鍾和는

詩集 <靑磁賦>와 장편 <民族> 등을 내놓았다.


그리고 젊은층의 金東里는 <穴居部族>과 <驛馬>를 黃順元은 <목넘이 마을의 개>와 장편

<별과 같이 살다>, 桂鎔默은 <별을 헨다>, 安壽吉은 <旅愁>등을 발표하여 창작의 일선에 나섰다.

한편 순문예지 <白民>과 <文藝>의 창간은 40年代 후반의 한국문단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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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8. 15. 해방의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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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드넓은 광야 2007.02.09 20:24  
홍사용의 장례식에 이광수의 조사 친필이 가슴을 애이게 합니다 그리고 전조선문필가협회 양주동박사 독립신문에 서재필박사등 그야말로 환희와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fabiano 2007.02.10 16:18  
환희와 혼돈의 시대에 살아온 그 분들의 모습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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