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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남, 대북전단에 라면·스타킹 … 북 'DMZ 여군 목

fabiano 2 1400  

북한의 대남전단은 반정부 선동과 체제 찬양에 맞춰졌다. ①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13일 공개한 북한의 해병대원 위협 전단. ② 실업사태를 겨냥해 투쟁을 선동하기도 했다. ③ 남측은 월남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과 ④ 배우 강수연씨를 내세운 대북전단을 뿌렸다. [중앙포토]

‘삐라(bill)’는 알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운 분단 시기 남북한이 휴전선을 마주하고 뭔 일을 벌였는지 말입니다. 이젠 ‘전단(傳單)’이란 고상한 이름으로 변신한 삐라엔 분단과 대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삐라의 기원 격인 6·25전쟁 때는 한국과 유엔군 측이 물량 면에서 압도했습니다. 투항권고가 주목적이었는데, ‘삐라’를 주우면 귀순 때 신분보장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중공군은 최신무기를 쓰는데 당신들에겐 낡은 걸 줬다”는 다소 유치한 내용도 눈에 띕니다. 북한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미군 위문 차 방한했던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담고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영문전단으로 미군 병사를 유혹했죠. 크리스마스 땐 칠면조 요리가 놓인 파티 사진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수법도 동원했습니다. 전의(戰意)를 상실할 아이템과 타이밍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심리전술입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1950~60년대엔 대남공세가 거셌습니다. 평양의 빌딩과 가정집을 전단에 담아 “오라 북으로’라며 월북 시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주겠다는 형태였죠. 미인계는 북한의 단골메뉴입니다. 우리 여배우의 수영복 차림 사진을 따다가 만든 컬러전단이 유행했는데요. 비무장지대 북측 하천에 여군들이 집단으로 목욕을 하는 ‘실전’을 펼치기도 해 우리 병사들은 애를 태워야 했습니다.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12달러로 처음 북한(194달러)을 앞지른 1969년 이후부터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71년 완공 때 서울에서 가장 높던 삼일빌딩(31층)을 내세웠죠. 우리도 물론 미인계를 썼습니다. 정보당국이 주도한 그때 전단 살포는 정확도가 지금 민간단체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군의 협조로 비무장지대 깊숙이 들어가 날린 데다 공군기상대의 정확한 풍향정보를 토대로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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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단과 함께 소형 라디오와 라면·스타킹·콘돔 등도 날려 보냈습니다. 탈북자들은 “전단과 함께 발견된 식품엔 ‘남조선 괴뢰들이 독을 넣었다’고 보위부가 선전했지만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요즘 민간단체는 달러에다 영화·가요가 담긴 CD·USB 등을 보냅니다.

 심리전은 방송과 편지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고사성어도 결국 한나라 유방(劉邦)의 군에게 포위당한 초(楚)나라 항우(項羽)군에게 고향노래를 들려줘 모두 투항케 했다는 고전적 심리전술이라 할 수 있죠.

 휴전선 확성기로 남북은 몇 ㎞ 밖 병사의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출력경쟁을 벌였습니다. 북한은 귀순유도 방송을, 우리는 가요로 맞서는 형국이었습니다. 주로 여가수 노래를 틀었는데, 84년 ‘J에게’로 데뷔한 이선희씨는 오랫동안 심리전 요원들이 꼽는 베스트 가수였습니다.

 양측은 위장 라디오 방송으로도 경쟁했습니다. 북한은 ‘민민전방송’으로 마치 서울에 추종단체가 활동하는 것처럼 선전했죠. 우린 ‘용미(龍尾)방송’이란 게 있었습니다. 서울외곽 모처에 자리한 이곳에선 평양의 자생적 반체제 세력이 보내는 것처럼 방송을 했는데요. 94년 김일성 사망 때는 출력을 너무 높이는 바람에 남한 내 햄(HAM·아마추어무선사)들이 관계당국에 “평양발 반체제 방송이 있다”고 신고하는 해프닝도 있었죠.

 1990년대까지는 우리 정보기관의 작품인 ‘서신공작’도 은밀히 진행됐습니다. 일제 편지지와 봉투로 북한 핵심인사에게 서신을 쓴 뒤 재일 조총련이 보낸 것처럼 국제우편을 평양에 보내는 겁니다. 첫머리엔 김일성·김정일 찬양을 늘어놓다가 말미에 비판하는 식으로 검열을 피하는 건데요. 내로라하는 대북 전문가와 학자가 짭짤한 ‘원고료’ 때문에 서로 나섰다는군요.

 당국 간 심리전은 2004년 6·4합의로 막을 내렸습니다. 북한의 집요한 요구 때문이었죠. 남한 발전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전단·방송은 물론 고화질 대형전광판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북한은 인터넷 선전·선동으로 방향을 바꿨는데요.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우리민족끼리’ 사이트가 대표적입니다. 우리 민간에서 똑같은 이름의 반북 패러디 사이트를 열어 김정은 비판에 나서자 북한은 당혹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 며칠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으로 시끌벅적합니다. 솔직히 관영매체까지 동원해 우리 국가원수를 비방하던 북한이 민간전단에 발끈하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무튼 풍선에다 총까지 겨눈 걸 보면 다급하긴 다급해진 모양입니다.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2 Comments
brson 2014.10.15 07:12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하는 방법과 수단 그리고 횟수는 그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인터넷이나 각종 신문지상의 덧글을 통한 교묘한 방법,바이러스 침투 등등 어쩌면 현재 풍선으로 하는 방법은 너무나 소극적인 방법이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fabiano 2014.10.15 09:25  
제가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경험에 의하면 박대통령 취임 이후, 갖가지 말도 되지 않는 사건이 엄청나게 일어 났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막말, 선동이 일반 국민에서가 아닌 친종북 떨거지 집단들의 무자비한 행위와 사이버상에서 교묘하게 자행되어 정부와 대통령 죽이기에 올인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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