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 South Korea 1962-1963
fabiano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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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 23:07
그때 그 시절 - South Korea 1962-63
아래 포스팅은 1962-63년까지 한국에서 근무한 美軍 Thomas P. Lang씨가 촬영한 것으로
인천 부근과 포천 등지에서 질곡스러웠으나 그 시절의 山河와 일상을 정감어린 시선으로
따듯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사진과 촬영자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South Korea 1962/63 photos by Thomas P. Lang
These photographs were made ten years after the armistice was signed ending the war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Life was incredibly hard.
Today South Korea is an economic power in the world.
I admire the Koreans and my wish is that they become one family again undivided by politics.
(1)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맺어진 후, 약 10년 정도 경과한 시점이어서 그런대로 경제적인 기틀이 조금씩 자리잡게 되었다.
사람들이 다소, 북적이는 이곳은 그 시절의 운천 재래시장이며 정면에 보이는 각흘봉 아래에 영북국민학교의 모습이 보인다.
(2) 빨래하는 江건너에 미군부대 Camp Kaiser가 1954-1974년 까지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후, 한국군으로 교체되었다.
(3) 농기계화 된 오늘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4) 오늘날은 거의 볼 수 없는 모내기 풍경이다.
(5) 서로 돕고 서로 정이 있었던 그 시절의 풍경이다.
(6) 아버지와 아들 형제.
(7) 아버지와 딸. 파자마 차림은 집안에서 입는 것이었지만 그 시절엔... 집 바깥에서도...
(8) 그 시절의 운천리(雲川里)는 미군부대가 주둔하여 다소, 흥청거렸다.
(9) 그 시절, 강이나 큰 내가 있는 곳엔 이러한 나룻배가 있어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10) 어린 오누이. 현재 이들은 50 후반의 나이가 되었을 터이다.
(11) 질곡의 그 시절이었지만 통통하게 보이는 얼굴은 배는 곯지 않은 모습이다.
(12) 이 포스팅에서 한 두장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운천리 일대에서 촬영된 것으로 생각한다.
(13) 영종여객 소속의 버스. 왼쪽부터 김화-철원-포천-의정부-서울 방면의 버스노선표도 보인다.
(14) 쌀가게와 일반 생활용품을 파는 수복상회와 대중음식점인 통천집의 간판에
전화번호가 없는 것은 당시, 전화가 무척 귀한 시절이었음을 말해 준다.
(15) 어린 형제들
(16) 그 시절, 어린 이 세명의 소녀들도 50 후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17) 썰물때의 인천 포구. 인천은 전 세계적으로 간만 차이가 심한 곳이다.
(18) 배경의 각흘봉은 운천리 재래시장에서 보이는 (1)번 사진과 동일하다.
(19) 발동기의 동력으로 벼 타작을 하는 모습이다.
(20)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 소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영북국민학교 직장분대라는 현판이 보인다.
(21) 도리깨로 콩 타작하는 풍경이 보이는 대문 기둥에 <운천감리교회>라고 씌여있다.
(22) 들마루에 몇 점의 뚝배기와 질그릇이 보이는 가운데 구두 수선을 하는 모습과 <황해상회>라는 상호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