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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Korea 1945-1946

fabiano 35 3488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여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이로써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한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는 36년간

착취와 수탈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었다. 

유럽전선에서 복무하던 Don OBrien씨는 한국으로 전속을 받아 당시 해방정국의

풍물과 갖가지 귀한 기록사진을 촬영하였다.
 

zFrom Korea in 1945.jpg
 
zOctober 1945 in Seoul, Korea..jpg
 
Freedom Celebration.     1945. 10.  서울 중앙청.

zRhee Return.jpg
 
1945. 10.  이승만박사 귀국 환영식.

zSeoul, Korea - December 1945.jpg
 
남산에서 본 서울 전경. 국회의사당, 서울시청, 중앙청이 보인다.
 
zSeoul, Korea November 1945.jpg

1945. 11.   청계천.
 
zSeoul Map September 1945.jpg
 
Seoul Map : September 1945.    타임(TIME)지에 실린 서울지도.

zSeoul, Korea October 1945.jpg
 
1945. 10.  서울.

zSeoul Streetcar - October 1945.jpg

zSeoul Sidewalk -October 1945.jpg

zNear Seoul, Korea October 1945.jpg

zNovember 1945, Japanese temple near.jpg
 
1945. 10.  부산 부근에 있었던 일본식 사찰.
 
zWashing Clothes in Han River1945.jpg
 
1945. 서울 한강.

zSeoul Water Carriers - November 1945.jpg
 
1945. 11.   서울.
 
zSoldier and Boy - December 1945.jpg
 
Soldier and Boy - December 1945.  일본군이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철수하기 위해 부산항에 집결. 
 
z1945 Seoul Fire.jpg
 
1945. 12.  서울.  美 제184 보병연대 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한 듯. 
 
zKorean Railroad Engine at Inchon.jpg
 
1945.  인천.
 
Korean Train Wreck - 1945.jpg

終戰후, 美軍 철도관계자들이 테러에 의한 철도사고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는 일본이 관리운영하였다.  서울 부근.
 
zKorean Road, January 1946.jpg
 
1946. 1.  서울부근.
 
zKorean News Photographers 1945.jpg
 
당시 각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
 
zKorea Times October 18, 1945.jpg
 
1945. 8.18일자의 Korea Times 記事.   美군정청의 포고문이다.
 
zPlease translate Korea 1945.jpg
 
美군정청에서 발행한 <英語獨習 (영어독습)>.
 
DKO -Speed Graphic.jpg
 
Don OBrien씨.
 
zChristmas Dinner 1945.jpg
 
1945.  크리스마스 이브.   Don OBrien, Jack Davis.
 
zMeeting Russians at the 38th Parallel 1945 (2).jpg
 
38선 부근에서 소련軍과 Don OBrien.
 
Convoy to Korea 1945.jpg
 
1945. 9.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행 LST에서.
zLST 700 at Inchon.jpg
 
1945. 9.  병력과 군수물자를 실은 LST 700 수송선이 오키나와에서  인천항에 도착. 


