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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연평도 포격 때 한국 전투기 보복 … 오바마·힐러리까지 나서서 말렸다

fabiano 6 1306  

로버트 게이츠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다. 그해 3월의 천안함 침몰에 뒤이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의 분위기는 강경했다. 보복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 한국 정부는 당초 전투기와 포대를 동원한 보복을 계획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과도할(disproportionately) 만큼 공격적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그리고 나는 각자 한국 측 파트너를 상대로 며칠간 전화기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한국은 포대 공격만 했다. 당시 중국 측도 북한 지도부를 상대로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노력을 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 『임무(Duty)』의 한 대목이다. 14일(현지시간) 판매를 시작한 618쪽 분량의 이 회고록에는 군데군데 한국 관련 대목이 나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인 2006년 12월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2011년 6월까지 4년6개월간 국방장관직을 지킨 게이츠 전 장관은 노무현·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까지 회고록에 실었다.

 ◆전직 대통령 상반된 평가=게이츠 전 장관은 2010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정신력이 강했고, 현실적이며, 매우 친미적이었다”고 평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북한은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걸 중국 총리에게 경고했다”고 말한 사실도 적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이 전 대통령과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2007년 11월 서울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확고한 반미주의자였으며, 약간 이상했다(a little crazy)”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아시아의 최대 안보 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2007년 11월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지 한 달 뒤다.

 ◆“중국과 북한 급변사태 논의 원해”=게이츠 전 장관은 2009년 10월 워싱턴에서 쉬차이허우(徐才厚)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만나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과 정권이 붕괴했을 때 중국과 한국에 미칠 위험에 대해 자세하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날 경우 북한의 핵무기와 핵 관련 물질을 미국과 중국이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쉬 부주석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북한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 감사한다’가 전부였다”고 토로했다. 게이츠 전 장관은 2011년 1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당시 부주석을 만나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고도 밝혔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으로 지역 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미국은 물론 중국에도 우려가 될 수 있다고 하자 시 부주석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안정이 모두의 이익”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게이츠 전 장관은 회고록 후반부에서 “국방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중국 측 인사들과 만나면 최우선 순위로 북한 핵 문제뿐 아니라 급변사태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같은 민감한 주제에 관해 대화의 문을 열기를 원했다”고 강조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고집=2009년 3월 발생한 북한의 미국인 여기자 2명 억류사건도 회고록에 포함됐다. 당시 북한 측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와야만 두 여기자를 풀어줄 수 있다고 연락해 왔다고 한다. 논의 끝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방북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미·북 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우선 여기자 2명의 석방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으나 카터 전 대통령은 “조건을 걸어선 안 된다”며 “그들(북한)도 주권국가”라고 되받아쳤다고 한다. 당시 자신은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게 됐으며, 여기자 2명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6 Comments
fabiano 2014.01.16 12:04  
“2007년 11월 서울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확고한 반미주의자였으며, 약간 이상했다(a little crazy)”고 주장했다. .
Neptune 2014.01.16 12:52  
약간 이상했다고 번역했지만 a little crazy ~라고 했네요ㆍㆍ
fabiano 2014.01.16 17:33  
까놓고 말해서 약간 정신 나간 사람...이지요.
brson 2014.01.17 06:27  
보편 타당한 생각을 가지신 것은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그러니 좋은 이웃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겠지요
fabiano 2014.01.17 10:44  
동시대를 살아 온 터이지만 정말, 한 나라의 수장으로선 낙제점이었습니다.
abendort 2014.01.17 11:49  
제가 생각하기엔 약간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극동이 어디 그런 방만한 오기로 줄타기 할 곳 입니까?  발칸, 아프리카와 더불어 아시아에선 far east가 숨쉬는 화약고라 인식하고 있어요.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던것이 만고 수치라 생각 됩니다. 어제 저녁 네이비 실 출신 양키 친구와 않그래도 이 기사 얘기를 하면서 위스키 좀 마셨습니다. 다시한번 손자 탄생 축하하며 같이 기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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