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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X-파일 손충무, 현대판 충무공인가 변절자인가?

fabiano 0 1038  

 김대중 X-파일 손충무, 현대판 충무공인가 변절자인가?

 

김대중은 빨갱이 맞아 !”

거의 20여년이 지났지만 청천벽력같은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1997년 겨울,  마음이 착잡하신듯 약간 인상을 찌그리신 아버님은 “요번엔 김대중을 찍어야 할것 같다” 라고 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아니 김대중은 …”  말을 잊지 못하고 있자,

“그래, 김대중은 빨갱이 맞아 ! “

아니 그런데 왜 김대중을…

“그래도 한번은 호남사람들의 한을 풀어 줘야해…”

 
아버님은 장군으로 군을 마친후 국가 정보기관과 주요 요직에서 일하셨었기에 김대중의 실체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랬기에 아버님의 고뇌가 더 컸던것 같다.  ’과연 국가의 안보가 중요한가,

아니면 호남의 한을 한번은 풀어 주어야 하는것인가…’

 
고뇌끝에 아버님은 후자를 선택하신것 같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후 마음에 안드는 정책을 펼때마다 깊은 탄식은 하셨지만, 한번도

비난은 하지 않으셨다.

아버님은 평생 군인으로 북한 공산당과 맞서 싸우셨지만, 말년엔 빨갱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한표

던지셨다.

 
그런가 하면 손충무 라는 언론인은 평생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김영삼과 김대중을 지지하고 도와

주다가 그들의 실체를 알고 나선 돌아서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비리와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마지막 일생을 투자했다.  (안기부 회유에 넘어가 변절한 배신자라는 주장도 있다.)

 
김대중과 박지원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손충무 라는 이름이 여러번 등장 한다.

손충무는 독재정권시절, 경향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김대중이 죽음의 위기에 몰렸을때 그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김대중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었고 김대중과 친분도 두터웠다.

 

Son Xfile.png

 

그러던 그가 김대중 X 파일 이란 책을 냈고, 김대중은 그를 명예훼손이란 죄목으로 2년간 감옥에 가둔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김대중은 정작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책을 쓴 손충무를 잡아들여 벌금형도 아닌 실형을 때려 감옥에 2년씩이나 쳐 넣었다.

그리고 모범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형기를 단 하루도 감해주지 못하게 막았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임에도 불구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빨갱이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한국이 공산화되지는 않았다. 

(비록 북한에 거액의 자금을 상납해 핵폭탄 만드는데 크게 공헌했고,  수백명의 대북 정보원이 죽임을

당하는등 큰 아픔과 손실이 있었지만…)

그리고 오랜기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호남인들에겐 그동안의 “한” 을 풀 수 있는 기회가 10여년간 주어 졌었다.  오랜기간 피지배자로 살다가 10여년간 지배자로서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젠 권력도 어느정도 공평하게 나눠 가지게 된듯 하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백해무익 했던것만은 아니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성장하기 위한

‘필요악’ 의 기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래는 고 손충무 기자가 생전 어떤 인물 이었는지를 추모하는 글.

 

Son.png


 

손충무 발행인 서거 3년을 회고하며

 

[이장연 한마디칼럼] “암살 대상자! 그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본 싸이트를 발행하셨던 고 손충무 언론인의 죽음이 3년째로 다가왔읍니다.

2010년 10월 19일 오전.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분이었읍니다.

 

언론인으로써 부지런하면서 머리에서 떠오르는 착상이 다른 분들과는 다른 것을 워싱턴의 최 측근에서

보아오면서 그리고 심상치 않았던 그의 죽음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언론인 손충무 발행인의 삶은 ‘민족의 비극 속에서 살다가 짧은 인생을 마친 분’으로 생각이 됩니다.

‘짧은 인생’ 70이 넘은 그의 삶을 짧은 인생으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할 일이 많이 있었고 심상치 않은

그의 죽음을 최 측근에서 지켜 본 필자로서 쓰고 싶은 표현입니다.

 

“나는 김대중이를 3번 살려 주었다”는 그의 저서와 같이 김대중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그를 살리는 데

기여한 것을 후회하면서 영하 20도의 춘천교도소에서 고생을 했던 그가 김대중의 배신감에 괴로워하였던 것을 종종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사람을 식별하는 안목을 주셔서 김일성, 김대중 같은 나쁜 놈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방향으로 배격하여 왔읍니다.
그러면서 김대중이와 가까이 하는 손충무 사장님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언론인의 길을 걷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군 오늘 저녁 우리 집에 김대중 선생께서 오시는 데 같이하면 어떻겠나?”
“사상이 다른 사람을 내가 왜 만납니까?”

