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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 서울의 풍경(1949년 1월)①

fabiano 18 3468  

일본 본토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미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36년간의 일제 통치하에서 해방되었다.

아래의 사진은 그로부터 약 4년의 세월이 흐른 1949년 1월 서울의 풍경이다.
컬러로 구현된 사진이 당시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60년 전의

이색적인 서울의 풍경이 다소 경이롭다.
  
닉네임 NorbFaye의 홈페이지 <
Korea & Japan, 1949-1950>에서 발췌하였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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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Comments
은하수 2009.10.05 07:51  
아리면서도 정겨운 풍경입니다
fabiano 2009.10.05 09:05  
칼러사진으로 보는 그 시절, 서울의 모습이 더 정겨워 보이네...
두가 2009.10.05 14:30  
무성영화를 보는 듯 .. 너무 정겹습니다..파비아노님 명절 잘 쉬셨는지요..^^
곶감 2009.10.05 21:19  
마음이 아련합니다.. 물론 저당시엔 없었지만..그래도 보기 좋습니다. ^^
fabiano 2009.10.06 09:45  
후즐그레한 그 시절의 풍경이지만 정겨운 느낌입니다. 덕분에 술도 좀하고 잘 지냈습니다...^^
fabiano 2009.10.06 09:46  
어쨌거나, 그 시절의 풍경은 정겨워 보입니다.  ㅎㅎ
아저씨 2009.10.06 16:16  
날씨가 지금 보다 훨씬 추워 보입니다. 명절 잘 보내셨지요 ?
fabiano 2009.10.06 18:45  
그 시절엔 왜그리도 추웠나요? 학창시절, 방안에 둔 파이롯트 잉크가 얼었으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mulim1672 2009.10.13 23:12  
저 시절은 참으로 추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태어난 해로군요 ㅎㅎㅎ.
fabiano 2009.10.14 07:14  
위 댓글에도 썼지만 그 시절엔 정말 추웠슴다. 포대기 강보에 싸인 무림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ㅎㅎㅎ..
parks 2010.03.05 00:56  
남루한 차림에도 표정은 활기차고 밝아 보입니다.지긋지긋한 왜놈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어서 일까.
fabiano 2010.03.05 10:47  
유사이래,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늘, 外侵을 받아 왔지요. 한반도가 요충지여서 그랬을 터이지만 북으로 부터 섬나라로 부터... 방어는 했지만 우리 민족이 침략한 것은 없었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의 심성이 곱고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 왔어도 밝은 표정이 이래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thhgrand 2015.03.16 15:21  
그 시절에는 거리에 이런 좌판 상인이 많았습니다. 어린 소년들도 손에 몇가지 팔 것을 들고 "&#59; 면도날 있어요. 라이타 돌 있어요. 다이아 찐 고약 있어요."&#59;라고 외치면서 다녔어요. 어려운 시절이라 애 어른 가리지 않고 거리로 나선거지요. 3 번째 사진에 역마차(兄弟)가 보이네요.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아마도 시내 버스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역마차가 대역을 한 것이겠지요. 뒤쪽에 출입문이 있고, 남자 차장이 "&#59;동대문 가요. 청량리 가요"&#59;라고 목적지를 알렸지요.  마차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으니까 승객들이 도중에 뛰어 오르고 내리기도 했습니다.  11 번째는 용산구 삼각지로 짐작이 됩니다. 제1연대본부라는 간판으로 보아 정부 수립후에 육군본부가 되는 주변에 주둔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구요. 왼쪽 건물(상업은행용산지점) 뒤에 '&#59;상명여자중고등학교'&#59;가 있었을 겝니다.
fabiano 2015.03.17 11:14  
대부분 서울역 주변과 용산 쪽이 배경으로 보입니다. 말이 이끄는 역마차가 생소하게 보입니다. 당시에도 버스가 있었을 텐데도...버스도 많지 않았으므로 역마차까지 동원되었나 봅니다. 1사단 소속 제1연대 본부가 삼각지 부근에 있었군요. 대충의 위치가 짐작이 갑니다.
thhgrand 2015.03.18 11:59  
당시의 서울 거리 사진을 보면 버스가 좀체로 눈에 뛰이지 않습니다. 소형승용차나 승합차  정도이고 대중교통기관의 대표는 전차였습니다. 1947년 북한에서 월남했을 때에는 이 역마차가 많이 눈에 뛰었지요. 옛 가요 &#39;울어라 은방울&#39;이란 가사에 &#39;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누구를 싣고 가는 서울 거리냐 /울어라 은방울아 세종로가 여기다&#39; 라는 노래가 당시의 실상을 노래한 것이지요. 당시에 교통 수단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교통기관이 없는 시골에서 하루일정의 거리는 당연히 걸어다녔습니다. 저도 네다섯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같이 대여섯 시간을 걸어서 외가에 갔었으니까요. 걷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있습니다. 국가재정의 50% 이상을 미국의 원조자금에 의존했으니 기름을 수입 할 처지가 못됬&#59;을 겁니다.
fabiano 2015.03.18 13:01  
이 포스팅이 중복되었군요. thhgrand님의 댓글을 읽으니 재미있고 이 포스팅 한장한장의 사진에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시간나면 오래 전의 포스팅을 점검하여 수정보완해야 되겠습니다. 저도 웬만한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저보다 연배이신 님의 이야기가 실감납니다. 한번 만나서 흘러간 이야기와 함께 술이라도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_^*
thhgrand 2015.03.19 10:03  
어린 나이지만 일정 시대가 아련하고, 해방과 공산치하를 2년여 경험했고, 그리고 월남,  6.25전쟁,4.19와 5.16혁명.그리고 산업화를 경 험했으니 어찌보면 역사의 격량을 격은 셈이지요. 이 미미하지만 소중한 체험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도 의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요행이 fabiano님의 블로그를 알게되 그 일을 하게 되니 즐겁습니다. 시기나 지명을 밣히는 것에 그 사진속의 상황을 설명하므로서 역사를 배우는 거지요. 현대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학계에서 기피를 하고 지꾸 뒤로 미루는데, 역사는 자료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구술(口述)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진 한 장에도 여러가지 체험담이 있을 수 있으나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귀중하고 어렵게 수집한 사진이 역사 자료로 가치를 발휘하도록 미미하나마 일조 하게되어 기쁩니다.
fabiano 2015.03.19 11:48  
현대사를 논하는데도 이데올로기와 편향된 시선으로 말미암아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이념과 공산사회주의 사상이 현대사에 대입하여 왜곡하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거두절미하고 thhgrand님의 의견에 적극 동조합니다. 어떤 이념에 물들지 않은 개인의 생각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자료를 다시한번 찾아보고 아는데까지 첨언해 보겠습니다. 아주, 좋으신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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