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퍼온글] 노무현 대통령 閣下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사진으로 보는 뉴스
내 블로그

[퍼온글] 노무현 대통령 閣下

fabiano 0 1199  
이승만, 盧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다

1514982374131766.jpg
▲ 강천석 논설주간
노무현 대통령 각하(閣下).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봉직했던 이승만(李承晩)이올시다. 우선 각하에 대한 특별한 친애(親愛)의 정을 전합니다. 나이 스물 무렵에서 일흔까지 망국민(亡國民)의 한을 품은 채 이역(異域)을 떠돌았던 나로서는 독립된 나라에서 태어난 국민으로 처음 대통령에 오른 각하가 너무나 장하고 대견스럽습니다.

갑작스럽게 서찰(書札)을 내게 된 것은 긴(緊)히 설명 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개인사(個人事)가 아닙니다. 각하의 정부가 과거사(過去事) 정리에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습니다. 1875년에 태어나 1965년 이곳에 오게 된 내 개인사 말고 대한민국의 과거사가 따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긴 글 읽는 선비로서 망국을 막지 못했고, 대통령으로선 전쟁을 막지 못했던 내 평생이 허물 많은 인생이긴 합니다. 다만 나라 정세가 긴박하고 국민이 고단한 지금 그 일에 국력(國力)과 민력(民力)을 기울여야 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오늘 필묵(筆墨)을 끌어당기게 된 것은 나라 사정이 너무 화급(火急)한 듯해서입니다. 내 젊어서 나라 모습이 꼭 이랬습니다.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제 발로 망국의 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더구나 나랏일이 이렇게 엉킨 데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각하의 오해(誤解)도 있는 듯싶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던 당시 대통령으로서 저간의 사정을 각하께 설명할 일을 더 늦출 수 없었습니다.

우선 한·미 안보조약은 미국이 먼저 맺자고 한 게 아닙니다. 내가 미국을 닦달한 것입니다. 52년 10월 4일 나는 양유찬(梁裕燦) 주미대사에게 전문(電文)을 보내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심지어 일본하고도 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유독 한국과의 조약만을 뿌리치는 이유를 따지라”고 지시했습니다. 훗날 일본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다시 일어서면 한국을 ‘다시’ 일본의 밥이 되게 할 생각이냐고 들이대라고도 했습니다.

‘다시’란 말엔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정치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해서 5년7개월간 한성감옥(漢城監獄)에서 옥살이를 하고 나온 1904년 조정(朝廷)에서 급히 나를 찾았습니다. 나라가 위급한데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태평양을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다음해 8월 4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습니다만 분위기에서 벌써 찬바람이 이는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바로 닷새 전 미국과 일본은 비밀협약을 맺어 양국이 조선과 필리핀에서의 기득권을 서로 인정해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우리가 세계 정세에 어두웠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국민 앞에선 한 번도 이 일을 꺼낸 적이 없습니다만, 그때 그 일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만나고 친서를 교환할 때마다 이걸 들어 미국을 다그치고 안보조약 체결을 재촉했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릴 것은 이 조약이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만이 아니라 장래 일본의 팽창주의를 저지한다는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설계됐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1953년 6월 17일 주한미국대사 브릭스를 경무대로 불러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오늘 한국은 공산주의자의 위협 때문에 한·미방위조약이 필요하지만 내일은 일본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조약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말대로 한·미방위조약은 미국 어깨에 일본을 제어(制御)할 짐을 지운 조약입니다. 일본을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그때나 이제나 미국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독도에 대해 일본이 또 심상치 않은 언동을 시작했다는 걸 들었습니다. 한·미동맹이란 대들보가 흔들리니까 그 위에 얹힌 한·일 관계라는 서까래가 요동을 치는 것입니다. 대북(對北)관계야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하는 대통령에겐 친(親)·불친(不親)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반독파(反獨派)의 영수(領袖)로서 독일과의 전쟁 지휘를 앞두고 있던 윈스턴 처칠은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친불적(親佛的)이니 반독적(反獨的)이니 하는 소리에 눈을 깜박일 필요조차 없다.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내일이라도 친독(親獨)·반불(反佛)로 돌아설 것이다.” 처칠의 말대로입니다. 각하께서 평소 미국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나라가 가야 할 길이 어디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각하의 그 결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병술 만춘(丙戌 晩春) 우남 서(雩南 書)

강천석 · 조선일보 논설주간

0 Comments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35 명
  • 오늘 방문자 1,067 명
  • 어제 방문자 1,434 명
  • 최대 방문자 14,296 명
  • 전체 방문자 1,312,502 명
  • 전체 게시물 10,948 개
  • 전체 댓글수 35,460 개
  • 전체 회원수 71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