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흐르는 江 제4부 ③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이야기
내 블로그

흐르는 江 제4부 ③

fabiano 0 1139  
419.jpg

 
李麻露 작가의 말:
 
江은 흐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역사도 흐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의 삶도 그렇다.
이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의 얘기는 바로 한 세대의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빛 바랜 추억으로 남아있겠지만 당시엔 치열했던 그런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거다.

그러나 결국은 흐르고 말겠지. 그래서 江이라 부르고 싶다.
흘러 흘러가면서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그런 江.
조용 히 소리 내며 흐르다가도 때론 큰 포말을 일으키고 범람도 하며 살아있는 江.
모두가 너와 나 본연 의 모습이리라.

이민이란 (파종播種)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맞게 되면서 가치관과 질서의 혼란이 오 고 직업은 물론이고 가정의 위계도 바뀌게 된다.
당연한 사연이지만 그런 변화 속에는 또 아픔도 함 께 자리한다.
치유되기도 하지만 그 아픔에 함몰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민 오기 전의 관습, 이민 온 나라의 규범, 그 둘이 섞어져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현장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에 따라 성숙 하기에 이민 연수에 따라 또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지며 갈등도 빚는다.
이런 이민의 환경 속에서 살 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흐르는 江처럼...

 
 
4.29 폭동으로 충격을 받은 남편 오승일이 세상을 떠난 후 정신없이 자신을 묻고 살아온 지난 2년의 세월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밤이면 가끔 찾아오는 적막감과 외로움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하고 만나고 사귀기도 어려워 혼자 지내 오다가 강 우태를 우연히, 참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민혜에게 우태는 정신적으로 남달랐다.
학창시절 연인이었고 이성으로 만나는 첫 남학생이었다.
짧은 기간이라 진한 추억보다는 아련한 마음이 더 많 지만 둘은 깊게 사귀기도 전에 우태의 군 입대로 아쉬운 이별을 한 탓에 그에 대한 추억은 항상 아 름다운 상태로 마음 한 구석에 자라잡고 있었다.
민혜는 그 때의 아쉬움을 보상 받으려는 듯 철저히 매달리며 긴 동면에 잠겨있던 자신의 욕구에 불을 댕겼고 우태 역시 젊은 날의 사랑이어서 정신적 만족감이 충일했다.
아니 그보다도 민혜가 가진, 본인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떨림과 강한 조임과 흡입에 더한 기쁨을 느낀 것이다.
특이한 신체구조처럼 느껴졌고 우태에겐 완벽한 기쁨을 주었다.
충분한 터치와 길게 끈 사랑의 주고받음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만족하며 왜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 되었냐는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한숨 어린 반가움이 터져 나왔다.

달빛은 조금 기울었으나 어둠에 눈이 익어 서로의 몸을 그런대로 바라 볼 수 있었다.
훤한 상태에서 주름진 모습까지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운치가 더 했다.
격렬함 뒤에 오는 기분 좋은 피곤감은 더 이상 말을 필요치 않게 하였고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새근거리며 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서로 눈치를 챘다.
행복하고 기분 좋은 그리고 충만한 하룻밤이었다.

 
‘말리부 인’에 오기 전에 두 사람은 인근에 위치한 ‘차터 하우스’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였다.
이 레스토랑도 바닷가에 지어져 바다와 파도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민혜는 와인 잔을 다시 손에  잡고 한 모금 마시면서 천천히 우태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우연이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아니면 이게 우연의 옷을 입은 필연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앞으로 이 만남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 지도 막연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 연인이었긴 해도 당시의 한국의 정치상황이 젊은이들이 마음껏 연애하기도 어려울 만큼 각박했고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헤어지며 흩어졌다.

우태와 민혜도 근 이십년이란 세월 속에서 가끔 생각도 나다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기억에서 맴도는 남남이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할 수 없 는 일이었다.

 
* 명동시대 386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면서 사회 곳곳에 핵심세력으로 부상한 세대로 나이 30대, 80년대 대학학번, 60년대 출생들이다.
모두 같은 말이고 이제는 40대가 되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용어이다.
또한 이들이 한창 사회의 주역으로 활동 할 당시 한 세대를 앞서가고 시대 상황이 전혀 달랐던 세대를 이름 지어 7080이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70년대 80년대의 학번을 말한다.

 
80년대 학번은 386세대와 겹치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한 세대 전인 50대를 일컫는 말이다.
우태와 민혜도 70의 초창기 멤버가 된다.
우태와 민혜는 70보다도 조금 앞선 학번이지만 그렇게 불 러도 되는 것이 대학은 4년제이기 때문에 걸쳐 지나가고 특히 우태는 학업 도중에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70세대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들이 만났던 학창시절 한국은, 경제적으론 이제 갓 산업화의 둥지를 틀 때였고 정치적으론 암울한 그런 시기였다.
 
