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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영웅이 간다

fabiano 1 1328  

# 순직(殉職)? 아니다. 순국(殉國)이다! 한주호 준위는 그저 맡은 바 임무를 다하다가 ‘순직’한 게 아니다. 그는 전쟁보다 더한 격랑 속에서 비록 천안함 실종자들을 건져 올리진 못했지만 그 한 몸을 던져 심해에 처박힌 대한민국의 체면과 위신, 그리고 존재 이유를 맨손으로 건져 올리고 죽었다. 이게 ‘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 참사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군과 우왕좌왕하는 정부, 갈피 못 잡는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가 혼돈 속에 휘청거리는 이때! 오직 한 준위의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죽음만이 해저에 곤두박질 친 군의 위신을 다시 세웠고, 애끓는 실종자 가족들과 안타깝게 지켜보는 국민들 앞에서 정말이지 할 말 없던 정부에게 더 없는 방패가 돼줬으며 대한민국이 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세상에 증명해줬다.

# 대통령도, 국방장관도, 함장도, 그 누구도 국민의 눈과 귀 앞에 곱지 않았다. 하지만 들끓는 국민의 질타도, 성난 민심도,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도 오직 한 준위의 영정 앞에서만큼은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한 준위의 거룩한 희생이 정부와 군의 모든 허물을 한 몸에 짊어지고 대신 그렇게 갔다는 사실을!

# 세상이 온통 사고 원인이 뭐니 책임이 어디니 하고 떠들고 있을 때 그는 말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나이 어린 후배들의 살려 달라는 아우성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에 분초를 다투는 심정으로 그는 스스로 주저함 없이 그 칠흑 같은 죽음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 그 앞에서 우리는 정말 할 말이 없다.

# 이번 초계함 사건으로 진짜 침몰한 것은 우리 군과 정부의 위기 대응 역량과 위기관리시스템이었다. 한 준위는 그것을 몸뚱이 하나로 대신 메워냈다. 또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추락했다지만 진짜 추락한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이다.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통해 빵빵하게 채워졌던 국가적 자긍심이 이번 초계함 사건을 계기로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의 영광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시리얼에 말아 드심’이라고 조크한 것처럼 초계함 사건 하나에 대한민국이 그랬다. 하지만 한 준위는 그 침몰한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자기 한 몸 던져 다시 세워낸 진짜 영웅이다.

# 그 영웅이 간다. 평생을 군에 복무하며 나라 위해 살았다. 일신의 영달은 꿈꾸지도 않았다. 신혼 때 마련한 낡은 세간으로 30년 세월을 버텨온 그였다. 그런 한 준위에게 대통령은 최고예우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지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경과를 제대로 챙겨보라. 이미 35년째 군복무를 해온 한 준위가 퇴임하면 자동으로 받게 될 보국훈장 광복장을 주면서 생색내던 군과 정부는 뒤늦게 빈소를 찾은 대통령이 무공훈장 수여 검토를 지시하자 그제야 또 부산을 떤다. 심지어 준위에서 일계급 승진시켜 소위를 달아주겠다는 얼빠진 아이디어나 내놓지 말고 정말 제대로 해라. 유가족들의 생계와 미래 대책을 위해 연금 제대로 잘 챙겨주고 한 준위의 살신성인하는 애군·애국 정신을 잊지 않도록 동상 건립 등 최소한의 할 일들을 반드시 해야 한다.

# 이제 한 준위의 영정은 치워진다. 하지만 우리 가슴에 그의 사나이다운 담백한 눈빛, 그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전율하듯 느껴지는 단호함과 애군·애국의 정신은 더 깊이 새겨야 한다. “지옥에서 살아오라!”는 그의 포효하는 목소리가 다시 들릴 것만 같다. 비단 침몰한 천안함 수병들에게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외치는 그의 소리다. 그 영웅이 가는 길 앞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혼미해진 우리의 정신을 추슬러본다. 고이 잠드소서. 영웅이여.

정진홍 논설위원

1 Comments
fabiano 2010.04.03 02:45  
6.25전쟁 당시. 만주폭격을 주장하다 해임된 맥이아더장군의 名言이 왜이리 생각나는지?..... "노병은 죽지않고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육신은 갔으되, 그의 정신은 영원히 軍의 귀감이 되어 진정한 이 시대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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