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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와 땅꾼에 대한 기억- 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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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온 몸에 기운이 없거나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사람들은 한 번 잡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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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섭생(攝生)으로 건강을 관리하려는 경향이 심한 편이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 야생동물로 만든 보양식이 몸에 좋다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을 정도로 강정 보신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여름철을 맞은 요즘 뱀탕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잘못된 보양문화로 인해 뱀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환경부는 보양식을 찾게 되는 여름철을 맞아 그릇된 보신문화를 추방하고 야생동물을 이용한 보신이 위법행위임을 인식시키기 위해 전국의 뱀탕집에 대한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하면 멸종위기 및 보호 동물은 잡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먹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만약 이를 위반했을 때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뱀도 당연히 보호종에 속하니 뱀을 잡는 행위나 먹는 행위, 가공하는 행위 모두가 원천적으로 불법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뱀을 잡는 행위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으며 용문산이나 지리산 등지에서는 뱀탕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그 맹신적 보신 열풍이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은 뱀을 잡거나 먹는 것 자체가 불법이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뱀이나 지네, 고슴도치 등 약재로 쓰는 야생동물을 잡아 파는 것을 어엿한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땅꾼이다.

땅꾼이라는 말은 본래 ‘땅거지’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영조 때 홍수로 인해 청계천이 자주 범람하자 임금은 청계천을 준설하라 명하게 된다. 그런데 청계천 바닥에서 퍼낸 흙이 너무 많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오간수문 양쪽(지금의 청계천 6가 일대)에 높이 쌓아 두었는데 이를 가산(假山)이라 불렀다. 준설로 인해 다리 밑이 물에 잠기자 그 곳에 살던 거지들이 가산에 땅굴을 파고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이들을 ‘땅거지’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땅거지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도성 안에서 자주 말썽을 부리자 정조는 이들에게 마땅한 일거리를 주기 위해 뱀을 잡는 독점권을 주게 된다. 이때부터 뱀 잡는 사람들을 땅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에도 땅꾼이 있으니 뱀 잡는 사람이라는 뜻의 ‘포사자’다. 중국 당나라의 학자로서 당송8대가로 꼽히는 유종원은 백성들이 가혹한 세금에 얼마나 시달리는지를 풍자하는 글을 썼으니 곧 포사자설(捕蛇者說)이다. 유종원이 다스리던 영주고을에 맹독을 품고 있는 뱀이 있어 인명피해가 잇따랐다. 검은 바탕에 흰 무늬가 있는 이 뱀에 물리면 바로 목숨을 잃지만 반면에 이 뱀은 악성질환의 치료약으로 쓰였다. 조정에서는 이 뱀을 궁중의 치료약으로 쓰기 위해 1년에 두 마리를 진상하는 사람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했다. 그런데 장(蔣)씨 성을 가진 사람이 3대째 이 일을 해오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뱀에 물려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물은즉슨 포사자는 세금이 너무 가혹하여 차라리 뱀에 물려 죽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어쨌건 중국에도 예로부터 뱀을 잡아 생계를 꾸린 땅꾼이 있었던 것이다.

‘포사자설’에서는 이 뱀에 닿은 풀과 나무는 모두 죽으며 사람이 물리면 살길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뱀으로 만든 약은 중풍과 같이 근육이 마비되는 병을 고칠 수 있고, 죽은 살을 제거할 수 있으며, 종기를 아물 수 있게 한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그런 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이 물리면 바로 죽는다고 했으니 독사임에는 틀림없겠다. 즉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뱀이 보양용이 아닌 약용으로 쓰였던 것이다. 한의서인 동의보감과 향약구급방에도 뱀의 허물이 중풍이나 백내장에 좋다고 적고 있으니 어느 정도 약효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독사가 약용으로보다는 강정보양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는 뱀의 생김새나 생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어릴 때는 시골 들녘이나 산기슭에서 땅꾼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행장은 특이했다. 등에는 바랑을 지고 발목에는 대님을 맸으며, 지게작대기보다 작은 지팡이를 들고 다녔으므로 어디서 마주치든 금세 땅꾼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며칠 씩 산과 들을 헤매다보니 늘 수염이 꺼칠하고 행색이 꾀죄죄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아이들에게 땅꾼을 따라다니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어쩌다 땅꾼을 만나기라도 하면 해질녘까지 그 뒤를 쫒아 다니곤 했던 것이다. 그들은 풀숲을 휘젓다가 뱀을 발견하면 끄트머리가 V자형으로 생긴 지팡이로 재빨리 뱀의 대가리를 눌러 능숙하게 잡아내곤 했다. 땅꾼이 뱀을 잡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그 잽싼 손놀림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땅꾼들은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별로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온종일 혼자 풀숲을 헤치고 다니다 보니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곤 가끔 바랑을 열어 자랑하듯 잡은 뱀을 구경시키기도 했다. 바랑 속에는 여러 종류의 뱀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곤 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와 물뱀이라 불리는 무자치였다. 그런데 그 뱀 무더기 속에는 이따금 구렁이도 있었고, 간혹 살모사와 까치독사와 같은 맹독성이 있는 뱀도 섞여 있었다. 그 뱀들 가운데 독사들이 강정보신용으로 비싸게 팔려 나갔던 것이다.

