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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iano 0 1217  
시계침은 5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새끼 잡아! 저런 빨갱이 같은 새끼, 저런 새끼는 아주 죽여놔야 해."
"너 같은 새끼 때문에 김정일이가 핵폭탄을 만드는 거야, 알어?"

주먹질은 매서웠다. 핵폭탄에 분노한 노인들의 주름진 손은 핵주먹이 되어 사내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40대 중년남성이 나가떨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겨우 노인들을 말리고, 널부러진 사내를 은행 365코너로 끌고 갔다.

누군가 침을 뱉었다. "에라이, 노무현 같은 놈아."

노인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조국이 부른다면 언제라도 이 한 목숨 불살라 자유대한을 지키리라는 결연한 의지가 얼굴에서 뚝뚝 묻어났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이 마당에 나이가 무슨 걸림돌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노인들은 과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야 할 판에, 수수방관을 넘어 빨갱이들을 적극 돕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조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에 어찌 양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국지정을 가슴에 불태우며, 역전의 용사들은 명동 앞을 행진하고 있었다.

이런 판에, 이런 엄숙하고 장엄한 행렬을 위해 4천만 동포가 박수치고 응원해야 할 판에, 길가에 서있던 40대 남자는 불평을 해댔다. 한마디로 시끄럽다는 거였다. 불온한 것이었다, 그 불평은. 해서 쓴 맛을 보았다, 40대 남자는. 핵폭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핵주먹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가슴에 금배지를 단 어떤 여자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피감기관인 군부대에서 골프를 치면서 이 나라의 안보를 연구한 끝에 "북한이 AN-2기에 핵폭탄을 싣고 골프장에 착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끄집어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해병대 사령관에게 원산상륙작전을 주문했다.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주워 들었던 듯하다.

원산....

원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내게도 원산에 관한 쓰린 기억이 있다.

원산의 성한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았다던, 반세기 전 원산폭격의 영광은 어찌나 자랑찬 것이었던지, 두고두고 남녘에서도 재현되었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머스매들은 시도 때도 없이 원산폭격에 시달린, 아픈 추억을 품고 자랐다.

원산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반세기 전의 그것이었건, 내 어린 날의 그것이었건, 이제 원산폭격은 옛 추억으로 충분하다. 핵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핵주먹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진즉 타이슨을 초빙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미군은 원산폭격으로 김일성을 제거하였나? 오늘날엔 그것으로 김정일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라크 침공으로 죽은 건 이라크의 아이들인가 사담 후세인인가, 9.11 테러로 죽은 건 민간인인가, 조지 W 부시인가.

김일성은 천수를 누렸고, 사담 후세인과 조지 W 부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 있다. 이렇듯 전쟁의 명분과 결과는 늘 따로 놀았다. 하지만 이상할 게 없다, 전쟁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혐오스러운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워 없앤 일을 반복, 또 반복한 것이, 전쟁의 역사였다. 그래서 지겨운 것이다, 전쟁은.

손자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병법이라 말하고 있다. 제발이지, 한반도에서 핵을 제거하자, 전쟁 말고 다른 방법으로.

10분이 흘렀다.

시계침은 2006년 10월 13일 오후 5시 15분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히 40대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이 나라가 정신을 차릴 때다.

/노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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