35 Comments
Neptune 2010.07.17 13:05  
사진들을 보면 언제 우리가 이렇게 변신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뿔따구 2010.07.18 20:42  
이렇게 빨리 나라가 커진 경우도 드물겁니다
은하수 2010.07.19 07:45  
물지게 저도 어려서 많이 지고 다녔지요^^
fabiano 2010.07.19 10:23  
사상과 이념의 대립속에서도 이렇게 괄목할만한 성장은 매우 드문 경우일 것입니다. 여전히 사상의 대립은 있지만...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fabiano 2010.07.19 10:26  
기록사진이 역사의 한 장면이며 증표입니다.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그 시절을 음미하고 시사하는 바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fabiano 2010.07.19 10:27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단한 저력을 가진 국민상입니다.
fabiano 2010.07.19 10:28  
그 시절 추억의 한 장면...  ㅎㅎ..
with 2010.07.19 21:09  
겨울 사진 속, 어르신의 뒷모습이 처연스럽습니다.우리에게도 시원한 겨울 곧 오겠죠? 너무 더워요.ㅎㅎ..
fabiano 2010.07.19 22:53  
인생의 황혼녘을 향해서 가는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합니다.시원한 겨울이라?...  너무도 뜨거운 태양이 겨울을 생각나게 합니다.  ㅎ..
2010.07.20 07:26  
저 사진기자들 덕분에 많은 자료들이 남아있다는 생각입니다.
fabiano 2010.07.20 08:29  
1945년 해방과 함께 6.25전쟁 당시, 많은 미군들이 찍은 사진자료가 더 많습니다.
skywalker 2010.07.20 14:40  
새로운 금광을 찾으셨달까요. ^^  귀중한 사진을 많이 남기신 분이 또 있었군요.
피어나라 2010.07.20 17:07  
소중한 자료들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참 짧은 어떻게 보면 길고도 짧은 세월이지만 세상 다른 나라사람들이 말하는 기적같은 변화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ㅎ
fabiano 2010.07.20 18:55  
이러한 포스팅을 통해서 느낀 일이지만 기록문화의 중요함도 알 수 있었습니다. ㅎㅎ..
fabiano 2010.07.20 19:00  
정말이지, 흑백사진이라도 그러한데 컬러사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사진속의 우리나라는 처참하며 불행한 나라였는데 이렇게 기적같은 발전이 이루어졌으니~...  기적같은 변화... 맞습니다.
김바사 2010.07.20 22:18  
다섯번째 사진의 콰이강의 다리를 닮은 목교가 검정다리 입니다....마장동과 용두동을 잇는 다리였고 마장동 측에 목제 초소가 있었는데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군요. 또 판잣집들도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요.
김바사 2010.07.20 22:36  
전차의 구조가 특이합니다. 앞의 동력전차가 끌고 다니는 무동력 전차인 것 같은데....여기가 동대문 전차종점이고 이스턴 호텔 앞이라면 이 전차는 을지로행이 아닌 종로행이겠습니다....^.^ 동대문에서 을지로로 가는 방향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어서 600 볼트 전차의 모터가 힘이 좀 딸렸지요.
김바사 2010.07.20 22:43  
아이들의 표정이 50년대의 소년들보다 차라리 밝습니다. 동란전이라 그렇겠지요. 아이들앞에 잔뜩 놓인 인형들....일본인형같아 보이는.....은 무얼까요. 궁금해지네요. 좋은 사진을 보며 호기심에 말이 많았습니다....^,^
김바사 2010.07.20 23:43  
중앙청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단이 좌우로 나 있었는데 이러한 방식은 새로지은 종로의 화신백화점에서도 축소형으로 구현되어 있었습니다.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중앙청도 화신 백화점도...그리고 인상적이고 아름답던 구리개의 내무부 청사 건물도 사라지고 말았군요.
fabiano 2010.07.21 05:07  
전쟁을 모르는 표정이 밝습니다. 해방된 조국이 아이들의 마음에도 엄청난 기쁨이었을 터이며....어렸을 적의 어렴풋이 생각나는 인형극입니다.
fabiano 2010.07.21 05:13  
먼 발치에서 본 중앙청,화신백화점,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멋있었단 느낌은 가졌습니다. 예리한 감성으로 사물을 기억하고 계시네요.  ㅎㅎ..
fabiano 2010.07.21 05:16  
평범하게 보아 넘기지 않는 김바사님의 경험과 안목입니다. 이보다 멋진 해설은 없습니다.  *^_^*
fabiano 2010.07.21 05:22  
영화속의 를 만든 싯점이 사진의 검정다리 만든 사기와 거의 비슷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그 시절을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벤강쇠 2010.07.21 09:42  
중앙청이 아무리 일제통치의 잔재라지만 그나름대론 역사그자체로서의 가치가 엄청납니다. 꼭부셔야할이유가 딱히없음에도 무조건부시고 짖는다는 단견이 우리민족으로서의 어쩔수없는 속좁음입니다.
昊星(호성) 2010.07.21 20:55  
이런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마음이 짠~ 하곤합니다.
