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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20세기-두번째 혁명과 전쟁

fabiano 0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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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 지도자들 일본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3주 전에 옌안에서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저우언라이, 마오쩌둥, 보구이다.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와 보구를 추월하여 1935년 대장정에서 당 지도자가 되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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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의 삼두 1944년의 공산당 주요 지도자 3인. 왼쪽부터 저우언라이, 마오쩌둥, 주더. 세 사람은 옌안 기지로부터 일본군의 전선 뒤쪽까지 광대하게 기반을 확장했다. 이에 대응하여 국민당 군대가 중국 중부의 공산당을 공격했고, 옌안 주변에 경제 봉쇄를 시도했다. 국민당의 전투 능력이 떨어지자 미국은 일본을 더욱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공산당을 도와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반 중국인들이 “가시적인 구원의 유일한 희망으로서 공산군을 환영”하기 시작했다.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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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쑨원의 마지막 여행 1925년 3월 쑨원이 쉰아홉 살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영구 보존되었고, 베이징 외곽 샹산에 있는 사찰에 임시로 안치했다. 그리고 4년뒤 자신이 만든 국민당 깃발로 장식한 장례기차를 이용해 남쪽으로 옮겨졌다. 난징-장제스가 중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택한-위쪽의 언덕에 특별히 능묘가 마련되었다. 쑨원은 평생 동안 중국의 화합을 위해 일했고, 죽을 때쯤에는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 중이었다. 쑨원은 유언에서 중국과 소련에 “압제에 시달리는 이들을 해방하기 위한 위대한 투쟁에 동맹으로서 손을 맞잡고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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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당 지도자들 1924년 6월 쑨원이 국민당의 상징인 청천 백일기 아래서 신설한 황푸군관학교의 생도들에게 연설을 하는 희귀한 사진. 쑨원은 핵심 당원들과 함께 참석했는데 왼쪽에는 부인인 쑹칭링이, 오른쪽에는 장제스가 있다. 장제스는 소련에서 돌아와 이제 막 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된 상태였다. 하얀 양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든 사람은 쑨원의 친구 랴오중카이로, 쑨원이 죽은 후 장제스의 주요 라이벌이었으며, 1926년 암살당했다. 황푸군관학교는 장제스의 권력기반이 되었고, 생도 다수가 이후 20년 동안 그의 가장 긴밀한 지지자들로 남아 있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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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익의 목소리 1927년 공산당 지도자 리리싼이 ‘붉은 한커우’의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미국인 기자 밀리 베넷이 찍은 모습. “ 리리싼은 이집트 미라처럼 생겼다. 수도승 복장을 한 이집트 미라같았다. 날카로운 광대뼈에 노란 피부가 달라붙어 있어고, 야윈 골격에 마치 포대처럼 검정색 싸구려 중국 겉옷을 걸쳤다. 귀에 거슬리는 묘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면 그것은 결코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설교였다”라고 그는 적고 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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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 지지자들로, 국민당에 체포된 뒤의 모습.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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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각적이고 가차 없는 보복 공산주의자들에게 재난의 해였던 1927년 12월. 중국에서 코민테른 운동이 붕괴되자 당황하고 화가 난 스탈린은 젊은 코민테른 공작원 둘에게 광저우에 노동자 코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부름에 응답하여 모인 노동자들은 거의 없었다. 지역 군사 사령관에 의해 이루어진 보복은 즉각적이고 무시무시했으며 처형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총에 맞은 아이들의 시체가 길가에 쌓여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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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 평의회 시절, 마오쩌둥과 허쯔전의 모습.대장정에 참여한 5명밖에 안되는 여자들 중 하나였던 허쯔전은 딸 린민을 낳기 전에 부상을 입었다. 이 사진은 그로부터 1년쯤 지나서 찍은 것이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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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밟혀도 굽히지 않는 마오쩌둥이 후난과 장시 사이의 산악지대에서 이끌었던 게릴라 부대는 지역농민과 산적의 지원을 받으며 계속해서 항쟁했다. 국민당 정부가 국가에 대한 엄한 통제를 강화할 당시에도 도시의 공산당 지하조직은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투쟁하며 활동을 지속했다. 이는 지극히 위험한 활동이었다. 처형당하기 직전의 젊은 여성의 모습. 여성은 능멸을 당했고, 옷이 일부 벗겨졌으며,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당에 무릎을 꿇고 있다. 왼쪽에 있는 군인이 턱 주변에 가죽 헬멧을 묶어 말을 못 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마지막 저항으로 울부짖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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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쑨원 ‘혁명의 아버지’ 쑨원이 초기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강력한 공화정을 수립하자는 주장은 해외에 있는 중국 동포들 사이에서 수많은 동조를 이끌어냈다. 북폴리오 제공


중국의 20세기를 사진으로 본다.

<인터넷한겨레>는 출판사 ‘북폴리오’가 2006년 말 펴낸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1-중국의 세기>(지은이 조너선 스펜스)에 게재된 사진들을 북폴리오의 양해와 도움 아래 온라인에 연재한다.

중국의 20세기는 격변과 혼돈의 시기였다. 멸망해 가는 거대한 제국의 마지막 지배자들과 이들을 타도하려는 일군의 혁명주의자들이 대륙을 무대로 몸부림쳤다.

이 책은 중국대륙의 격변기에 새로운 질서를 이용했던 군벌과 자본가, 내전의 혼란과 일본의 잔인한 침략전쟁 및 점령, 대장정과 대기근, 홍군의 승리, 문화대혁명의 고통과 무자비함, 4인방의 파괴행위와 몰락, 천안문 광장의 비극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이 책에 소개된 사진들은 대부분 그동안 출판된 적이 없는 자료들로, 개인 소장품과 최근 중국, 대만, 그 외 다른 곳에 문을 연 사료보관소, 저명한 현대 중국 보도사진작가에게서 입수한 사진들로 중국의 감춰진 얼굴에 생생함을 부여한다.

<인터넷한겨레>는 생생한 중국의 20세기 사진을 모두 7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는 1. 제국의 최후 2. 혁명과 전쟁 3. 권력의 핵심 4. 근대화 5. 대약진, 대기근 6. 문화대혁명 7. 새로운 시대 등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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