 

이 이야기는 김대중이가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를 안하겠다고 서약서을 쓰고 돈을 받아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지낼 때이었읍니다.

 

김대중이가 워싱턴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돈을 주는 자들에게는 지필묵으로 글을 써 준다는 말은 잘

알려진 이야기였읍니다.

워싱턴 강원향우회 회장을 지내고 농장을 경영하는 분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도 큼지막한 표구된

액자에 “人乃天”(인내천)이라는 글자 밑에 金大中이라는 성함과 직인이 찍혀 있었읍니다.

 

그 글을 보면서 김대중이의 정체를 다시한번 느끼게 하였읍니다.
얼핏 보면 감옥에서 성경을 많이 읽어 신앙에서 나온 글귀같이 생각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람이

곧 하나님’ 이라는 뜻으로 무신론자가 쓰는 말이 곧 김대중이가 즐겨 사용하는 ‘인내천’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김대중이와 연분이 있는 사람은 특별히 높은 사람으로 생각들을 하였고 김대중이가 만나자고

하면 고하를 막론하고 만나러 달려오는 그러한 때이었읍니다.
손사장님도 자신의 집에 김대중 선생께서 온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읍니다.

더우기 그와의 특별한 관계는 김대중이가 죽을 기회가 왔을 때마다 3번씩이나 살려 준 자가 손충무

사장이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가 김대중을 살려주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일본 호텔에 있는 김대중이를 자루에 집어 넣어 동해바다에 집어 던지려고 했던 중앙정보부의 계획이 워싱턴 백악관 출입기자로 있었던 문명자 여사와 손충무

사장에 의하여 미국 정부요인에게 알려졌고 이에 따라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에서 헬리콥터가 떠 그를

싣고 가는 배에 김대중이를 죽이지 말것을 강요함로 죽음을 면한 것이 김대중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는 깊고 깊을 수 밖에 없는 생명의 은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손충무 사장을 체포, 춘천교도소에, 영하 20도가 되는 추운 곳에서 감형

되지 않은 2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였으니 그의 몸이 무쇠가 아닌한 제 생명을 유지했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내가 그의 건강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읍니다.
글을 타이프하면서 팔이 아파 고통스러워 할 때 그의 팔뚝을 만져보니 장작개비같이 굳어 있었고

이상하여 등과 몸을 만져보니 몸이 굳어져 있었읍니다.

나는 여러 사람들 보았지만 이러한 몸을 가진 사람은 본 일이 없었읍니다.


손충무 사장님은 나를 만나면 황장엽 씨와 함께 “김정일이가 지명한 암살자 세 명 가운데 내가 들어

있다”는 말을 종종하였읍니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기에 흘러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신분을 너무 노출시키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읍니다.

 

김대중이를 동해바다에 던져 살해하려고 계획했던 중앙정보부 담당자는 김대중이 죽지 않고 살았기에 개명을 하고 미국 LA에 와서 성형수술까지 하고 숨어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실은 북한의 김정일이도 손충무 사장에게 속아 넘어가므로 황장엽 씨를 남한에 망명하게 되었고 김대중의 북한 방문 중 아방궁 안에서 이뤄지는 내용과 사진들을 모두 입수하여 김대중이가 김정일이 쓰는

북괴 총책임이 밝혀진 것, 그리고 한국 정보기관과 연계하여 북조선해방전선을 구축하고 임시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기에 김정일이 암살자 3인방에 들만도 한 인물이었읍니다.

 

북한의 김정일이는 손충무 사장이 북한에 망명할 줄로 생각하여 그에게 많은 정력을 쏟은 것이

결과적으로 배신을 당한 꼴이 되었기 때문입이다.

 

손충무!

그는 경상도 하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6.25를 겪은 분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950년 육이오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하동에 숨어 있던 게릴라들이 출동하여

양민들을 학살하고 전쟁이 하동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미 북괴와 연결이 되었기에 동시에 전쟁이 일아난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하였읍니다.

그 당시 손충무 사장의 부친과 친족이 게릴라들에 의하여 사살당하고 많은 고생을 하며 지내온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읍니다.

 

그러니 김대중이가 민주투사요 민주주의의 선봉장이요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불세출의

영웅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고 더우기 김대중의 고교 동문이요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낸 김진하씨(당시 한미타임즈 논설위원/미 연방환경청 근무)를 통해 김대중의 공산당원으로 활동하여 죽게 되었을 때 살려 준 일, 김대중의 공산당과 연계되어 활동한 상황  등을 소상히 알게된

그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겠읍니까?

