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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내몰리는 사람들(상)

fabiano 0 1136  
"죽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해 파산 신청을 했지요."
올해 초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해 지난 10월 면책 결정을 받은 A씨(50·부산 서구 다대동).

A씨는 파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겪었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자주 몸서리를 쳤다. 잘해보려고 했던 일들이 꼬이면서 신용업체로부터 대출을 받기까지, 또 대출을 못갚아 공갈과 협박에 노출된 채 시달릴 때, 파산 신청을 해놓고 면책이 될까 가슴 졸이던 때까지 지금도 떠올리면 악몽 같던 날들이었던 까닭이다.



'파산'은 빚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빚을 청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써서 못갚겠다고 하다니 얼핏 생각엔 '염치없는' 행위인 것만 같다. 파산을 신청하는 채무자가 가해자이고 빚을 주고도 떼인 대출업체는 피해자로 여겨지는 것이 정상일 터. 그러나 막상 파산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고 하기엔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숨어 있었다. 오히려 채무자가 피해자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대출을 받고 갚아나가다가 파산에 이르기까지 A씨의 경우를 들어봤다.



A씨는 1990년대 중반 이혼을 했다. 한때 '잘 나가는'식당 사장이었고 단란주점을 운영하던 A씨는 다툼이 잦아지자 이혼을 했다. 딸의 양육권은 부인이 맡았다. 그러나 이혼 후 도박에 빠진 A씨의 부인은 아이를 두고 사라졌다. 딸을 다시 맡아 키우면서 영업을 했는데 장사는 신통찮았다.

빠듯한 운영경비 부담에 장사도 안된 A씨는 단란주점을 정리했다. 빚은 다 갚았지만 종업원 월급 일부가 모자랐다.

월급도 갚고 재기도 해야 했던 A씨. 힘들지만 배를 타기로 했다. 꽃게잡이 배를 타면 선금도 받고 대우도 좋다고 해서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딸의 양해를 구하고 6개월 예정으로 배를 탔다.



6개월은 참을 수 있다고 다녀오라던 딸이었지만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 쓰여 집의 섀시를 새로 하고 문 잠금 장치를 점검하고 혹시나 싶어 아는 사람 앞으로 딸을 부탁하는 유서까지 쓰고 나선 길이었다. 처음 탄 배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빚을 갚고 딸과 새 출발을 하겠다는 각오로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를 다쳤다. 더 움직일 수도 배를 탈 수도 없었다. 배에서 내리면서 그래도 보상은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A씨의 허리 부상은 부상이 아니라 그 전부터 있었던 '척추분리증'이란 병.

보상도 받을 수 없었고 새 출발 시도는 그렇게 허망하게 3개월 만에 끝났다.



종업원들 월급은 겨우 갚았지만 허리가 아프니 일하러 나가기도 어려웠고 당장 치료를 해야 했다.

신용카드로 병원비를 대고 돌아오는 카드 대금은 현금서비스로 막고 그렇게 치료비와 생활비, 학비를 충당했다. 나이 마흔이 되어 뚜렷한 기술도 없고 하필 그 때 맞은 IMF 경제위기는 직장 구하기도 힘들게 했다.

A씨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다. 보험설계사 생활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꾸려가길 1년. 월급은 60~70만원 정도였고 오롯이 수입 만으로 생활하기 힘들었다.



다시 재기를 노려 고데구리 배를 탔다. 그런데 바다에서 실컷 생선을 잡아 넘겨주면 중간업자는 생선이 운반 중에 죽었다며 죽은 생선 값을 지불했다. 활어는 죽은 생선보다 10배나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데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이유로 눈 뜨고 당한 A씨. 두 달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고작 30만원 벌었다.

이런 A씨에게 지인이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새로 개발된 좋은 건축자재용 돌이 있는데 허리가 아프니 그냥 공사현장 다니며 그걸 팔아보라"는 것이었다. 차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돌을 직접 확인해 보니 또 좋아 보여서 그 말만 믿고 800만원을 주고 중고 차를 구입했다. 신용대출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안한 사람은 차를 사자 아무 소식이 없었다. '사기 아닌 사기'. A씨로부터 실컷 접대만 받고 내뺀 뒤였다. 차는 A씨의 인생을 더 꼬아 놓았다. 바로 팔아도 500만원 밖에 받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차를 팔았지만 300여 만원을 그냥 날린 뒤였다.



