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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참말로 줄 끼 뺏떼기뿐이가?

fabiano 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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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알간 황토빛 몸매를 드러낸 고구마, 금방이라도 한입 베어물고 싶다
ⓒ 영월군
"요번 주말에는 아들(아이들) 데불고 뒷산에 심어둔 고매(고구마)를 캐야 될 낀데... 내가 지난번에 무시(무) 빼로(뽑으러) 갔다가 슬쩍 파 보이(보니까) 올개(올해) 고매는 뿌리가 제법 실하게 들었더라카이"

"그라지요. 첫서리도 몇 번 내리고 했으이(했으니까) 인자 고매 캘 때도 되기는 됐지요. 아이들도 고매 캔다카모 디기(많이) 좋아할 끼구마"

어릴 때 농촌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시겠지만 농촌일이란 것이 벼 수확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벼 수확이 끝나고 나면 집 뒷마당에 대충 쌓인 짚단을 새롭게 차곡차곡 쌓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수확한 벼 말리기, 타작 전에 논두렁에서 베어 말려둔 콩 타작하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출출 흐르는 참깨 털기, 감 따기, 고구마 캐기, 보리 심기 등 잔잔한 허드렛일들이 너무나 많다.

농촌에서 벼와 보리를 심는다는 것은 가족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특히 돈도 되지 않는 보리농사보다는 조상 대대로 지어온 벼농사야말로 우리 마을 어르신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금싸라기를 줍는 그런 농사였다. 당시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수확한 벼를 수매하여 우리들의 학자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지난 일년 동안 이웃집에서나 농협 등에서 빌려 쓴 돈을 갚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벼와 보리농사 외에는 다른 특용작물 따위를 심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옛말을 가보처럼 이어 받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마을의 논은 다랑이논처럼 보였지만 비음산과 봉림산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기 때문에 웬만한 가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락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 또한 그랬다. 볏짚 또한 금싸라기를 수확하고 남은 은싸라기나 마찬가지였다. 버릴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이맘 때, 그러니까 고구마를 캘 무렵이 다가오면 마을 어르신들은 양지 바른 곳에 짚단을 하나 척 깔고 앉아 뒷마당에 차곡차곡 쌓아둔 그 볏단으로 새끼를 꼬기도 하고 이엉을 엮기도 했다.

"이야~ 이거는 니 머리통만하다. 그쟈?"
"히히히! 이거는 꼭 니 고추하고 꼭 같이 생깄다"

"쯧쯧쯧. 고매(고구마) 캐라 캤더마는 고매 같이 생긴 것들이 고매 가꼬 놀기만 하모 우짜노? 인자 고마(그만) 까불고 퍼뜩 고매나 캐라. 해 다 지겄다. 그라고 퍼득 캐라 칸다고 마구 쫓아대다가 호미로 그 잘 생긴 고매 얼굴 다 찍어놓지 말고. 알것나?"

첫서리가 몇 차례 내리고 나면 어머니는 우리를 앞세워 앞산가새(앞산 비탈) 뒷산에 있는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를 캐는 일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구마는 호미로 캐는 즉시 깎아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고구마를 여러 가지 잡풀이 솟아난 밭둑에 쓰윽 문지르면 연분홍빛 색깔이 아주 이쁘게 나온다. 그 다음 그 연분홍빛 고구마 껍질을 이빨로 대충 벗기면 이내 입속에 고구마의 달착지근한 녹말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내 한 입 베어 물면 그만이었다.

당시 우리는 고구마를 '고매' 라 불렀다. 무를 '무시'라고 불렀던 것처럼. 경상도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 또한 대체적으로 빠르다. 그러하다 보니 대부분의 경상도 지역에서 쓰는 말들은 어떤 단어를 압축시킨 말들이 많았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흔히 쓰는 말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할아버지는 '할배', 할머니는 '할메', 아버지는 '아배' 또는 '아부지', 어머니는 '어메' 또는 '옴마', 아저씨는 '아재', 고구마는 '고매' 등.

