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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 부산 사람들, (1952년) Photos Kenneth H. Lehr

fabiano 10 5064  


 그때 그 시절 - 부산 사람들, (1952년) Photos Kenneth H. Lehr

 

아래 포스팅은 美軍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Kenneth Lehr씨가 

찍은 그 시절, 부산의 일상과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시절의 시장풍경, 사람들의 일상과 풍경을 컬러사진으로 색채의 질감과 

감성적 느낌이 좋은 코닥크롬 컬러의 선명하고 정겨운 포즈로 찍었다.   

 

 

158Farm lady, 1952.jpg
 
(1)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남편은 전장에 갔을까? 한 아낙이 지게를 지고 있다.  이곳은 <천제등>으로 왼쪽이 수영만(水營灣)이다.

 

159Cleaning soybeans,1952.jpg

(2)  (1952년) Photos Kenneth H. Lehr

 

159cleaning the chaff, 1952.jpg

(3)

 

159Girl with runny nose,1952.jpg

Girl with runny nose,1952

(4) 이 앨범사진을 Flickr에 게시한 M20Wc51님은 아래의 글을 썼다.
Kenneth Lehr씨는 몇몇 사진컨테스트에 출품했으며 이 사진에 "Winner"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사진 출품명은 <Girl with runny nose,1952, 코흘리는 소녀> 이다.

The photographer must have entered this in some contest-this one was marked "Winner" .
It also had his name and military unit written on it-one of the only clues I had as to who took these photos
.

 

159The wheat gatherers, 1952.jpg

The wheat gatherers, 1952
 
(5) 보리단을 안은 남매의 모습이 정겨운 그 시절의 모습이다. 남매가 있는 곳은 천제등 부근으로 생각된다. 
 
159wKorean country Gentleman, 1952.jpg
 
(6) 노인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곰방대용의 풍년초(담배)이다.

 

159wOld Gentleman, 1952.jpg

(7)

 

92Korean farmhouse, 1952.jpg
 
(8) 그 시절엔 땔감이 귀하여 나무를 다듬은 껍질도 땔감으로 말려서 사용했다.

 

92Old Farm lady, 1952.jpg

(9)

 

184Farmhouse, 1952.jpg
 
(10) 이 시리즈에 벽돌, 기와공장이 등장하는데 이 사진은 벽돌, 기와공장의 주인의 가옥이라고 한다.
집 뒤의 산은 금련산으로 정상으로 가는 산길이 보인다.
 
185Korean farmhouse, 1952.jpg

(11) 그 시절의 대연동.

 

184The firewood gatherer, 1952.jpg
 
(12) 땔감용으로 한 지게 가득히 고두배기를 지고 가는 모습. 고두배기는 나무 밑둥을 지칭한다.  

 

276 Mother and Child, 1952.jpg
 
(13) 그 시절,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렇게 젖가슴을 드러내어 젖먹이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276Slides_04_045.jpg
 
(14) 이곳은 남천동 어촌으로 추정된다,
 
277 Old Korean man, 1952.jpg
 
(15) 60여 년 전, 1952년에 찍은 노인의 얼굴은 방금 찍은 것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오래 된 사진이지만 빛바래지 않은 이사진은 다소, 감동적이다. 

 

277Slides_04_050.jpg
 
(16) 배경에 섶자리, 이기대의 모습이 보인다.  1952.
 
227Korean boy, 1952.jpg
 
(17) 잘 차려 입은 이 소년이 생존해 있다면 7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28Housewives, 1952.jpg

(18)

 

229Old inscription, 1952.jpg
 
(19)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넘기고 싶은 것일까? 어린 소녀가 있는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
 
230 kPortrait of Korean Girl, 1952.jpg

(20)

 

238 Monument, 1952.jpg
 
(21) 충장공 정발 장군 전망비 앞에서 선 Kenneth  Lehr. 그는 키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238Slides_07_015.jpg
 
(22)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에서 왜군(倭軍)과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鄭撥) 장군의 사당이다.

 

239a Old Gentleman, 1952.jpg
 
(23) 노인이 앉아서 사진을 찍은 이곳은 정발장군 사당으로 가는 계단으로 보여지는데
댓글 단 tata님에 의하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이 어디일까요?

 

239a Old Scholar, 1952.jpg

(24)

 

239a Two Korean Soldiers, 1952.jpg

(25)

 

239aKorean Soldier, 1952.jpg
 
 (26) 군모에 꽃을 꽂은 군인의 운동화같은 군화를 착용한 모습이 다소, 이채롭다.

 

119G.I. Handy Laundry, 1952.jpg

(27) G.I. Hand... 24HR Service  미군 상대의 세탁업아나 수선집으로 보여진다.

 

120Slides_04_032.jpg

(28)

 

121Dried fish seller, 1952.jpg
 
(29) 이곳은 남천동 어촌으로 추정된다.
 