딸은 고맙게도 어려운 살림 속에서 검정고시를 쳐가며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 딸을 위해 학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그 역시 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사기를 당했지만 A씨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부지런히 이자를 갚았다.

"이자가 연 25%인데요, 아무리 갚아도 원금은 조금도 안 갚아지는 거에요. 꼬박꼬박 넣었는데 말여요. 내가 대출기관에서 빌려쓴 돈이 1,000만원이었는데 이게 4년 지나니 5,000만원이 돼 있더라고요. 이자는 월 단위 복리로 계산되더라고요."

A씨는 사채업자의 돈도 300만원 빌렸다. 이 300만원은 2년이 지나니 1,560만원이 돼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해 일하며 산 인생이었건만 빚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 중에 신용대출 기관은 추심업체에 이 빚을 넘겼다. 말하자면 부실채권을 판 것인데 이때부터의 빚 독촉은 A씨의 생활을 황폐하게 했다.

"낮이고 밤이고 평일이고 일요일이고 없었어요. 전화해서 협박했죠. 손님을 만나다가도 뭘 하다가도 전화 오면 욕지거리며 협박을 다 들어야 했어요." 깡패들이 새벽에 집을 찾아온 적도 2번 있었다고 한다. 딸과 함께 자던 날 새벽 4시께 깡패 2명이 집에 왔다. A씨는 이들과 육박전도 벌였다.

"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체면이고 뭐고 없었어요. 남자도 이런 데 여자들은 채무에 시달리면 어떡하죠?"

이때까지만 해도 빚을 갚을 생각이었던 A씨. 그러나 추심업체는 급기야 200만원인 A씨의 전세금을 압류하겠다고 통보했고 막다른 궁지에 몰린 A씨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자신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릴까, 차에 뛰어들까, 목을 맬까 별별 생각을 다하던 A씨는 그러나 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후의 보루를 지키면서 죽지도 않을 방법은 파산 밖에 없었다.

파산 신청은 쉽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죠.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 못 갚으니까…"

내일이라도 어떻게 해서 빚을 갚고만 싶었다.

또 다른 걱정은 면책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6개월여의 과정을 거쳐 A씨는 면책이 됐다.

파산자의 신용등급은 최하위인 10등급. 면책이 되고 나니 이제 다시 직장을 구할 일이 걱정이다.

그만큼 제한이 많기 때문.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해야 할 만큼 자신을 몰아대던 부채 독촉의 상황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이다. A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빨리 파산할 것을 권한다.

"일단 숨은 쉬어야 하잖아요. "



그러나 과중채무자나 파산자에 대한 사회 정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서민들은 은행에서 돈 못 빌려요. 그러니까 신용대출이며 사채를 쓰는 데 이렇게 고율의 이자로 돈을 빌려쓰고 그래서 연체라도 되면 그때부터 돈 빌린 사람들은 대출업자나 사채업자를 위한 인생을 사는 거에요. 나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뻔히 가진 것 없는 사람, 돈 갚을 수 있게 하려면 일을 하게 해줘야지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갚잖아요. 일은 못하게 하고 돈 내놓으라고만 하니 그건 죽으란 소리 밖에 안되죠."



서민들에게 아예 차단돼 있는 은행 융자. 그래서 '가진 게 더 없는' 서민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비싼 이자의 신용업체 대출을 이용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그 이자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연 66%도 아주 높지요. 실제로 빌려서 연체하게 되면 엄청난 이자가 됩니다. 이걸 가만놔두고 있으니 이 나라가 말이 아니죠. 이거 이렇게 두면 안됩니다." 빚을 갚으려 열심히 일은 했지만 조금도 갚아지지 않던 대출. 자신과 같은 괴로움을 당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A씨는 분노와 연민이 섞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진경기자 jin@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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