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어부지리(漁父之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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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漁父之利)

fabiano 0 1091  
 1. 연(燕)나라의 복수

연(燕)이라는 나라는 산동의 변두리에 있는 오랑캐[東夷族]로 혈연으로는 중국보다 우리쪽에 가깝습니다. 워낙 변방이어선지 춘추시대의 귀중한 자료인 《춘추(春秋)》에는 이 나라에 관한 기사(記事)가 아주 드뭅니다.
전국시대의 활발한 전쟁과 외교는 이 변방을 다시 중원제국과 교섭하게 했습니다. 기원전 323년 역왕(易王) 때는 다른 제후국들처럼 떡하니 왕(王)이라는 호칭도 쓸만큼 강성해졌습니다. 이 나라의 주요 경쟁상대는 남쪽의 강대국인 제나라였습니다. 한때는 그 침공을 받아 굴욕적인 지배 하에 놓인 적도 있었습니다. 바로 앞 ‘오십보백보’의 강의에서 그때의 정황과 맹자의 논설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2년간의 엄청난 재난을 겪은 후 등극한 새 임금 소왕(召王)은 겸손한 자세로 인재들을 초빙하고 국력을 키우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하여 위(魏)나라의 악의(樂毅), 제(齊)나라의 추연(鄒衍), 조(趙)나라의 극신(劇辛) 등 뛰어난 인사들이 속속 연(燕)나라에 도착했습니다. 소왕은 죽은 자를 위문하고 고아를 위하며 백관 민중과 고락을 같이 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28년, 기원전 284년에 연나라는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 여러나라와 연합하여 원수인 제(齊)나라를 짓쳐 들어갔습니다. 풍비박산하여 패주하는 제나라 군대를 추격한 연나라 군대는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까지 진격하여 보물을 약탈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제나라의 거의 전 영토가 연나라의 수중에 떨어졌고, 몇 개의 도시만이 겨우 미미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내친 김에 여세를 몰아 소왕은 동쪽과 북쪽의 오랑캐를 밀어내고 장성을 구축, 방비를 튼튼히 차립니다. 이 오랑캐가 다름아닌 우리 고조선입니다.


      2. 조개는 황새의 부리를 물고

국제 역학관계란 묘한 것입니다. 군사력을 있는대로 모아 함께 제나라를 공략하느라 정작 연나라의 수도는 방비가 허술했습니다. 이 낌새를 알고 한때 연합국이었던 조(趙)나라가 연나라를 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연나라의 소왕은 이 싸움을 원치 않았습니다. 제나라 하나를 상대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기 때문에 조나라와의 결전은 어떡하든 피해야 했습니다. 연나라 왕은 소대(蘇代)라는 언변좋은 인물을 보내 설득전을 폈습니다. 《전국책》 <연책(燕策)>의 원문을 소개합니다.

   조(趙)도 연(燕)나라를 치려 했다. 소대(蘇代)가 연(燕)을 위해 조(趙) 혜왕(惠王:재위 B.C.298-266)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제가 역수(易水)를 건너 오면서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았습니다. 큰 조개 하나가 뭍에 올라와 해를 쬐고 있었는데 황새 한 마리가 다가가더니 벌어진 조개의 속살을 부리로 쪼았습니다. 이에 놀란 조개는 껍질을 다물어 황새부리를 꼭 조아 버렸습니다. 부리를 물린 황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을 목숨이다.’ 조개도 지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도 네 부리를 놓지 않고 내일도 놓지 않으면 네까짓게 굶어 죽지 별수 있냐?’이렇게 둘이 서로 양보 없이 아웅다웅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부가 둘을 몽땅 챙겨들고 집으로 가더이다. 지금 왕께서 연나라를 친다 하시는데, 두 나라가 서로 겨루느라 백성들이 지쳐버리면, 아마도 강성한 진(秦)나라가 어부 노릇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왕께서는 이 점,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혜왕은 소대의 이 말을 듣고 ‘맞는 말이야’ 하면서 연(燕)을 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조(趙)나라의 혜왕은 앞의 제 6회 ‘완벽(完璧)’편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천하 보배인 구슬을 달라는 진(秦)나라의 무리한 요구를 받고 고민하다 인상여(藺相如)의 기지(機智)로 ‘구슬을 온전히 돌려받는(完璧)’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임금이 바로 이 혜왕(惠王)입니다. 혜왕은 인상여를 재상으로, 그리고 염파(廉頗)라는 장군을 두 축으로 조나라를 번성시킨 현명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소대의 언변이 조나라왕의 마음을 돌려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나라의 혜왕으로서도 연나라 침공이 얼마만한 위험부담인지를 충분히 재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력부대가 제나라로 가 있다고는 하나 연나라는 지금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그런 판에 섣불리 싸움판을 벌였다간 두 나라 모두 엄청난 국력 소모로 인해 진나라의 손쉬운 먹이로 떨어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흡사, 황새와 조개가 서로 잡아먹겠다고 싸우면 결국에는 어부만 좋은 일 시키듯 말이지요. ‘어부의 횡재(漁父之利)’라는 말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좀 더 부연해 보자면, “양쪽이 싸우거나 다투는 와중에 엉뚱한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이득을 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한문 구성상 ‘어부의 이득’이란 뜻이므로 ‘어부지:리’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은데 관습상 ‘어부:지리’로 굳어진 듯합니다.


       3. 미소(美蘇) 냉전(冷戰)의 희비극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에 의해 36년 동안이나 식민지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바쳐서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웠으며, 그결과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는 둘로 쪼개 졌습니다. 동서 냉전체제의 희생물로 우리는 6.25라는 동족상잔의 처참한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기 며칠 전, 토요타(富田) 자동차의 카미야 사장은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인 엄청난 트럭을 헐값에라도 처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포드사와 마지막 협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포드로서는 자국의 생산력과 기술이 월등하여 미국의 수요를 점령하고 있는데 굳이 일본차를 사들여 올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 냉담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회사가 이제 내려 앉는다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던 키미야 사장은 6.25일 아침 한국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습니다. 처음에는 일본까지 전쟁터가 되는게 아니냐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막상 일본으로 돌아와 보니 이게 웬 일입니까. 엄청난 양의 주문이 밀려와 있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자면 각종 차량과 장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입니다. 회사를 밤낮없이 풀가동해도 미극동군사령부의 주문에 대지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한달에 300대가 채 안 팔리던 것이 1500대 이상 팔려 나갔습니다.
어디 토요타뿐입니까. 일본전역의 공장이 한국전쟁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매달렸습니다. 일본은 이것을 섬짓하게도 ‘전쟁특수(戰爭特輸)’라고 부릅니다. 거기에는 “한국전쟁이 가져다준 고마운 선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특수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은 2차 대전의 패전국 일본이 감당해야할 모든 제약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 두개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일본에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전쟁 전의 수준으로 묶고 사회 정치적 통제를 엄격히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보고 나자 미군은 소련의 남하, 즉 아시아의 공산화에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느끼고, 그 방법으로 일본을 급속히 키우는 쪽을 택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경제 부흥, 그리고 지금 저렇게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자라 새로운 군국주의를 꿈꾸고 있는 저 섬나라의 기적은 에누리없이 미국과 소련간의 파워게임, 그리고 그 파장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어부의 횡재(漁父之利)’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의 고통은 온통 한반도가 떠맡고 일본은 그 방패 뒤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분단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From   Sso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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