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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조선시대(1898년) 소학교 졸업시험 문제

fabiano 0 1272  
 원글 : http://tong.nate.com/eunkap/24953540

 

        조선시대(1898년) 소학교 졸업시험 문제

          - 법국(法國, 프랑스)이 무슨 이유로 대란하며 나파륜(拿罷倫, 나폴레옹) 제1황은 무엇 때문에 영웅인가. 
          
- 영국은 무엇 때문에 흥성하여 세계 일등국이 되며 정치 선불선(善不善)이 아국에 비하면 어떠한지 숨기지 말고
          실에 의거하여 직서함이 가함.

- 인도국은 무슨 이유로 영국의 속국이 되어 지금까지 자주치 못하는가.

- 보법전쟁(普法戰爭, 보불전쟁)에 보국(프로이센)은 어찌해서 승리하였으며 법국은 어찌해서 패배하였는가.  

- 오지리奧地利(오스트리아) 황제 비접남飛蝶南(페르디난도)은 무슨 이유로 손위하며 지금 그 나라 정형은 어떠한가.

- 의대리意大利(이태리) 국사기國史記 중 나파라사왕拿破螺師王(나폴리 시칠리왕) 비접남제이 飛蝶南第二가 그 민을 폭학暴虐하다가 각국에게 견모見侮하였으니 그 정형과 시비가 어떠한가.

- 아국俄國(러시아)이 정치와 척지拓地함과 소득속지국민所得屬地國民을 어떻게 대하며 그 나라와 심교深交함이 어떠한가. 차는 아국 약사略史를 숙람하고 조대條對함이 가함.

- 돌궐국突厥國은 어떠한 국인고. 그 정치 선불선善不善을 언言함이 가함.

- 미국은 세계 중에 교화와 각 정형이 어떠하다고 할고.

- 신정新政이 흥한 후 세계가 비전比前하면 어떠한가.

- 아我 대한은 어떻게 정치를 하여야 세계 일등국이 되며 또 구습은 불개不改하여 어떠한 지경에 이르를고. 소소명백昭昭明白히 저론著論함이 가함.


1898년 11월 5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평안도 공립소학교 졸업시험 문제 중 일부다. 소학교는 오늘날의 초등학교가 아닌가. 그런데 나폴레옹이 왜 영웅인지, 인도는 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어떻게 정치를 해야 일등국이 될지를 묻는 등 문제의 수준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약 100년 전 초등학교의 풍경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소학교 졸업시험 합격자 『독립신문』에 실려

 

<1899년 2월 2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우등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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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갔다 돌아오면 “○○아, 놀~자!” 하고 동네 친구들을 불러 골목을 누비던 부모 세대와 영어, 수영은 필수고 거기에 갖가지 종류의 학원에 다니느라 웬만한 어른보다 하루 일정이 빡빡한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한 세대만 지나도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에서부터 놀이 문화까지 달라지는 게 너무나 많다.


앞에 소개한 소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하면 신문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고 한다. 요즘 외국 유명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으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가. 초등학교 졸업생 명단을 신문에 실으면 그게 바로 신문에 날 일이다.

 

사실 초등학교라는 말은 고작 10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 전에 쓰던 국민학교라는 말이 1941년 일왕의 칙령으로 생긴 것이라 1996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명칭을 바꾼 것이다. 물론 국민학교 전에도 초등 교육기관은 있었다.


오래전부터 살펴보자면 고구려의 미혼 평민 자녀 교육기관인 ‘경당’, 고려·조선시대의 ‘서당’이 모두 초등학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인 교육기관이 자리 잡은 것은 갑오개혁(1894년) 이후다. 1894년 정부가 소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학령제(學齡制)를 도입해 일곱 살 이상의 남자아이가 입학하게 했다. 신분 차별은 없어졌지만 처음에는 여자아이를 받지 않았다.

한편 당시 수학 기간은 3년이었고, 각 학년은 두 학기로 나뉘었다. 이에 따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인 교동초등학교가 1894년 9월 문을 열었다. 이 학교는 왕궁 근처에서 왕족과 관리의 자제들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만든 학교다.

