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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술병 속에서 시가 울던 명동의 은성

fabiano 6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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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부산으로 피란 간 문인들. 앞줄 왼쪽부터 김경린·조영암·박인환, 한 사람 건너 김광주.
1958년 가을, 명동의 막걸리집 ‘은성’에서 박수 소리가 터졌다. 술집 주인 이명숙(86년 작고)의 18세 외아들이 서라벌예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시인 변영로(1897~1961)가 술잔을 내밀었다. “영한아, 술 한 잔 받아라.” 쭉 들이켠 뒤 막걸리 잔에서 술 지게미를 바닥에 털던 영한에게 시인이 냅다 뺨을 갈겼다. “이놈, 곡식을 왜 버려?” 영한은 연기자 최불암의 본명이다.

그의 부친 최철은 영화제작자였는데 ‘수우’를 영화로 제작하던 48년 과로로 세상을 뜬다. 어머니는 대한제국 궁내악사를 지낸 분의 딸로 남편을 여읜 뒤 인천 동방극장 지하에 ‘등대’란 음악다방을 운영하다가 명동으로 와서 ‘은성’을 차린다. 단골이었던 소설가 이봉구(‘명동백작’으로 불렸다)는 이곳 풍경을 작품 속에 남겼다.

56년 3월 저녁 ‘은성’에 앉은 박인환(당시 30세)은 시를 쓰고 있었다. 쌓인 술빚이 미안해서 시라도 써서 갚자는 마음이었을까.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로 시작하는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탄생한다. 언론인 극작가였던 이진섭(1922~83)이 곡을 붙인다. ‘백치 아다다’의 가수 나애심(가수 김혜림의 모친)이 곡을 따라 흥얼거렸다. 나중에 들어온 테너가수 임만섭이 곡을 보더니 열창을 했다. 이날 낮에 망우리에 있던 첫사랑 여인의 묘지에 다녀왔던 박인환은 이 시를 남기고 사흘 뒤 만취한 상태로 숨져 망우리 그녀의 곁으로 갔다.

64년 1월 9일 수필가 전혜린(당시 31세)은 밤색 밍크 코트를 입고 명동의 ‘은성’에 나타났다. 그녀는 쾌활했다. “국제 펜클럽대회에 나가려고 건강진단을 받았거든. 글쎄 내 몸이 괴물처럼 건강한 거야…. 박인환이 그리워. 가난에 시달리면서 미군 담요로 외투를 만들어 입고 머플러를 휘날리며 시를 읊던….” ‘은성’을 나오면서 전혜린은 친구에게 속삭였다. “하얀 세코날(수면제) 40알을 구했다고!” 이튿날 그녀는 수유동 숲길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2004년 EBS에서 60년대 ‘은성’의 기억을 다룬 ‘명동백작’이 방영됐고, 올 들어 혜화동에선 ‘세월이 가면’이란 연극이 올려졌다. 은성도 인환도 혜린도 가버린 명동, 쓰러진 술병 속에서 우는 가을 바람(박인환 ‘목마와 숙녀’중에서)만 돌아와 나뭇잎을 흔든다.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6 Comments
어여쁜 나 2017.03.06 15:36  
최불암선생님의 어머니가 은성술집 주인이셨는데 비록 최불암선생님이 홀어머니 슬하에 무녀독남 외아들로 자라셨고 그 어머니 역시 홀어머니시기는 했지만 결코 아들에게 짐스러운 홀어머니가 아니셨다고하니 그덕택에 최불암선생님은 훌륭한배우로 성장하시게 되었죠~!!!!
fabiano 2017.03.07 10:46  
에구, 열심히 공부하시누만... ㅎㅎ..
어여쁜 나 2017.04.07 12:22  
더군다나 최불암 선생님의 어머니는 은성술집 주인답게 당대 내노라하는 문인들이 와서 술먹고 수다를 떨었었다고하니 짐작이 가죠~!!!!
fabiano 2017.04.09 11:55  
당시의 잡지에 게재된 것을 본 기억이...세월은 흘러가고 사람들도 가고...
어여쁜 나 2017.06.04 22:01  
아무리 어려운시절이라도 부모님을 잘만나야 훌륭한사람으로 성장할수있죠~!!!!(물론 아닌경우도 있겠지만요~!!!!)
fabiano 2017.06.15 22:01  
확실히 배경이 좋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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