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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 있나요, 6월에 뜨거웠던 그대

fabiano 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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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 열사가 사망한 뒤인 6월18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열려던 ‘최루탄추방 국민대회’가 원천봉쇄되자 시내 곳곳에서 거리시위가 벌어졌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던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다.고명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 제공

87년 6월 우리는 광장에서 만났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과 상인들, 직장 문을 나선 ‘넥타이 부대’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청년·학생과 한 목소리로 ‘독재타도’를 외쳤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민주주의 쟁취’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온몸을 던져 싸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요구를 수용한 ‘ 6·29선언’을 얻어냈다.

하지만 그 맨 앞에 섰던 많은 젊은이들이 죽고 다쳤다.

사상 최대의 인파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7월, ‘6월의 아들’ 이한열은 국민 모두의 가슴에 묻혔다.



20년 전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시청 앞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부산 서면에서, 대구 동성로에서 어깨 걸고 만났던 사람들. 그들은 2007년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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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26일 전국 각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이 열렸다. 부산시 문현동에서 벌어진 국민평화대행진 도중 경찰이 다탄두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자 한 시민이 웃통을 벗고 “최루탄을 쏘지마라”고 외치며 경찰 저지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명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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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 장례식을 앞둔 7월7일 연세대에서 집회를 마친 학생들 가운데 병역을 마친 복학생들이 예비군복을 입고 정문을 나서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에 나선 경찰에 밀려 학교 안으로 대피하고 있다.고명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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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만의 시민들이 7월9일 이한열 열사를 애도하려고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씨의 영정을 앞세우고 세브란스병원을 떠난 운구행렬이 광장을 메운 시민들 사이로 들어오고 있다. 고명진 뉴시스 사진영상국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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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살인은폐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출정식을 마친 뒤 거리로 나선 이한열씨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동료의 품에 안겨 있다. 이씨가 사망하면서 6월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정태원 당시 로이터통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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