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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5달러에 강탈한 일본, 1분 뒤 10달러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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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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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당시 대한제국 주미 대사관의 모습(사진 1)은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사진 2). 당시 대사관의 내부는 샹들리에와 태극 문양 쿠션으로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사진 3). 현재는 집주인 티머시 L 젠킨스 부부가 거주하고 있으며 내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진 1, 3=윤기원 한국역사보존협회 이사장 사진 2=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 제공]
2007년 10월 이태식 당시 주미대사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구한말 주미 공사관(당시 대사관)을 매입해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2009년 예산안을 짜면서 미국 워싱턴에 잘 보존돼 있는 대한제국 대사관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30억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올해가 다 가도록 건물을 매입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중앙SUNDAY가 추적했다.

미국 백악관 북동쪽,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로건 서클 15번지.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3층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이 서 있다.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은 1891년 이 건물을 매입해 ‘대조선 주차(駐箚) 미국 화성돈(華盛頓·워싱턴) 공사관’으로 삼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미 대사관을 둔 것이다. 고종은 청나라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 했다. 미국은 조선 땅을 넘보지 않으며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보고 미국과 친해지려 했다. 청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자주 외교를 펼치려 한 것이다. 고종은 내탕금(황실 자금)을 내어 당시엔 큰돈이었던 2만5000달러를 주고 대사관 건물을 매입했다. 방 7개, 대지 226㎡, 건평 533㎡의 지은 지 1년밖에 안 된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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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계약서의 고종 서명 위조 가능성
이후 건물 옥상엔 태극기가 휘날렸다. 건물 안에도 커다란 태극기가 휘장처럼 위엄 있게 벽을 감쌌다. 태극 문양의 쿠션도 우아하게 소파를 장식했다. 고종의 어진(御眞)과 황태자였던 순종의 예진(睿眞)도 벽에 걸렸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워싱턴 외교가의 중심에서 다른 30개국 대사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외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자주 외교’는 오래가지 못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앗아 가면서 대사관은 폐쇄됐다. 경술국치(庚戌國恥) 3일 뒤 우치다 야스야(內田康哉) 주미 일본공사는 5달러에 이 건물을 산 다음 바로 미국인 호레이스 K 풀턴에게 10달러를 받고 팔았다.

워싱턴 문서보관소와 워싱턴 등기소엔 대한제국 주미 대사관 건물의 매매 계약서가 있다. 계약서에는 대한제국의 영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워싱턴 문서 497에 따르면 1891년 12월 1일 오후 1시2분 ‘조선의 현 국왕 전하(His Majesty the present King of Chosun Ye)’가 세브론 A 브라운 Jr.로부터 2만5000달러에 건물을 구입했다. 1910년의 문건에는 매도자가 ‘한국의 태황제폐하, 이형(His Majesty, Ye Hiung, Ex Emperor of Korea)’으로 돼 있다. 비록 ‘폐하(His Majesty)’라는 존칭은 남아 있지만 사흘 전 나라를 뺏긴 황제는 남들이 감히 부를 수 없었던 자신의 실명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했다. 매매 시점은 1910년 9월 1일 정오. 바로 다음 문서는 정확히 1분 뒤 작성된 우치다와 풀턴 사이의 매매 계약서다. 일제는 2만5000달러였던 대사관 건물을 5달러에 사서 1분 만에 10달러에 팔아 치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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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계약서에는 고종(李)과 궁내대신 민병석(閔丙奭), 승영부총관 조민희(趙民熙)의 서명이 있다(사진 4). 바로 옆의 일본인 궁내부 차관 고이네야의 서명과는 달리 지저분하고 어색한 필체다. 특히 민 대신의 것은 글씨가 아니라 그림을 그린 것처럼 조잡했다. 대한제국 대사관 건물을 되찾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재미동포 윤기원(61) 한국역사보존협회 이사장은 “서명이 위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뉴욕 거주·79) 여사를 통해 고종과 민 대신의 평소 서명을, 조 총관의 후손인 조원교씨를 통해 조 총관의 평소 서명을 확보했다며 중앙SUNDAY에 보내 왔다. 붓글씨와 펜글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계약서의 서명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 여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할아버지께서 힘들게 마련하신 대사관이 사실상 강탈당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집주인, 건물의 역사적 가치 잘 알아”
빼앗긴 옛 대사관의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워싱턴 총영사관은 집주인인 변호사 티머시 L 젠킨스(사진 5)와 교섭을 벌여 왔다. 조용천 총영사는 “집주인이 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을 요구해 교섭이 중지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30억원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집주인은 집 내부를 공개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조 총영사는 “e-메일을 통해서만 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는 30억원 예산 책정 과정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2007년 당시 교민들이 접촉했을 때 집주인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279㎡의 아파트 한 채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관리비·양도세 등의 추가 조건도 제시했다. 합쳐서 220만 달러 정도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구입비 20억원에 수리비 10억원을 더해 30억원을 예산으로 잡았다.”