 

서당의 전통을 이어받은 소학교

그런데 새삼스럽게 1895년 7월 일본의 ‘소학교령’을 그대로 본뜬 ‘소학교령’이 반포된다. 이는 소학교에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인륜과 의리보다는 (식민지) 국민으로서 본분을 자각하게 하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는 것으로 학교 설립의 근본 목적을 변질하려는 일제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소학교의 설립 요건을 까다롭게 함으로써 서당의 성장과 사립 소학교의 설립을 방해하려는 뜻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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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의 입학 연령이 일곱 살 이상 열다섯 살 미만이라고 정해졌지만 실제는 소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소란스러워 수업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학생 활동의 중심에 섰는데, 당시 학생들은 학생회를 조직해 주체적으로 활동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교사의 해임이나 연임을 위한 상소를 올리기까지 했다.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 활동에 참여하다 퇴학당한 이가 있나 하면,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시위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 소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우선 당시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우리글을 가르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우리글을 사용해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때 편찬된 교과서는 대개 국한문혼용체로 쓰였다.


교과목은 수신, 독서, 작문, 습자, 산술, 체조를 기본으로 하고 때에 따라 학부대신의 허가를 얻어 체조를 빼고 한국지리, 역사, 도화, 외국어 가운데 몇 과목을 더할 수 있었다. 또 여학생을 위해 재봉을 더할 수 있게 규정했다.


당시 소학교의 교실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소파 방정환의 글이 있다.


하얀 나무로 만든 책상과 걸상에 두 사람씩 갓과 초립을 쓴 채로 앉아서 『소학』이라는 한문책을 펴놓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얼굴 뻘겋고 수염이 세 갈래로 난 어른이 갓을 쓰고 서서 기다란 담뱃대를 입에 물고 빨다가, 그 담뱃대로 또 칠판을 딱딱 때려 가면서 글을 가르쳤습니다. 사무실도 없습니다. 하학할 때가 되면 갓 쓴 선생님이 몸시계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고 자기 손으로 종을 땡땡 치고 상투배기 학생들을 마당으로 내보내 놓고, 선생님은 제각각 자기 반에서 그냥 그 칠판 밑에 갓을 쓴 채 드러눕습니다. …… 그러다가 다시 상학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오는 통에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아까 배우던 것을 이어 가르치곤 하였습니다.

- 방정환, 『소파수필선』


이름만 소학교일뿐 한문서당과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학교에 지각하면 벌금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점도 있다. 전에는 학생들이 해 뜨면 서당에 가서 공부하고 해 지면 집으로 가는 식이었으나, 소학교는 분초까지 알려 주는 시계를 통해 하루의 일과 시간이 정해졌다.


귀한 사치품인 시계를 모두 갖진 못했어도 ‘시계 보는 법’을 배웠으며 ‘시간이 금’이라는 인식을 전달받았다. 심지어 영어학교는 등교 시간을 정해 두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 10전을 물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은 일종의 길들이기였다. 시간을 지키듯 정해진 규율에도 복종하는 국민이 되라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신나는 것은 교실에서 하는 수업보다는 교실 밖 수업이다. 바로 소풍과 운동회! 특히 운동회는 단순한 학교 행사가 아니었다. 지역 주민들이 참가하는 동네잔치였다. 어느 운동회에는 학생이 6000~7000명인데 관중은 10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 때로는 정부 고위 관리들이 운동회를 직접 참관하고 보조금을 내며 후원했다. 심지어 황태자가 참관한 뒤 상품을 내려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운동회는 1896년 5월 2일 영어학교에서 열렸고, 같은 해 5월 30일에는 훈련원에서 소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서양의 운동회가 차전놀이, 씨름 같은 전통 놀이와 만나 독특한 풍경을 보여 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운동회에서 이긴 팀은 1년 동안 돌림병에도 걸리지 않고 가을걷이의 수확도 좋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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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생들과 지역 주민이 어우러지는 운동회>


한편 당시 운동회는 태극기 게양과 함께 시작되었고, 끝날 때는 반드시 만세를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대한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건강한 신체의 단련은 남에게 침략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데 필수 조건이 아닌가. 지식인들이 국민들의 애국심과 사기를 높이는 연설을 하기도 한 운동회가 국권 수호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학교생활의 즐거움이 있다면 괴로움도 있다. 소학생들이 진급이나 졸업을 하려면 꼭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당시 학생들은 학기마다 진급시험을 보았는데, 평가방식은 ‘문대(問對)’라는 면접법이나 작문, 논술형 문제 풀기 등이었다.


함흥부 공립소학교에서 『논어』, 『대학』은 얼굴을 마주 보고 질문이 나오면 해당 내용을 외워 대답했고, 만국사·만국지리·아국사·아국지리는 뒤돌아 앉아서 질문에 대답했으며, 산술은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를, 작문은 국한문을 대상으로 시험을 보았다.


《우리 학생들이 나아가누나》(김태웅 지음, 서해문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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