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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杞憂)

fabiano 2 1097  
1.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

기원전 12세기경 중국에서는 변방에서 성장한 주(周)나라가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웁니다. 새 왕조의 창립자인 무왕(武王)과 그 아들 성왕(成王)은 그 거대한 땅덩어리를 직접 통치하기 힘드니까 친족과 공신들에게 하나씩 떼어 나눠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펴볼 고사의 무대가 되는 기(杞)라는 나라는 현재 황하 중부 유역 하남성에 속한 아주 작은나라입니다. 더구나 이 나라는 주(周)왕조의 인척이나 건국공신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까마득한 시절에 정복된 망국의 유민들이 모여 살던 나라임을 알려 드립니다. 설움과 천대가 이만 저만 아니었지요. 바보취급도 일상적이었구요. 《열자(列子)》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하나 실려 있습니다.
      
기(杞)나라에“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리면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질텐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밥도 못 넘기고 잠도 못 자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걸 또 안타까이 여긴 사람이 있어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겠노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에 싸인 사람이 말했습니다.  
'하늘이 정말 기가 쌓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지게 마련일텐데요.'
깨우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 또한 (하늘과 마찬가지로) 쌓인 기 가운데 빛나는 종류일 뿐이니,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칠 리는 없습니다.   땅 역시 덩어리(塊)가 쌓인 것입니다. 사방에 꽉 들어찬 것이 바로 이 덩어리들 아닙니까. 아무리 밟고 굴러도 다 이 덩어리 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어째서 땅이 꺼질까를 걱정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걱정에 싸였던 사람이 비로소 안도감에 기뻐했습니다.

“올려다 보면 장엄하게 돌고 있는 저 하늘, 그리고 우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이 땅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이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었습니다. 기우(杞憂)는 그리하여  <쓸데없는 근심>,  <괜한 걱정>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2. 과학자의 해명

이 원시적 우려를 해결하러 나선 사람은 어느 정도 사태를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그  <과학자>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기(氣)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기(氣)의 집적이다! 그러니 하늘이 무너질리가 없다!

    지금 여러분들은 동아시아과학의 제 분야, 이를테면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천문학, 의학, 철학에 이르는 모든 과학을 꿰고 있는 주요한 개념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기(氣)라는게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기(氣?)가 질릴 필요는 없습니다. 관측기계와 실험설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던 우리네 선인(先人)들은 추상적 논리보다 구체적 감각에 더욱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氣)라는 개념의 발단 역시 아주 일상적인 것이라서 우리가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가령 이런 발상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여름 피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부채입니다. 부채를 부치면 시원하죠. 그런데 이 시원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당연히 바람의 조화인데, 그럼 이 바람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바람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불쑥 생겨나온 것이 아니죠. 그것은 이미 있는 <어떤 것>의 흔들림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어떤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공기(空氣)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공기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과는 다른 어떤 것입니다. 공기에 저항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압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배우셨지요. 그러니 공기를 추상적 공간, 혹은 진공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탓에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이 엄연한 실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이 공기(空氣), 즉 ‘빈 곳(空)에 들어찬 기(氣)’가 바로 그 여름철 시원함의 주체입니다. 이것을 선인들이 발견했어요. 그리하여 우주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먼지보다 미세한 어떤 물질의 집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기(氣)입니다. 우리는 그 기의 한가운데에서 그것을 마시고 내쉬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뭏든 지금 기나라 사람의 걱정을 풀어주러 온 <과학자>는, 하늘이란 바람같은 성질을 지닌 기(氣)의 집적이므로 지붕이 내려 앉듯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기나라 사람의 걱정은 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유동성의 기(氣) 가운데 매달려 있는 해나 달이나 별들이 떨어지면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해나 달이나 별들은 다른 공기와는 달리 딱딱한 물체같아 보입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듯이 해나 달이나 별들이 헐렁한(?) 기(氣)의 공간을 뚫고 떨어져 내리면 어떡하느냐는 것이죠. 이에 대해 <과학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같은 기라 하더라도 성분은 다를 수 있다. 빛이 나는 기도 있고 어두운 기도 있다. 해나 달이나 별들은 빛나는 기이지만 그 역시 기일 뿐이므로 떨어지는 별에 맞아봐야 그 충격은 우리가 공기 속에 손을 내저을 때 느껴지는 저항처럼 미미할 것이다. 그러니 해나 달이나 별이 떨어지더라도 도무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설명에 기나라 사람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다고 걱정이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하늘은 물컹하다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 몸을 지탱해주는 땅바닥이 어느날 꺼져버리면 어떡하냐는 것이죠.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께서는, “땅은 딱딱한 덩어리(塊)의 모임이며 이 덩어리는 사방 빠진데 없이 빽빽히 들어차 있기 때문에 도저히 꺼질 틈새가 없다.”는 말로 안심을 시켰습니다. 이 설명으로 기나라 사람은 설득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걱정이 정말 쓸데없는 걱정, 즉 <기우(杞憂)>임을 깨달은 그는 이후 밥도 잘 먹고 잠도 아주 잘 잤으리라 생각합니다.


3. 회의론자의 반론

그렇지만 저는 그 어리석은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 괜한 기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유효한 의문이고 설명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늘이든 땅이든 무엇인가의 <모임>이라면 그것은 <해체(흩어짐)>의 운명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요. 실제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모를 뿐, 언젠가는 막막한 공간 속으로 흩어지리라는 생각에 번민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열자(列子)》라는 책의 주인공 열자는 다음과 같이 읊조립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사람도 틀렸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람도 역시 틀렸다. 무너질지 아니 무너질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 또 무너지면 어떻고 아니 무너지면 어떠랴.'
  '살아서는 죽음을 알 수 없고 죽어서는 삶을 알 수 없다. 오는 사람은 가는 사람을 알지 못하고 가는 사람은 오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무너지든 아니 무너지든 무엇 신경 쓸 일이 있으리!'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며 정답을 찾던 우리는 흡사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열자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무익한 논의를 중지하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회의론자의 설명이 이색적입니다.


4. 현대 우주론의 대답

이같은 논쟁에 대해 지금의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우주는 장려자의 생각과 닮아 있습니다. 우주는 개스상태의 구름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고 있는 영원한 과정에 있습니다. 지금은 팽창중인 그 한끝에 은하가 있고 그 은하의 한 구석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있습니다. 아득한 우주 안에서 떠돌던 개스가 모여 이루어진 이 덩어리가 언제 다시 우주의 광막한 공간으로 흩어져 버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 혹은 별들 사이의 힘의 균형이 어그러지면서 다른 별과 충돌하여 깨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니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 전혀 근거없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기우(?)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지금은 아무도 모르고, 혹 안다고 해도 어찌해볼 수 없는 재앙이기 십상입니다. 먼 훗날의 일이겠지요. 우리는 그런 편리한 기대로 편안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열자는 그날이 오더라도 놀라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우리의 걱정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주의 섭리가 거둬가기 전에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손으로 지구를, 이 <아름다운 대리석 구슬>을 깨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손을 써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요.
2 Comments
드넓은 광야 2006.10.21 19:22  
이미 그런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데 걱정이 앞서는군요
fabiano 2006.10.21 20:07  
걱정하면 뭘합니까?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니라 하고 치부하기도 그렇지만 이래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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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조회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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