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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 1904년 조선시대 ⑤

fabiano 10 8746  
 
그때 그 시절 - 1904년 조선시대.
 
zA merchant and his friends on a cold day.jpg
 
짚신장수. 꽤, 추운 날씨인 듯, 두손을 소매 안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zStreet scene.jpg

배경에 釜山ㅇㅇㅇ라고 씌어진 입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소는 부산의 거리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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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13 1905.JPG
 
전형적인 儒學者.

z18.JPG
 
해금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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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관리 부부.

zRiverside landscape.jpg
 
평양, 대동강변.  강건너 모란봉이 보인다.

zLegation.JPG
 
전형적인 한옥으로 公事館인 듯, 경비병의 모습이 보인다..

zSeoul city.jpg
 
당시, 경성의 일부.

z1904 Seou townl.jpg
 
당시, 경성(서울)의 모습.

zTongdaemun.jpg
 
동대문. 원래는 興仁之門이라고 하였다. 태조 6년 (1397년)에 건립되었으나 1896년에 재건축되었다.

zTonhwa Mun.jpg
 
돈화문.  1412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후에 다시 건립되었다.

zJapanese Consulate.jpg
 
일본 영사관.   1906년.

z1904Flood scene.jpg
 
1904년 대홍수.  6월 말에서 8월 초까지 집중적인 호우로 인하여 엄청난 홍수를 겪었다.

zExecution of 3 Korean spies.jpg
 
경부선 철도를 파괴한 죄목으로 3명의 조선인을 처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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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화재 현장.  이 화재사건으로 많은 궁궐과 건물이 불타 버렸는데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으나
항간의 소문은 일본에 의한 방화사건으로 알려졌다.
 
z1904 Japan soldiers.jpg
 
남대문 외곽을 거쳐 입성하는 일본軍.  1904년.

zSeoul from a distance.jpg
 
명동성당이 보이는 전면에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과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이 보인다.
명동성당은 프랑스人 Jorge Coste 신부가 1892년에 디자인하였으며 1898년에 세워졌다.

zJapanese Infantry.jpg
 
일본軍 보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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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大漢門 앞의 일본군.    배경에 일본군악대가 있다.

zLumber for the Taracol mill.jpg
 
전국 각지에서 목재를 수집하였다.

zsteel structure.jpg
 
목재로 된 교량을 철제로 교체하기 위한 작업이다.

zfirst train crosses.jpg
 
1880년대 부산과 경성(서울)간의 경부선 철도가 완공되어 최초의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지하자원과 생산품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었다.

zLocomotive on bridge over streetcar.jpg
 
전차길 위의 철교와 열차. 
高宗은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 철도, 금광개발 등의 서구의 기술이 나라를 부유하고 강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7.JPG
 
미국인 Leigh S.J. Hunt와 J. Sloat Fasset에 의하여 금광을 개발하기 위한 건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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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미국인에 의하여 설립된 평북 운산의 금광. 1903년~ 1938년 까지 1천 2백만불 이상을 벌어 들였으나
당시 조선왕실에서는 불과 10만불에 금광개발권과 모든 권리를 양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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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Leigh S.J. Hunt와 J. Sloat Fasset이 금광석을 개발하기 위한 공장을 짓고 있는 장면. 
1898년 5월.  평북 운산지방.

6.JPG

1903년 - 1938년 까지 미국인에 의하여 운영되던 금광의 모든 권리는 1939년 일본에 양도되었다.
 
 
10 Comments
가재샘 2011.05.20 07:23  
저렇게 허허 벌탄이던 시절에 명동에 밭떼기 하나 사서 배추농사를 했더면 지금쯤은 ㅎㅎ태어나기 전의산하를 보니 기분이 묘합니다
드넓은 광야 2011.05.20 17:23  
우리나라도 조금더일찍 서양문물을 도입했더라면 일제36년이라는 치욕은 없엇을것을 하는 아쉬움이듭니다
fabiano 2011.05.21 08:46  
그 시절의 명동이 한가로운 읍내 풍경입니다. 당시엔 땅값이 무척 쌌을 것이니... 조그만 밭떼기가 있었더라면 떵떵거리며 사실 가재샘님이었을 터입니다.  ㅎㅎ..
fabiano 2011.05.21 09:04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Neptune 2011.05.24 17:17  
100여년 전 일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격세지감을 느낀답니까.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fabiano 2011.05.24 20:52  
우리나라가 반세기도 안되는 세월에 엄청나게 발전하여 실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과학기술도 발달하여, 아마도 신의 영역에까지 넘볼 듯 합니다.
가야인 2011.05.24 23:41  
불과 100여년전의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일제강점기의 군대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사진중 경부선설명에서 1901년에 기공하여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며, 이듬해 1905년 1월 1일자로 개통되었었죠.
昊星(호성) 2011.06.01 01:52  
일제에 미국에 외세에 그리도 많은 고통을 겪고 나사도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과북이 갈라져 있다는게 통이해가 않가는 부분입니다.
fabiano 2011.06.01 07:38  
구한말, 미국이 통상교섭을 하여 이 땅에 왔으나 일본처럼 침략하거나 수탈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경성 입성은 이미 국가의 주권을 빼앗아 버린 무단정치의 시작이었지요.
fabiano 2011.06.01 08:14  
해방 후, 공산주의사상으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요. 일반적으로 그 당시 공산주의 이론은 그럴듯한 사상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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