 

아쉬웠던 것은 자신이 김정일의 암살 지명 대상으로 된 것을 알았다면 자신의 신분에 주의를 했어야

할 터인데 너무 드러나 평민과 똑같이 행동한 것이 결국 죽음을 가져왔다고 나는 봅니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고 밝히는 이유는 그의 죽음을 보아오면서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다고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본인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골수암 글쎄?
나는 암균 절달하는 방법도 모르지만 인간 살해하는 기술이 전 세계에서 최고인 북괴가 암살자로

지목한 그에게 근거없이 죽이는 방법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더우기 북한 내에 있는 남한 정보원 명단을 북한에 넘겨주어 8백명을 죽이게 만든 김대중이가

춘천교도소에 있는 손충무를 정상적인 징역형을 마치고 나와 평안히 살게 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의 음식과 의료행위, 그가 잘 가는 식당, 그를 돌보고 진료하였던 한국인 의료원

그리고 알 수는 없지만 가장 가까운 측근, 그리고 그를 가까이하며 도와주는 척하는 친구들…

김정일과 김대중은 얼마든지 그들을 기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명을 노리는 숨겨진 많은 사람들 속에 싸여 있던 것이 손충무 사장이요, 3년간을 생각하며

얻어진 그의 죽음의 과정입니다.

 

저는 워싱턴에 있으면서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온 사람이었고, 죽음 이틀 전까지 아니 평인으로는

최후로 만난 사람이었읍니다.

주일 밤 10시경까지 그의 아파트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우리 교회 교우님들과 나는 그의 부음을

접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읍니다. 그의 건강상태는 병원 진료 후 약간

마른 상태였을 뿐이지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환자로 인정할 수 없는 상태였읍니다.

 

그러한 그가 병원에 월요일에 입원하여 화요일 아침에 퉁퉁 부은 시신이 되었다는 소식,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읍니다.

장례를 맡은 조윤희 씨의 말에 의하면 그의 죽음이 퉁퉁 부은 이유는 충이 먹어서 부었다는 병원 관계자의 말이었답니다.

얼마나 부었는 지 그가 운명하자 수의로 갈아 입히기 위해 가위로 옷을 짤라 벗기었고 새 옷으로 입히는 데도 옷에 몸이 안들어가 고생을 하였고 그 결과 장례식이 1시간 가량 지연되기도 하였읍니다.

 

골수암으로 운명했다고는 하지만 암 치료로 완전히 낳아 모두 빠져버렸던 머리털도 완전히 회복되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의구심이 더욱 일어났으며 3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는 바입니다.

 

내 생명 귀하면 남의 생명도 귀한데 이를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이장연-insidetheworld.net 칼럼니스트

 

 From : <사막의 향기>  http://blog.donga.com/jonk78/archives/18439

 

 


손충무(孫忠武, 1940년 11월 2일 ~ 2010년 10월 19일)는 대한민국의 기자, 작가, 언론인, 출판인이다.
출신은 경상남도 하동군이다. 1963년 경향신문 기자가 되어 50여년 간 기자,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김구 일대기 완성, 김영삼 사생아 폭로, 김대중의 비자금 의혹 제기 등을 하였다.


1962년부터 1977년까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경향신문 기자와 특파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작가로도 활동하였으며 경향신문 취재부 기자, 취재부 차장 등을 지내다가 일본에서 연구활동을
하였고, 미국에서 LA매일신문, 인사이드 월드 지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그밖에 미국 필라델피아 자유신문 편집국장, 미국 워싱턴 한국신보 편집국장 등을 지내다가 전두환 정권 말기에 귀국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당시에는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김대중을 지지하였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에는 투옥된 김대중을 위하여 미국 정계 및 언론계를 상대로 구명운동을 하였다. 
1992년 김영삼의 대선후보 출마 이후 김영삼과 김대중 공격에 앞장서 ‘김영삼 저격수’, ‘김대중 저격수’ 등으로 불렸다.


김영삼의 숨겨둔 딸을 취재, 보도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하기도 했고, 김대중이 광복이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여 북한 김일성에게 정치자금을 제공받아 정치활동했다는 친공전력을 고발하는
김대중 X-파일을 출판하였다.
 
김대중 X-파일의 경우 당시 대선당선자였던 김대중이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고 기소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미국에서는 김대중 비자금 의혹 폭로와 학생 운동권 세력과 북조선의 연계를 지적, 비판하기도 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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