그런데 그사이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올랐다. 게다가 집주인이 지목했던 아파트도 팔렸다. 그가 새롭게 지목한 두 아파트의 값은 월등히 높았다. ‘아파트 관리비 10년치, 법률·회계비용, 이사비, 양도세, 수리비 등과 총액의 10% 인센티브’ 등 그가 요구한 다른 비용까지 합치면 각기 621만5217달러(약 71억6500만원), 387만9147달러(약 44억7200만원)가 든다. 현재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335㎡ 한 채 가격(45~49억원) 정도. 하지만 현재 예산으로는 구입이 불가능한 액수다.

워싱턴DC 당국에 따르면 옛 대사관 건물의 올해 공시지가는 173만9350달러(약 22억원). 시세는 공시지가보다 10% 정도 높은 190만~200만 달러 수준이다. 집주인은 시세의 2~3배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젠킨스 부부는 77년 이 건물을 샀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젠킨스는 ‘언리미티드 비전’이라는 정보통신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앤서니 윌리엄스 전 워싱턴 시장의 인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최초의 흑인 온라인 포럼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매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젠킨스는 한국 언론에 보도된 관련 기사들을 모두 스크랩해 놓을 정도로 건물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가 산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문광부 해외문화홍보원 공형식 문화홍보사업과장은 “옛 대사관 건물 매입 예산은 수시 배정 예산인 만큼 올해 말까지 구입하지 못하면 불용액으로 처리돼 반납된다”고 했다. 예외 조항을 적용하려 해도 가계약조차 체결되지 않은 상황이므로 예산을 이월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안엔 매입 예산이 별도로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옛 대사관 건물을 사려는 계획은 일단 무산됐다고 할 수 있다. 공 과장은 “정부가 매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며 “내년 이후에라도 집주인이 마음을 바꿀 경우 한 번 편성됐던 예산이기 때문에 같은 액수를 다시 신청해 받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산 증액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대한제국 주미 대사관을 찾자는 목소리는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처음 나왔다.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83년 워싱턴에서 관련 문서를 발견했다. 100년 동안 온전히 살아남은 이 건물을 꼭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청와대와 주미 대사관 등에 여러 번 건의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은 2005년 저서 『살아 숨쉬는 미국역사』를 통해 옛 대사관 건물을 뺏기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사는 “박 편집인의 책이 정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마침내 정부에서 구입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했는데 매입 추진 작업이 무산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교민 사회는 정부 측과 별도로 매입 작업을 벌였다. 미주한인100주년기념사업회(현 미주한인재단)는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매입 모금운동을 펼쳤다. 정세권 미주한인재단 회장은 “당시 청와대에도 매입을 건의했지만 반응이 없어 우리가 모금에 나섰다”고 말했다. 마침 한국의 한 독지가가 150만 달러(당시 건물 시세는 약 1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해 모금운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당시 집주인에게 일시불로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400만 달러를 요구해 매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초반에 모금한 8만 달러를 아직도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며 “정부 예산이 나왔다고 해서 이젠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에서는 『살아 숨쉬는 미국역사』 출간 이후 경기도 광주 평화교회에서 모금운동이 시작된 것을 계기로 한국기독교총연맹 차원에서 매입 움직임이 있었다. 한기총 조기연 목사는 “한국의 매입 움직임을 보고 집주인이 턱없이 가격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었고, 지역 교민들도 따로 매입에 애쓰신다고 해서 그분들께 맡기기로 2006년 결정했다”고 매입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듬해 정부의 구입 추진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민간 쪽 움직임은 중지됐다.

이 전 대사는 “80년대 초반 주미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할 때 그 건물을 찾아가곤 했다. 당시에는 나라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며 “정부 예산이 반납된다는 게 사실이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는 너무 안타깝다며 “주미 대사로 부임해 교민들이 구입하려 애쓰는 걸 보고 부끄러웠다. 나라가 맡아 관리해야 할 건물 아니냐. 내년은 경술국치를 당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인데 그때까진 꼭 되찾는 걸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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