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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江 (제1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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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麻露 작가의 말
 
江은 흐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역사도 흐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의 삶도 그렇다.
이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의 얘기는 바로 한 세대의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나중에는 빛 바랜 추억으로 남아있겠지만 당시엔 치열했던 그런 시간들을 반추해 보는 거다.
그러나 결국은 흐르고 말겠지. 그래서 江이라 부르고 싶다.
흘러 흘러가면서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그런 江.
조용히 소리 내며 흐르다가도 때론 큰 포말을 일으키고 범람도 하며 살아있는 江.
모두가 너와 나  본연의 모습이리라.

이민이란 파종(播種)이다.
전혀 다른 세계를 맞게 되면서 가치관과 질서의 혼란이 오고 직업은 물론이고 가정의 위계도 바뀌게 된다. 당연한 사연이지만 그런 변화 속에는 또 아픔도 함께 자리한다.
치유 되기도 하지만 그 아픔에 함몰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민 오기 전의 관습, 이민 온 나라의 규범, 그 둘이 섞어져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현장들, 이 모든 것들이 시간에 따라 성숙하기에 이민 연수 에 따라 또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지며 갈등도 빚는다.
이런 이민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흐르는 江처럼...


 흐르는 江  제 1부
 LA 한인 타운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태평양지역에 속한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주州이며 면적은 약 411천Km²이다.
한국과 비교하여 대충 말할 땐 남한의 4배, 남북한 전체의 약 2배에 해당된다고 하는 매우 광활 한 지역이다.
인구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주인데 매 10년마다 조사하는 미국의 2000년도 인구센서 스에 근거하면 약 3천 5백만의 인구가

거주한다.

로스엔젤리스는 주의 남단에 위치한 인구 약 1천만의 도시로 뉴욕 다음으로 가는 대도시이다.
 세계 각국에서 골고루 와서 살아가기에 인종전람회를 여는 도시라고도 하는데 한국인들도 많이 산다.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재외동포 7백만이고 미주동포 250만이라고 했는데 그 중 약 30%인 7십만 이상의 한인이 LA에서 활동하고

있어 한인밀집도가 가장 높은 해외도시이다.
한인이 많이 사니까 자연 한인 상권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분포되어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이다.
오히려 미국 온다고 준비한 영어를 잊어버리게 되고 학창시절의 영어실력이 줄어드는 곳이 바로 LA이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점도 한정식이나 갈비, 설렁탕, 냉면 등은 기본이고 순대국밥에서 활 어생선회, 뷔페식당, 족발,

염소탕 등 보신탕 빼고는 다 있다.
라면 전문집과 한국식 중국음식인 짜장 면, 짬뽕, 탕수육을 파는 중국식당도 성업 중이며 배달도 신속하게 되고 모임이 많아

주문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캐더링 업소도 꽤 있다.
 

서울의 유명 음식점이나 유흥업소는 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내고 로고와 이름을 똑 같이 사용하는 상점도 즐비한데 그렇게
꾸미면 일단 유명세 덕을 본다.
어떤 곳은 프랜차이즈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 렇지 않은 곳은 상호문제로 법정시비가 일기도 했다.

양평 해장국, 풍천 칡냉면 등이 그런 과정을 거친 업소들이다.

한국의 떡집과 제과점도 고루 있다.
떡집으로 ‘낙원’ 떡집이나 ‘풍년’ 떡집, 제과점으 론 현지 업소로 ‘뉴욕제과’, ‘만미당’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고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등은 지점 형식으로 최근 진출한 상태이다.

식품점인 마켓은 대형화되어 한국산 식품이 없는 게 없고 야채 와 생선, 육류를 입맛대로 골라도 될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하며
가주, 갤러리아, 한국, 한남, 아리랑, 아씨, 플라자, 시온, 그린 랜드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한인 거주지인 외곽지역까지 골고루
진출한 상태이다.
 
경쟁이 워낙 심한 탓에 쌀 1포에 $1에 사는 기회도 종종 있었다.
일단 대형 마켓이 들어서면 인근 상점들도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덕을 톡톡히 보기 때문에 권리금도 비싸고 마켓 내에

작은 상점들도 인기가 좋다.
 
8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한국 식품점은 중형으로 주로 야채와 한국인이 선호하는 육류인 갈비, 등심, 삼겹살과 생선 일부를
팔았기 때문에 당시엔 미국 식품점과 한국 식품점 2곳을 반드시 갔으나 이젠 한국 식품점에서 다 해결이 될 정도로 편리해졌다.
일반 유흥업소인 노래방, 카페, 다방, 소주방, 룸싸롱 등도 실내장식을 한인들의 기호에 맞게 잘 꾸며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분위기가 정서에 맞기 때문에 영업은 비교적 잘되는 편이다.
 
미국업소에 가면 안주도 없고 술은 잔술로 판다. 한국인이 병째로 시키다가 잔술을 마시려고 하면 영 갑갑해서 술맛이 안난다.

또 잔술을 호스티스가 가져다 줄때마다 계산하는 번거로움도 예사가 아니다.
따라서 안주 없이 술 마시기 힘든 한인들이 미국 술집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독교 국가인 탓인지 한인교회도 무척 많아 한인업소록에 등재된 한인교회가 약 600여 곳이나 된다.
일반적인 계산으로 인구 1천명에 교회 하나라는 평균적 속설이 맞아 떨어진다.
웬만한 이민자들은 미국에 오면 자연적으로 교인이 된다.


