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春史 나운규 그리고 아리랑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흘러간 영화 그리고
내 블로그

春史 나운규 그리고 아리랑

fabiano 1 5048  
1514963969101544.jpg

 春史 나운규(羅, 1902.10.17~1937.8.9)

 號는 춘사(). 함경북도 회령 출생.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이며 항일독립투사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바쳤다. 회령의 신흥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후 중국 간도()의 명동()중학 재학 중 3·1운동에 참가하고,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시베리아를 방랑하다 러시아 백군()에 입대, 1920년 홍범도()의 독립군에 가담하였다. 1921년 입국, 중동중학()중학 재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복역하였다. 1923년 신극단 예림회()의 배우가 되어 북간도 일대를 순회공연하고, 1924년 부산의 조선키네마에 입사, 《운영전()》에 단역으로 출연함으로써 영화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농중조()》 《심청전》 《개척자》 《장한몽()》 등에서 주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였고, 1926년 자신의 원작인 《아리랑》을 감독·주연하였다. 1927년 나운규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였으나 1929년 한국 최초의 문예영화라 할 수 있는 《벙어리삼룡이》를 제작한 후 경영난으로 해체하였다. 1936년 이후에도 《임자 없는 나룻배》 등 여러 편의 영화에 주연을 맡거나 감독·제작하였으며, 특히 1936년 《아리랑 제3편》을 제작하면서 녹음장치에 성공하여 한국의 영화가 무성영화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36년 마지막 작품 《오몽녀()》를 포함해서 모두 15편이 넘는 영화의 원작·감독·주연·제작을 맡았다. 1993년 항일영화를 만들어 민족혼을 고취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출연영화로 《풍운아》 《들쥐》 《흑과 백》 《금붕어》 《잘 있거라》 《옥녀》 《사랑을 찾아서》 《사나이》 《철인도()》 《금강한()》 《개화당 이문()》 《칠번지소사건()》 《무화과》 《그림자》 등이 있다.

1514963970922238.jpg

명동학교 시절의 나운규
1918년 명동학교에 입학한 나운규의 교복 입은 모습.


1514963971647434.jpg

   <아리랑> 스텝진.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이 나운규.
1514963972302088.jpg

1514963973901565.jpg

1514963973434994.jpg

1514963974613884.jpg

1514963975387216.jpg

1514963976957798.jpg
      영화 <아리랑> 포스터와 스틸사진.


1926년 '조선 키네마 프로덕션'이 제작한 35㎜ 흑백 무성영화.

나운규가 각본·주연·연출한 영화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8·15해방 이전에 만들어진 한국영화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다.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주제가 〈신아리랑〉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주인공 영진 역은 나운규가 맡았고 영진의 동생 영희 역은 신일선, 영진의 친구이자 영희의 연인인 현구 역은 남궁운, 악덕 지주의 청지기인 오기호 역은 주인규가 각각 연기했다. 촬영은 이명우가 맡았다.

줄거리

젊고 똑똑한 인물이었으나 미치광이가 된 영진은 마을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오기호를 원수처럼 여긴다. 서울에서 유학하고 있던 친구 현구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오지만 영진은 알아보지 못한다.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던 어느날 오기호는 흑심을 품고 영희를 괴롭힌다. 이를 본 영진은 낫을 들어 오기호를 물리치고 영희를 구하지만 살인자가 되어 경찰관의 손에 이끌린 채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이 영화는 당시 만들어진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징적 기법의 도입, 사실적인 연기와 영화적 구성 등으로 막 싹트기 시작한 한국영화를 한 단계 높인 기념비적인 작품으로까지 평가된다. 필름이 보전되어 있지 않아 종합적인 평가는 어렵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속편인 〈아리랑 그후 이야기〉(1930)·〈아리랑 3편〉(1936)이 만들어졌으며, 1954년(감독 이강천, 출연 허장강·김재선·변기종), 1957년(감독 김소동, 출연 장동휘·조미령·윤봉춘·김동원), 1968년(감독 유현목, 출연 박노식·홍세미·남궁원)에 각각 같은 제목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1514963976408108.jpg
  
 1957년 제작.

1514963977643513.jpg
1 Comments
fabiano 2005.05.12 11:13  
─━★
Hot

인기 007 Thunderball (예고편)

댓글 0 | 조회 1,800
Hot

인기 007 Dr.No (살인번호)

댓글 0 | 조회 2,042
Hot

인기 007 Thunderball

댓글 2 | 조회 2,090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50 명
  • 오늘 방문자 357 명
  • 어제 방문자 2,538 명
  • 최대 방문자 14,296 명
  • 전체 방문자 1,305,680 명
  • 전체 게시물 10,948 개
  • 전체 댓글수 35,460 개
  • 전체 회원수 71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