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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 Photos by Wim Dussel

fabiano 6 2468  

Wim Dussel(1920-2004)은 네델란드 출신의 포토저널리스트로서 1940~1950년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국의 풍물사진을 찍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의 산하 단체에 가입하여 한국전쟁 과정에 대한


사진촬영과 보고서를 썼으며 1952년 그의 저서 [Tjot. The Dutch in Korea]을 출판한 바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풍물과 전쟁고아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종전 후, 1956년 우리나라를 재방문하여 아래 포스팅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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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軍 묘지. 터키軍의 묘소.  부산.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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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軍 묘지.  네델란드軍 묘소.  1956.  부산.

z Busan UN1.jpg
 
네델란드軍 묘소에 헌화하는 Wim Dussel.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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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들.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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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지구 제 20 헌병대 검문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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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軍 배속 한국軍 병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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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비무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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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스트/사진작가, Wim Dussel.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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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m Dussel.  1956.
 
z wash jeep truck tank.jpg

zHoengsung.jpg
 
횡성지구.

z3081.jpg
 
Wim Dussel의 저서, [Tjot. The Dutch in Korea].
1952년 초판, 1990년 재판되었다.
  
6 Comments
paul 2014.12.18 12:54  
첫번째 사진(un묘지 터키묘역) 사진이 좌우가 바꼈습니다.미군사진중 종종 이런 실수들이 발견되고는 하는데.....아마도 귀국 후 생소한 배경 때문이겠지요.사진 인화과정에서 필름을 뒤로 뒤집어서 인화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좋은사진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가야인 2014.12.18 22:26  
세계 유일한 유엔군묘지!1956년도 유엔묘지 중 터키와 네델란드 묘지의 모습을 소개해주어 감사드립니다.
fabiano 2014.12.19 11:15  
사진의 위치가 종종, 바뀌는 경우를 봅니다.paul님의 조언,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fabiano 2014.12.19 11:17  
그 시절, 범일동에서 걸어서 유엔군 묘지를 지나 붕깨라고 부르던 해변에서 멱감던 생각이 뚜렷이 기억납니다. 오늘날, 유엔공원으로 잘 단장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thhgrand 2015.04.06 20:54  
(7) 번째 사진에 풍로가 보이는 군요. 1947년 월남을 해서 이 풍로를 처음 보았습니다. 여름철에는 이 풍로에 숯으로 취사를 하였고  겨울철에는 난로에 나무로 취사를 하였지요. 난로가 있드라도 난방은 어림도 없었고 겨우 취사용으로만 사용을 했지요. 그만큼 월남민들의 생활은 곤궁했습니다. 적산 가옥 2층의 다다미방에서 셋방살이를 했는데 난방을 할 형편이 못되어서 겨울나기가 참으로 어려웠었습니다.그 시절에는 아직 연탄은 없었고 조개탄이라는 것이 있었으나 그것도 가난한 가정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fabiano 2015.04.08 09:41  
이 풍로는 60~70년대엔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개탄이 잘 타지 않아서 바람개비를 이용했는데 그것도 없으면 두꺼운 종이 등으로 불 붙이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요. 50년대는 참으로 질곡의 세월이었습니다. 의식주 모든 면에서 최악의 상태였음은 몸소, 경험하셨지요. 60년대 초반엔 아침밥, 한 술 뜨고 기십리 길을 나무하느라 곤욕을 치른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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