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日政下, 서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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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政下, 서울의 모습

fabiano 10 1894  
日政下의 시절, 서울의 모습.  당시는 서울을 京城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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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현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으로 1934년에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3,000여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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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종로 2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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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은행앞 대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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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太平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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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集玉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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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京城驛에서 남대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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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시가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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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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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城     東洋拓殖株式會社
日帝가 1908년 12월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거지.
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무렵에는 7만8천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여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東拓의 소작료는 일반 민간보다 상당히 고율이었을 뿐 아니라, 수탈 방법도 악랄하였으므로, 한국인들의 東拓에 대한 원한이 매우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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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밖 조선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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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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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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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공원 야외 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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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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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東小門 (惠化門)

동소문()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北門(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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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 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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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요리집 明月館 전경

1918년경에 명월관이 소실된 뒤 순화관(현 종로구 인사동 194)에 명월관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차렸다가 뒤에 태화관(泰和館)으로 개명했다.
이 태화관은 기미독립선언 때 33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본관 간판은 장춘관으로 옮겨졌지만 명월관을 경영하던 안순환이 경영했기 때문에 명월관에 모였던
명기들이 그대로 모여 전처럼 번창했다.
궁정양악대 출신들이 시중에 불려나와 우미관양악대와 단성사양악대를 꾸며 태화관에 등장하기도 했다.


10 Comments
마테우찌 2006.11.03 19:59  
좋은 자료 모으셨네요.  잘 구경하고 갑니다.  제 블로그에 들르시는 분들께도 보여드릴까해서 좀 베껴가겠습니다.  귀한 사진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fabiano 2006.11.03 20:36  
마테우찌님, 참 오랫만입니다. 여일하시지요? 자료는 공유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감사드려야지요.
드넓은 광야 2006.11.04 12:19  
그당시 모습이 생동감을 주는군요 저는 명월관은 못가봤어도 외교구락부는 몇번 가봤습니다
丹溪 2006.11.04 13:49  
훌륭하고 좋은 자료들입니다. 동양척식회사는 지금 외환은행 본점(을지로 2가)자리이지요. 나석주열사 동상도 있습니다. 1968년 중3때 전차가 없어졌습니다. 한국은행앞, 남대문앞으로 전차타고 다니던 추억이 새롭습니다. 고맙습니다.
fabiano 2006.11.04 19:50  
丹溪님이 잘 아시네요. 60년대초에 서울을 가봤던 기억에 좀 생각이 납니다.
fabiano 2006.11.04 19:51  
책 속에서 명월관은 아주 단골이었슴다.
히미츠 2007.03.09 00:29  
사진을 아주 잘 봤습니다. 그런데 맨밑에 있는 명월관 사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 동경에 열었던 명월관 사진입니다. ^^
fabiano 2007.03.09 06:45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szlee 2007.04.03 02:34  
좋은 자료 학습과 교육용으로 사용코자 담아갑니다. 괜찮겠습니까?
fabiano 2007.04.03 08:37  
공유함에 의의가 있으므로....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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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조회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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