교회는 이민사회에서 신앙의 교류만이 아닌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처음 이민 오는 사람들에겐 심리적인 안정은 물론
여러 가지 방면에서 안내역을 맡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미국에 대해 차츰 알게 되고 자녀들도 교회에서 교육의

상당부분을 맡게 된다.
 
이민사회라는 특징이 서로 근본 을 잘 모르는 탓에 교회 내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신뢰를 얻어 이를 계기로

비즈니스를 엮어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민사회가 아직 주류사회에 진출하여 갖는 사회적 직함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갖는 직함이 그대로 사회생활에도

적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름을 부르기도 뭣하니까 교회의 집사, 권사, 장로가 일반 사회생활에 그대로 반영되어 웬만한 남녀는 모두 집사로 봐도 된다.
집사는 워낙 교회마다 숫자가 많아 희귀성이 없지만 규모가 제법 되는 교회의 장로인 경우 본인도 바깥에서 자기 성(姓) 다음에

장로라는 존칭으로 불러주길 원한다.
김 장로, 박 장로, 이 장로가 김 사장, 박 이사, 이 실장보다 훨씬 존귀하게 생각하는 풍토이다.
 
이렇게 교회는 신분 상승의 사교장도 되고 실제 교인들끼리의 친목이 일반 친척보다 나은 경우가 허다하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기 때문인데 열성적인 교인의 일주일은 매일 새벽예배를 비롯하여 수요예배, 금요 성경공부,

찬양연습, 구역예배 등으로 거의 4~5일을 교회생활과 관련된 모임을 갖게 된다.
그러니 친하게 될 수밖에 없고 친구나 친척보다 더 흉허물 없이 지내게 된다.
워낙 교회생활에 열성이라 개인 적인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을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면서 봉사를 즐거움으로

여긴다.
 
교회에는 부속으로 한국어학교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분주하다.
남가주에만 한국어학교가 약 1천 여 곳에 이른다. 교회는 타운의 경제에도 큰 역 할을 한다.
캐더링 업소나 꽃집 등은 상당한 매출이 교회 관련 모임에서 발생한다.
매주일 강단에 헌화는 물론 경조사의 경우 교회의 각 전도모임에서 꽃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1년 교회 예산도 대단하 다. 1천만 불을 넘는 대형교회도 여럿 되고 수백만 불을 넘는 교회는 많다.
 모여진 교회 예산은 적립 도 되겠지만 여러 가지 행사로 쓰여 지기 때문에 타운의 주요 자금 공급원이 되어 진다.
 
교회는 주류 사회에 파워도 막강하여 한인 타운을 관통하던 1년에 한번 열리는 LA 마라톤 대회가 주일 날 개최 된다고 일자나

코스 변경을 요구하자 결국 채택되기도 했다.
교회가 많은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도 비례하여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오래된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고 새로 부임하는 목사가 오면 반드시 갈등이 야기되고 교회가 갈라지는 소송도 일어나고 교단을

탈퇴하는 분쟁이 벌어진다.
심지어 교회당을 팔아 그 돈을 챙기는 목사들도 더러 나타났다.

 
한인 타운이라고 불리는 지역도 점차 확대되어 북쪽은 멜로즈 불러버더 남쪽은 워싱톤 블러버드까지 동쪽은 버몬트를 지나
후버까지, 서쪽은 웨스턴을 지나 크랜셔까지 넓어졌는데 이렇게 확장된 근본적인 이유는 한인들의 억척스런 삶이 반영된 결과이다.
한인 타운의 번성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영리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라는 걸 실감한다.
장사에 관한 한 유태인이 울고 갈 정도로 빠르고 빈틈 없으며 한 수 앞을 내다본다.
 
한인 타운은 동서로 약 10블럭, 남북으로 약 15블록 정도 되는 대형 상 권인데 일본 타운이라 불리는 리틀 도쿄의 동서남북

모두 2~3블록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이다.
고속도로 상에도 한인 타운 진입로에 ‘Korea Town’이라는 표지판이 뚜렷하게 표시되어 한 눈에 알아보게 된다.
타운 내에는 한글로 적힌 간판이 어지러이 걸려 너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 지적을 받을 정도로 타 인종엔 배타적인 분위기이다.

2세들이 성장하여 자리 잡게 되면 시정되겠지만 아 직은 그렇지 못하다.
버몬이나 웨스턴 에비뉴는 한인 업소가 빼곡히 들어찼고 사무실 건물로 유명한 윌셔 거리도 한인 타운 지역의 미드 윌셔의 경우

입주자가 거의 한인들이다.
 
한인들이 입주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전문직종인 변호사, 회계사, 보험업, 부동산, 융자업과 같은 화이트칼라 업종이었지만
한인들이 진출하면서 건물의 1층은 식당이나 카페, 나이트클럽 등이 들어왔다.
윌셔와 한 블록 떨어진 6가 거리도 예전엔 조용했는데 알렉산드리아, 켄모어, 베렌도, 뉴햄프셔와 6가는 소위 LA의 압 구정동이라고 불리고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최신 유행의 거리로 변모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한인 인구 탓에 변한 거리이다. 젊은 층이 많이 모이니까 사고도 빈발하고 살인까지 가는 일도 몇 번 있었다.
이렇게 미드 윌셔 거리에 한인들이 많이 진출하게 된 것은 이 지역 건물 대부분을 소유한 제이미슨 프로퍼티의 데이비드 리의

공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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