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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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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麻露 작가의 말:

江은 흐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역사도 흐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의 삶도 그렇다. 이 흐름 속에서 嫄穗 바로 한 세대의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있겠지만 당시엔 치열했던 그런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거다. 그러나 결국은 흐르고 말겠지. 그래서 江이라 부르고 싶다.

흘러 흘러가면서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그런 江. 조용히 소리 내며 흐르다가도 때론 큰 포말을 일으키고 범람도 하며 살아있는 江. 모두가 너와 나 본연의 모습이리라.

이민이란 파종(播種)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맞게 되면서 가치관과 질서의 혼란이 오고 직업은 물론이고 가정의 위계도 바뀌게 된다.

당연한 사연이지만 그런 변화 속에는 또 아픔도 함께 자리한다. 치유 되기도 하지만 그 아픔에 함몰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민 오기 전의 관습, 이민 온 나라의 규범, 그 둘이 섞어져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현장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에 따라 성숙하기에 이민 연수에 따라 또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지며 갈등도 빚는다.

이런 이민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흐르는 江처럼...

 

* 제시카 오 부동산 에이전트

 


부동산 에이전트 생활을 2년 넘게 열심히 하다 보니 예전에 흑인들이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마켓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지는 자신을 느끼며 깜짝 놀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매일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머리는 샤워하고 말리기만 했지 미장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머리가 길면 고무줄로 묶었고 모자를 써서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도 했다.

마켓에서 카운터를 지키면서 흑인 손님들이 건네주는 페니와 싸우다 보면 나중엔 페니 보기도 싫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지워선 안 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에이전트는 딜이 쉽게 되진 않아도 일단 노는 물이 달랐고 여성으로서 멋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동료들도 경쟁자이면서 협력자이기에 자주 어울려서 식사도 하고 저녁 늦게까지 함께 놀기도 했다. 때론 집을 산 사람이 집들이를 한다고 하면 대형 액자나 큰 화분 등을 사 가지고 가서 초대 손님이 다 갈 때까지 같이 지내면서 대화를 해야만 했다.

그런 것이 바로 서비스의 연장이고 다른 에이전트도 그렇게 하는 서비스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오픈 하우스나 집들이와 같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 오승일과 이상한 거리감이 느낄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승일도 피곤한 지 샤워한 후에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있기 일쑤라 둘은 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맴돌다가 말없이 신문을 보거나 TV를 시청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곤 했다.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불만이긴 하지만 모두 일로 인한 것이라 뭐라 하기도 그렇고,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니 웃으며 맞이하기도 어려워 점점 멀어지는 감을 서로가 각자 느꼈다.

우선 부부로서 대화를 함께 나눌 공동의 소재가 없었던 것이다.


오승일은 원래 말이 많지 않았고 혼자 마켓을 운영하다 보니 집에 돌아와서 흑인들이 맥주 사 간 얘기하기도 이상하고 제시카도 부동산 거래에 관한 시시콜콜한 후일담을 피곤한 남편에게 해 봐야 재미있어 하지도 않아 자세하기 말하기 어려웠다.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제시카는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켓을 팔자고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당장의 생활이야 자신이 벌어서 하면 되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남편 오승일 에게 약간의 휴식도 필요했고 수년 동안 막일에 시달린 남편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자신이 능력이 되니까 조금 쉬게 한 후에 다시 비즈니스를 찾아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판단했다.

보약도 좀 먹게 하고 부동산 에이전트 하느라 살림이 뒷전이었는데 이에 대한 보상을 남편과 딸 수진에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때만해도 제시카는 오승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남편이 마켓을 팔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정말 그곳에 점심식사를 가져가기도 지겹게 느껴지면서 남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변해가고 있음을 스스로 감지했다.

남편도 피곤하겠지만 자신도 마찬가지로 피곤했다. 딜이 성공하여 몫돈이라도 생긴다면 신명이 날텐데 다 된 일이 엉뚱한 곳에서 그르치거나 생각지도 않은 일로 변호사로부터 소송에 대한 편지나 받고 하면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면 자신보다 더 피곤해하는 남편을 봐야했고 가사 일은 엉망으로 늘어져 짜증이 절로 났다.

 

처음엔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 경고음을 울렸지만 그것도 차츰 만성이 되면서 더욱 바깥으로 나돌았다.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 가면서 직원들이나 고객과 어울렸다. 마음속으론 이혼은 절대 안 되지. 딸 아이 수진이 때문에도, 남편도 비록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으나 법이 없어도 살 어진 사람인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계속 추스르고 자신을 달랬지만 점점 멀어지는 마음은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도 부부관계가 잦은 편이 아니었고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했는데 그마저도 없어지면서 각 방을 사용하게까지 되었다. 오승일도 반대하지 않았다.