fabiano 2010.07.21 21:01  
일제통치가 시작되면서 일본은 우리 고유의 문화재며 역사적인 건축물을 헐어내고 훼손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남의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조선총독부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에 대한 대칭적인 상징입니다.
fabiano 2010.07.21 21:05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外侵에 의한 수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마땅히 감사해야 할 나라입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로늘닐 대한민국이 존재해 왔습니다.
昊星(호성) 2010.07.21 23:04  
그래요 그많은 젊음의 희생이 헛되지아니하고 잘 사는 우리나라를 볼때 그들도 흐믓하게 생각하리라 생각됩니다.저는 그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대한민국이 앞으로 더 잘사는 세계 경쟁에서 당당하게 눈치보지 아니하고 겨룰수 있게하기 위해선  통일, 우리 나라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 민족만의 이익을 위한 남과 북 만의 만남으로 대화로 평화스런 화합이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고마움도 중요하지만 6자회담같은 남의 입김이 너무많이 개입되면 우리의 이익에 손해를 볼수 있으니,....  우리는 능력도 경제력도 자신감도 있다는걸 알고 감정을 잠재우고 더 대범하게 정치적으로 만날게아니라 사업하듯이 남과북이 서로 만나고 대화를 했으면합니다
fabiano 2010.07.21 23:32  
호성님의 염원대로 남과 북이 서로 허심탄회하게 만나 대화를 하고 협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감스럽게도 끝까지 적화통일의 야욕만 계속 내세우며 호시탐탐 노리는 저들의 본색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습독재의 결과가 오늘날, 북한의 현실입니다.
昊星(호성) 2010.07.22 00:54  
60년넘게 서로 죽일놈 망할놈 해서 얻은건 양쪽에서 상처 투성이 입니다, 이젠 생각을 달리할 때도 되었것만  아직도 똑같은 생각을 해서 이익이 된다면 다행이지만...이북이 어떤 생각을 하는갈 안다면 문제는간단한데 그걸 겁만내고 욕만 해 댄다면 문제가 있는게 될수도 있다 생각 되네요...많은 남북의 문제를 60년넘게 서로 만나서 대화로 합의로 좋든 나쁘든 지금까지 왔습니다...앞으로도 그래 해야  합니다...아무리 생각해도 남한에서 더 양볼해야 남한이 더 이익을 보는데...지금같은 대화 중단은 또 다른 불행 불행 불행을 불러 올수박에 없다는생각이 드네요, 우리 모두의 이익 이 나라의 장래를위해선 아무리 막가파같은  상대라해도 상대를 해야할 그들이라는 제 생각입니다.
kys6824 2010.07.31 16:27  
귀중한 자료를 보관 하시다니 참 대단하십니다.잘 보고 갑니다.
fabiano 2010.08.01 16:55  
예로, 6.25전쟁에 관한 미국의 기록문서나 사진 등의 자료는 50년 후에 공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조금씩 공개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간을 최대한 할애하여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상투배기상(남석) 2011.11.27 20:33  
그때 그 시절. 사진을 정말 잘보았읍니다. 군산에 시니어 클럽 회원 입니다. 남석 씀.
thhgrand 2015.03.12 12:04  
이북 고향에서 사진속의 소련(러시아)군을 보았지요. 마을 경찰지서(당시는 주재소)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닥치는데로 시계 빼았고, 닭잡아먹고 밭에서 야채 뽑아가고 거칠게 행동 했어요. 양식 창고에서 식재료를 적재하던 소련군이 부츠 군화속에 넣어둔 나이프를 꺼내서 고등어 자반을 날 것으로 잘라먹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당시 소련군들의 식량은 현지 조달이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1945년 초가을 달밤에  소련군의 겁탈을 피하려고, 동네 여자분 여럿이 산속 마을로 가려고 웅성웅성 하던 광경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이것이 해방공간의 북한 모습이였습니다. 그래서 1947년 겨울에 월남을 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월복을 하더군요.  그 똑똑하신 분들이 왜 그 생지옥으로 찾아 가셨는지 지금도 궁굼증이 풀리지 않습니다. 세상 참 복잡합니다.
fabiano 2015.03.12 12:39  
그 시절을 증언하실 수 있는 몇 분 안되는 분 중의 한 분이십니다. 태평양전쟁 종식에 따라 소련군은 어부지리로 북한에 점령군으로 약탈과 노획을 일삼았다는 기록문서가 있는데 그에 비하여 미군들은 막대한 전쟁비용을 치렀지만 약탈이나 불미스런 일은 거의 없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당시, 팽배했던 공산사회주의 사상에 일부, 지식인들이 월북한 사례가 많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도 이런 이데올로기에 헤어나지 못하는 친종북 무리들이 날뛰고 있으니 정말, 통탄할 일입니다. 긴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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