122A lady and her daughter, 1952.jpg
 
(30) 춘4월, 만발한 벚꽃 구경을 가는 듯, 색동옷을 입은 딸과 함께 손잡고 가는 모녀의 모습이 정겹다.
 
105Slides_04_017.jpg

(31)

 

106A porter, 1952.jpg

(32)

 

261bu Military base, Busan, 1952.jpg
 
(33) 부산 대연동, 못골 부근의 美 제5공군 사령부. 오늘날, 못골 저수지는 흔적도 없다.

 

261bu US Army Base, Busan, 1952.jpg
 
(34) 부산 어느 네티즌에 의하면 오른쪽 건물이 사립 용연보통학교/성지 공립보통학교 대연분교였다고 한다.

 

261bu Searching Base Workers, 1952.jpg
 
(35) 미군부대에 출입하는 노무자들을 검색하는 장면. 이곳은 美 5공군사령부로 생각된다.

 

228Base Office Lady, 1952.jpg
 
(36) Kenneth Lehr씨가 복무한 美軍부대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했던 여성으로 추정된다.

 

228Base Office worker, 1952.jpg

 

(37) 사진속의 여인은 미군부대에서 세탁이나 청소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118Schoolgirl army, 1952.jpg
 
(38) 그 시절, 학도호국단의 여학생들이 소풍을 가는 모습으로 대연동 고갯길로 생각된다.  1952.

 

W The photographer Mr. Lehr.jpg


(39) 이 포스팅의 시리즈 사진을 촬영한, 美軍 Kenneth Lehr씨.  그는 2013. 7.에 사망하였다. Lehr씨의 명복을 빕니다. 

10 Comments
가야인 2014.09.08 13:42  
추석날 본 당시의 얼굴에서 우리의 꾸밈없는 모습을 읽을 수 있군요모두 반가운 얼굴들입니다풍성한 추석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fabiano 2014.09.09 19:06  
세월을 거슬러 보는 면면이 정겹습니다.덕담에 감사드리며 가야인님께서도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셨기를...
abendort 2014.09.10 22:36  
그때도 이쁜 아지매들이 많았군요. 특히 미군부대 근무하는 아지매들의 미모는 요즈음 서울 아지매 보다 훨신 돋보입니다.  요즈음 여자들은 전부 귀신같이 화장해서 마치 화장품 회사 홍보 하는것 같더군요.
fabiano 2014.09.11 11:09  
추석연휴로 재미있게 놀고 과음도 해서 좀, 그렇군요. 그 시절의 면면을 보면 약간의 화장을 하거나 민낯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공중파나 미디어에 나오는 얼굴들은 조각상이거나 너무 지나치게 화장질이어서 본래의 얼굴이 아닌 인공미로 가득합니다. 어쨌던 그 시절의 우리네 누이, 어머니들의 얼굴이 진정한 이미지라고 믿습니다.
쌍둥아빠 2014.09.11 14:39  
좋은 자료 잘보고 있습니다.가끔 인천 자료도 올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
brson 2014.09.12 06:51  
밑에서 두번째 사진에서 52년이라면 아직 전쟁중(50.06.25 - 53.7.27)일 것으로 추정이 되나전쟁 중에도 소풍을 갔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습니다뒷배경으로 보이는 민둥산이 도리어 정겹습니다
fabiano 2014.09.12 20:40  
감사합니다. 이 카테고리에 보면 인천에 관한 자료도 있습니다.
fabiano 2014.09.12 20:44  
38선 전후방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테지만 최남단 부산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이어졌군요. 땔감이라곤 나무밖에 없었으니 그러려니...하고 생각합니다.
tata 2014.09.19 17:05  
이기대는 정확히 말하면 사진에 보이는 부분의 너머편이라 이기대가 보인다는 표현은 뭔가 어색합니다.이기대 방향이나 이기대 부근이라고 하든지 동산이 보인다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다.정발장군은 임진왜란 최초 부산진성 전투에서 강직하게 맞서다 전사했기 때문에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정공단은 공로보다는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입니다.노인이 앉아 있는 계단 사진은 정공단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계단의 폭이 정공단 내삼문 장면에서보다 훨씬 좁으며정공단에는 세번째 사진처럼 계단이 직각으로 꺾이는 곳이 없습니다.부산부와 외인출입엄금이라 적힌 팻말도 정공단과는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fabiano 2014.09.21 05:50  
tata님의 내공이 돋보이는 댓글입니다.일련의 이 시리즈 포스팅은 사진 촬영자인 Kenneth Lehr씨의 설명이 없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인데 tata님의 고증으로 많은 도움과 해설이 되었습니다. 댓글의 말씀은 정확하다고 믿습니다. 나름대로의 표현과 설명을 했지만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오류와 불찰입니다. 어쨌던 님의 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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