해마다 서리가 내릴 즈음이면 어슬렁거리며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땅꾼이 있었다. 그는 뱀에 물려 오른손 검지를 잃었는데 입고 다니는 군복이 늘 때에 절어 반질반질했다. 일반적으로 땅꾼들은 뱀이 겨울잠을 자게 되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마땅하게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지팡이 대신 곡괭이를 바꿔 들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돌아다니며 쥐굴을 파헤쳤다. 쥐굴 속에는 쥐가 겨우살이를 하기 위해 물어다 놓은 나락이 꽤나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 쥐굴 뒤지기는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훑어 거두는 이삭줍기와 다름없는 행위였던 것이다. 요즘 같으면 누가 쥐굴 속에 있던 곡식을 먹으려 하겠는가. 하지만 당시에는 굶주려 죽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끼니를 때우기 위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했을까.

땅꾼은 쥐굴 입구에 서려 있는 서리의 형태를 보고 쥐가 들어있는 굴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곤 했다. 그리고 굴을 파헤치면 적어도 한 바가지 분량의 나락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쥐굴 속에서 나온 것들 가운데 땅꾼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목화였다. 쥐들이 덜 익은 목화의 삭과를 물어다 놓은 것이 굴속에서 말라 터지면서 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땅꾼들은 겨우내 쥐굴을 털어 목화송이만 따로 모아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그리고 굴을 파헤칠 때 곁에서 거들어준 아이들에게 쥐굴에서 꺼낸 땅콩을 한 줌씩 나눠주기도 했다. 비록 땅콩이 껍데기에 싸여 있다고는 하지만 쥐굴 속에 있던 것을 스스럼없이 받아먹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따름이다.

어느 날, 그 땅꾼은 파헤친 쥐굴 속에 손을 넣었다가 쥐에게 심하게 물린 적이 있었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번쩍 뽑아든 땅꾼의 손가락 끝에는 큼직한 쥐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을 내내 열심히 물어다 놓은 겨울양식을 훔쳐 가는데 쥐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땅꾼의 손가락에서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 이후 그 땅꾼은 더 이상 우리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린 마음에 그 땅꾼이 필시 흑사병에 걸려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가 나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힐 즈음인 몇 해 뒤, 나는 읍내에 나갔다가 장터 한 구석에 자리 펴고 뱀을 팔고 있는 그 땅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입에서 불을 내뿜기도 하고, 이마로 벽돌을 깨는 재주를 보이며 열심히 구경꾼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더부룩한 머리를 깎고 깨끗한 옷으로 바꿔 입은 탓에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나무 궤짝 속에서 살모사 한 마리를 꺼내들고 뭔가 열심히 떠들고 있었는데 입에는 허옇게 버캐가 끼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화장이 짙은 한 여인네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그의 부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요즘 뱀 잡는 방법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산과 들을 쏘다니며 손으로 잡기보다는 뱀들이 겨울잠을 자러 가는 산기슭의 길목에 그물을 쳐 잡는다고 한다. 심지어 겨울잠을 자는 뱀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쳐 잡는다고 하니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군다나 야생조수 포획에 대한 단속이 점차 심해지다 보니 이제는 아예 중국으로부터 독사를 밀수입까지 한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도 그렇거니와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를 쓰고 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강정보신도 이쯤 되면 가히 광적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신관광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곰쓸개나 코브라, 사향 등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보니 동남아지역 여행일정에 곰이나 뱀 사육장을 돌아보는 순례코스가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보신행태가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이전만 하더라도 서울 번화가의 뒷골목에서 뱀탕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없어져버리고 말았으니 그 동안 몇 차례의 국제적 행사를 치르면서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 때문이리라.

이제 삼복(三伏) 더위를 맞아 또다시 뱀이 수난을 맞는 시기가 되었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릴 때 우리 마을에 나타나던 땅꾼의 덥수룩한 모습과 함께 시골장터에서 뱀을 팔던 그의 걸쭉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자~, 애들은 가라.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죽은 사람도 벌떡벌떡 일어나게 한다는 비얌이야. 비얌~, 온 몸에 기운이 없거나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사람들은 한 번 잡숴 봐......”


ㅁ 前 연합뉴스 관리국장
2010년 07월20일

 
7 Comments
마셀 2010.07.21 09:11  
전 오래전에 80마리 먹었습니다.ㅋㅋㅋ..^_*
fabiano 2010.07.21 13:05  
⊙.⊙.... 80마리씩이나?  여하튼 힘은 좋을것이니~  ㅎㅎ
fabiano 2010.07.21 13:08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먹는 셈인데 뱀은 영~ 아니올시다.  ㅎㅎ...이곳 집주변에도 예전엔 뱀이많았는데 근래, 거의 구경하기 힘듭니다. 강화도엔 뱀이 많군요.
피어나라 2010.07.21 19:23  
먹지는 않아도 뱀을 먹는 것을 보기는 했습니다..ㅋ
fabiano 2010.07.21 20:41  
옛적에 生蛇湯이며 수십종의 뱀을 유리병에 즐비하게 늘어 놓은 가게의 풍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로 정력강화제로서 말입니다.  ㅎㅎ..
2011.06.08 12:51  
음~~ 뱀~~  정말 바베큐해서 소주한잔에 먹으면 좋은 안주지요.구렁이같이 큰뱀들은 고기가 실하고 먹을게 많습니다.
fabiano 2011.06.08 20:44  
뱀의 이미지가 영~ 좋지 않아서 당최, 먹거리로는 전혀 생각치 않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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