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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눈물의 계곡'이 너무 길다

fabiano 0 2099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그럴 줄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도(度)를 뛰어넘는 혼란상에 국민의 심사는 어지럽다. 정의와 불의가 착종되고, 옳고 그름이 엇갈리고, 청(淸)과 탁(濁)이 뒤엉켜 옥석을 가려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한때는 진보세력의 공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이제는 보수집단이 쏘아대는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고 있다. 지지하는 집단과 저항하는 집단 간에 말싸움, 몸싸움이 한창이다. 혼비백산한 국민은 천지사방으로 쪼개져 정치권이 연출하는 공방전에 너도나도 합류하는 형국이다. 여당 대표의 해석과는 달리, 이건 사회의 건강성을 말해주는 지표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총체적 난투극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사회 총체적 난투극 빠져

개혁정치의 미래효과를 기대하기에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커졌다는 게 일반 서민들의 판단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생계에 바쁜 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이유가 있겠는가. 정치 1번지 여의도는 집단 민원의 물류 센터로 바뀐 지 오래다. 시위대의 유형이 이렇게 다양해진 까닭도 참여정부의 이름 때문인지,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시위 전시관'이 되었다. 택시기사들이 LPG 가격 인하를 외치고, 식당주인들이 솥을 집어던졌다. 집창촌 여성들이 거리에 누웠고,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었으며, 종교인이 궐기대회를 열었다. 양계업자가 허약체질의 토종닭을 집어던지는 장면은 섬뜩하다. 말하자면, 시위는 참여정부에서 국민이 채택한 보편적 행동양식처럼 보인다. 교육자, 재향군인, 자영업자, 종교인, 사회원로, 농민, 노점상, 각종 이익집단들이 시위에 나섰으며, 급기야 공무원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권은 단안을 내려야 한다. '민란(民亂)'의 불길이 전국으로 파급되기 전에, 정치권 내부에 '비상계엄령'을 발동해 주기를 바란다.

현 정권의 정치인들은 계엄령에 익숙할 터이니, 무슨 뜻인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다투지 말 것(국민은 당신들의 싸움에 지쳤다), 둘, 막말하지 말 것 (국민도 막말하고 싶다), 셋, 자신만이 옳다고 하지 말 것(생계가 급한데 딴전 피우는 사람들이 자꾸 미워진다), 넷, 양보도 가끔 할 것 (왜 이리 외골수가 많은지), 마지막으로, 제발 정신 좀 차릴 것(경제는 괜찮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더욱 밉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빠져 있는 이 '눈물의 계곡'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고는 공염불이 될 게 뻔하다.

마음을 바꾸면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일반 서민들이 도덕과 정의를 수용하는 데에는 임계점(臨界點)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집권세력과 청와대에 포진한 정책 브레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서민들은 '정의로운 사회'보다 '풍요한 사회'를 더 원한다는 것, '정의로운 정책'일수록 부작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차제에 몇 가지만 주문하자.

첫째, 수출이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재벌중심 경제를 견제하는 집권세력의 오랜 혐오 때문이다. 재벌이 주식가치 방어에 몰두해서 고위험 프로젝트를 실행할 여력을 상실하면 투자도 소비도 살아나지 않는 게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정책 브레인들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실력이 없다.

서민들 '정의'보다 '풍요' 더 원해

둘째, 경제침체는 IMF 외환위기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경기하락을 부추기는 '의로운 정책'들의 남발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집값 잡고, 건설경기 죽이고, 적자재정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이는 악순환은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다. 현 정권에는 인재가 이렇게도 없는지, 아니면 아예 그러기를 작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

셋째, 거듭되는 악순환을 세금인상으로 때우거나, 연기금 같은 국민저축을 동원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70년대 발상이다. 자동차세와 LPG값을 급격히 올리고 서민생계를 걱정하는 모순도 문제거니와, 성장효과가 불분명한 대형사업을 남발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국가재정을 그렇게 쓰라고 누가 허락했는가. 틀이 잡힌 분배정책에 쓴다면 또 모를까.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행정특별시'면 괜찮다고 밀어붙이려는 오기로는 현 정권의 최대의 무기인 '정의'와 '도덕'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서민의 대통령'이 서민 다 죽이는 역설적 장면들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중앙일보] 기사 본문 읽기

2004.11.12 18: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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