처음엔 혼자 자자니 조금 허전했지만 훨씬 편하고 좋다고 여겨졌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완전하게 벌려도 걸리지 않고 몸부림을 쳐도 표시도 나지 않아 이래서 각방을 쓰는구나 하고 새삼 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대신 제시카는 수진이와 더 얘기도 많이 하고 바쁜 어머니로서 잘못해주는 부분을 보상이라도 하듯 잠자리에서 꼭 껴안고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사고의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날이 왔다, 제시카가 교회 건물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딜을 많이 도와 준 동신교회의 건축위원인 이성준 집사와 함께 한 저녁식사가 제시카에겐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교회가 예배를 보는 건물을 사기 위해선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와 같은 교회 내부의 방침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비영리기관으로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나 장로의 개인 크레딧도 중요했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을 경우 건물 구입에 따르는 은행의 융자가 쉽지 않아 교회 성도들 중에서 크레딧이 좋은 사람이 공동보증을 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매년 세금보고를 한 내용과 교인의 헌금 기록 등 갖추어야 할 서류도 많아 매매의 성사를 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부분이 많고 중간에 계속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애를 먹인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성사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기도 하는데 유능한 에이전트는 이를 잘 극복하고 교회당을 지금 사지 않으면 상당히 후회가 따른다는 논리를 펼쳐 나간다. 즉 지금 이 건물이 다른 지역의 어떤 건물보다 조건이 수월하고 한인들이 예배보기 편리하며 주차시설이 나무랄 데 없어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일종의 경고이자 압박이다.

이런 설득은 부동산 에이전트가 혼자하기 보다는 교회 내부에서 재정위원이나 발언권을 가진 실력자가 동조를 해주어야 납득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나이 많은 장로나 권사는 부동산 거래와 미국의 법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목사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으로 생각하고 아멘하며 크게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거래과정에서 이성준 집사는 몇 번이나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또 동신교회 내부 형편을 제시카에게 자세히 설명도 해주었다.

매번 고마움을 느꼈지만 커피 정도를 나누거나 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업무적으로 나눈 대화가 전부였다.

우여곡절을 거쳐 완전히 에스크로가 끝나고 제시카가 상당한 커미션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사람이 이성준 집사였다.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안한 것도 제시카였다.

“이 집사님. 오늘 저녁 시간 어떠세요. 제가 에스크로에서 커미션을 받았는데 그냥 입 닦고 오리발 낼 순 없잖아요. 나중에 멋진 양복도 물론 한 벌 해드리겠지만 일단 저녁부터 제가 한 턱 낼게요.”

“그래요. 축하합니다. 이번 딜이 쉽지 않았죠? 다른 에이전트들도 많이 달려들고 해서 더 그랬을 거예요. 그래도 제시카 씨가 영리하게 매듭을 잘 지어서 다행입니다. 일이 안 풀리려고 하면 방해하는 사람들의 페이스에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딜을 성사시키는 것보다 남의 딜을 깨는 게 목적이라 아주 적극적입니다. 특히 다른 에이전트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가격을 후려치기도 하거든요. 어차피 자기 돈이 될게 아니니까 샘이 나는 거고 또 딜이 깨진 후면 자기에게 찬스가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집사님. 제가 지금 되돌아봐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에스크로에서 커미션을 받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서지 않더라니까요. 워낙 힘들게 힘들게 끌어와서 그랬겠지만 정말 이제 한 짐 벗었어요.

거래도중엔 제 정신이 아니었고 저도 모르게 홀려서 이렇게까지 온 거 같아요. 다 집사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교회 내에서 여론을 많이 선도하셨고 내부의 동향을 제 때 저에게 알려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 이상은 집사님 덕분입니다. 오늘 정말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라며 이성준의 공치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니죠. 제가 여론을 선도한 것은 없고 다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시간이 많이 지내야 되지 싶어 그랬지요. 뭐 대단 한 게 아니고 목사님과 장로님과 의논한 내용이야 당연히 에이전트와 상의해야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겸양의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저녁을 먹으러 갑시다. 뭐 좋아하시죠? 일식? 아니면 한식?”

“글쎄. 제시카 씨는? 뭘 좋아하세요?” “그럼 저기 재팬 타운으로 가서 사시미하실래요? 한인 타운은 좀 번잡하니까.”

“그래요. 그럼 한 차로 가지요. 한 대는 여기 회사에 파킹해두고. 제가 모시지요.”하며 이성준은 자신의 자동차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제시카는 “아니에요. 제가 모시는 데 제 차로 가요.”라며 자신 의 벤츠 300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어주고 옆 자리에 이성준이 앉자 자동차는 다운타운 방향으로 달렸다.

2가와 산페드로 인근의 혼다 플라자의 스시겐에 도착하였는데 바로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기재하고 20여분 기다리자 차례가 돌아왔다.

이 집은 식사시간이면 항상 만원이라 기다리지만 그만한 가치를 싱싱한 신선도와 맛으로 보상했다.

둘은 스시 바에 마주 앉아 스시맨이 만들어 주는 맛있고 싱싱한 사시미와 정종을 마셨다. 자리가 워낙 좁아서인지 무릎이 슬쩍 슬쩍 맞닿기도 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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