학교 캠퍼스는 데모로 인해 수업하 는 날보다 휴강하는 날이 더 많았으며 3선 개헌 반대 구호와 곧 이어 터진 유신철폐로 소위 ‘긴조시대’라는 대통령의 긴급조치인 비상사태가 1호부터 2, 3....호 등으로 이어지며 남발되던 시대였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의 저항이 계속되었으나 탄압의 강도도 높아져 갔다.
결국 군대로, 감옥으로 소식 도 끊어진 채 남녀 간의 애정도 살벌한 사회적 환경 때문에 이어지기 어려웠던 암울한 시기였다.
우태도 학생데모에 적극 참가했지만 당시엔 저학년이라  별로 주도적 역할을 하지도 못했는데 정보부와 경찰당국은 그를 못살게 굴었고 귀찮은 수사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학교 사찰을 담당하던 형사 선배의 배려로 군대 자원 입대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갑자기 입대하게 되니 민혜와 연락을 하기도 어 려웠고 또 군 생활을 하는 긴 세월에 민혜에게 부담을 안기기도 싫었다.
민혜는 영리하고 인물도 잘 생겼다는 소릴 듣는 편이라 주위에 따르는 사람도 많았으며 정에 매달리는 순정파라기보다는 이성 적으로 처신할 줄 아는 현실파이기 때문에 잠시 마음이 출렁이긴 하겠지만 바로 중심을 잡으리라 판단하였다.
그리고 당시 두 사람의 관계도 죽자 살자 하기까지 이르진 않았고 상당히 매력적이며 끌리는 이성친구로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는 정도였다.
둘은 자주 만났지만 장소는 매번 비슷했 다.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우태가 어렵게 한잔 사면 민혜는 명동으로 우태를 불러내어 한턱 내곤 했다.
민혜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주머니 사정이 좋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데이트 비용은 남학생이 주로 부담한다는 논리에서 상당히 벗어나 자신의 용돈을 주저없이 사용하였다.

 
명동은 서울에서 가 장 멋쟁이들이 드나드는 그야말로 낭만이 넘쳐 흐르던 거리였다.
일이 없이 돌아다녀도 재미가 나는 그런 거리인데 쉽게 나갈 형편은 안 되던 우태였다.
둘은 많이 대화하고 떠들고 좋아했지만 애정인지 우정인지 구분이 서지 않는 단계에 머문 상태였다.
우태는 그런 관계가 아닌 더 깊은 연인 사이 로 발전하고 싶은 젊은 열정으로 몇 번이나 민혜와 함께 밤을 새는 기회를 만들고 원했지만 번번이 민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대를 하게 되니 우태는 난감하여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회색빛이 드리운 어두운 시절이라 남녀관계에 대한 어떤 약속도 지켜질 것 같지 않았고 보장할 길도 없어 참고 말았다.
민혜가 자신을 기다리며 매인 여성으로 남아 있지도 않겠지만 우태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헤어지는 아픔이야 남녀관계에서 다반사이고 연애란 항상 고통스러운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대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그런 길을 선택하였다.
섭섭함이야 잠깐이면 해결될 테니까. 결국 입대 전에 간단한 편지를 보내며 인사를 대신했다.

 
민혜 에게 민혜! 그간 너무 즐거웠어. 이건 형식적인 말이 전혀 아니고 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이며 민혜와 만나던 그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만나던 그 때보다도 지금 돌이켜보니 더 그래.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해서 대통령이 되고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를 하는 행위는 분명 헌법위반인데 그것을 위헌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이렇게 무참하게 만드는 세상이 겁이 나네.
그러나 민혜와는 이런 대화가 아닌 보다 본질적인, 사람이 사는 것이란? 문학의 세계란,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예술가들의 생애에 대해 말할 땐 참으로 행복했어.
최루탄 냄새가 아닌 옹달샘에 서 우러나는 맑은 물을 마시는 청량감이 들곤 했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부정에 항거해야 하는 당위에 관한 토론은 현실의 얘기였지만 민혜와는 이상적인 부분을 많이 논해 내게도 큰 자양분이 되었으니 말이야.
막상  떠나려고 하니 함께 거닐던 명동거리는 왜 그렇게 생각나고 살아나는지 모르겠어.
아마 군대생활 하는 내내 그 길거리와 분위기만 곱씹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 거리가 바로 민혜와 함께 한 탓이겠지만 시골출신의 내게 도시의 낭만을 알게 해 준 아름다운 거리였고 민혜는 좋은 안내자였지.
매 순간 친구들에게 민혜와 그런 만남을 자랑하고 싶었고 실제로 많이 부러워했 어.
민혜도 잘 알지만 난 별로 크게 한 일도 없으면서 불려 다녔지만 더 이상 피하기도 힘들어.
이제 군대를 가게 됐네. 3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내가 잘 알아.
그 동안 민혜는 민혜의 행복을 잘 다져 놓기를 바래. 건강하게 잘 다녀올게 잘 있어.

 
군대로 떠나는 우태가 쓴 편지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군대에서도 가끔 소식은 들었지만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전방에서 치루는 군대의 졸병생활은 바쁘고 고달픈 탓에 깊은 그리움을 되새김질할 여유도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가서 현지에서 결혼했다는 것이 우태가 접한 민혜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 때도 우태는 최전방 일선에서 보초를 서는 상등병 신세였기 때문에 마음이야 서럽고 아팠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만 했다.

 
대신 밤에 보초를 서면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갑돌이 마음에는 갑순이 뿐 이래요. 겉으로는 으 으∼응~  안 그런 척 했더래요......”하는 노래만 실컷 부르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랬 던 것이다.

그것이 민혜에 대한 추억의 전부였다.
 
민혜가 독일로 유학을 갔는지, 시집을 갔는지 아니 면 유학 가서 그냥 결혼을 했는지 아무튼 그런 종류의 소식을 듣고 난 다음 약 1년 정도 후에 우태 는 3년에 걸친 군 생활에서 만기제대를 하였고 다시 복학생이란 이름으로 학교엘  갔다.
여전히 학교 는 시끄러웠다. 그러나 이젠 학생운동에 더 이상 발을 들여놓을 형편이 되지 않아 만나고 술 먹고 토 론은 해도 직접적인 행동에선 벗어나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이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 문이다.

 
0 Comments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72 명
  • 오늘 방문자 705 명
  • 어제 방문자 3,052 명
  • 최대 방문자 14,296 명
  • 전체 방문자 1,341,382 명
  • 전체 게시물 11,133 개
  • 전체 댓글수 35,742 개
  • 전체 회원수 72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