그 고구마의 연분홍 껍질을 벗기고 자세히 바라보면 이빨자국이 난 고구마의 속살은 두 가지 색깔로 구분된다. 어떤 것은 우유처럼 하얗고 어떤 것은 밭둑 풀숲에 숨어있는 호박처럼 제법 노랗다. 당시 우리는 고구마 속살이 하얀 것은 '물고매'라 불렀고, 속살이 노란 것은 '파삭고매' 또는 '타박고매'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고구마들을 실제로 삶아보면 속살이 흰 고구마는 주로 속살이 모두 노랗게 변하면서 물렁물렁했다. 또 속살이 노란 고구마를 삶으면 노오란 속살 가운데 계란 노른자를 반으로 잘라놓은 것처럼 동그란 하얀 무늬가 박혀 있었다. 그래, 바로 이 '타박고매'가 사람들이 말하는 그 밤고구마다.

하지만 날 것으로 깎아 먹을 때는 밤고구마 보다 이 물고구마라고 하는 것이 달착지근한 물이 많이 나오는 것이 더 맛이 좋다. 하지만 삶아 먹을 때에는 이 밤고구마라고 하는 것이 더 맛이 좋다. 하지만 삶은 지 몇 시간이 지난 고구마, 그러니까 중참으로 나오는 그 고구마는 이 물고구마가 훨씬 맛이 있다. 왜냐하면 금방 삶았을 때에는 밤고구마가 맛이 있지만 식은 밤고구마는 목에 넘기자마자 목이 메여 반드시 물을 마셔야 쑤욱 내려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고구마를 수확할 때에도 약간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 우선 서리를 맞아 제법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고구마 줄기를 모두 걷어낸다. 그 다음 호미로 밭이랑의 흙을 슬슬 헤집으면 이내 씨알 굵은 바알간 고구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온다. 이 때 성급히 고구마를 캐려고 호미로 밭이랑을 마구 헤집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다가는 이내 고구마의 몸통을 벌집으로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낼 때에도 아기 고추만한 고구마 뿌리가 몇 개씩 덜렁덜렁 달려나온다. 하지만 그 아기 고추만한 잔고구마는 줄기에 달린 채로 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걷어낸 그 고구마 줄기는 잘 말린 뒤 짚과 더불어 소여물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 고구마 줄기가 다 마르고 난 뒤에 그 줄기에 매달린 바싹 마른 그 아기 고추만한 고구마를 따먹는 그 맛이 정말 별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스스로 캐낸 그 생고구마를 먹어가면서 황토빛 바알간 고구마를 수확하는 그 재미, 그 혀끝을 희롱하는 달착지근한 재미를 요즈음 도시 사람들은 꿈에도 알 수 없으리라. 또한 그렇게 수확한 고구마는 마을 어르신들의 참이 되기도 했고, 손님이 오면 접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또 우리들에게는 무와 더불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고구마를 요리해 먹는 방법은 참으로 많다. 요즈음 사람들은 대부분 고구마는 삶아 먹는 음식으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추운 겨울날, 우리들의 훌륭한 식량이자 간식이었던 고구마를 모욕하는 것이다. 고구마는 날 것으로 깎아 먹기도 했지만 무처럼 동그랗게 썰어 그대로 초가지붕 위에 널어 말려서 먹었다. 또 아기 고추만한 고구마는 삶은 뒤 그렇게 널어 말려서 먹었다.

그렇게 말린 것을 우리는 '고매 뺏떼기'라고 불렀다. 당시 우리는 추운 겨울 내내 양지 바른 곳에 앉아 그 맛있는 고매 뺏떼기를 주머니 불룩이 넣고 다니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연을 날릴 때도, 자치기를 할 때에도, 팽이를 돌릴 때도, 미나리꽝에 나가 얼음지치기를 할 때에도 그 고매 뺏떼기를 먹었다.

그 고매 뺏떼기... 그 해, 그 지독하게도 추운 겨울날, 그 고매 뺏떼기를 그 가시나에게 모두 주고 난 그 해, 그 가시나로부터 그 바알간 동이감 홍시를 얻어먹은 그 해부터 턱 밑이 제법 까끌해지더니 이내 얼굴 여기저기에 흉터 같은 여드름이 마구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시나의 가슴도 마치 가슴 안주머니에 고매 뺏떼기를 넣은 것처럼 그렇게 불룩해지기 시작했다.

"아나~ 우리 집에서 딴 도감(동이감)이다"
"누가 볼라?"
"보모(보면) 우짤낀데..."
"가시나 니 참말로 간 크다이"
"근데 니는 오늘 내한테 뭐 줄 끼 없나?"
"뺏떼기 말고는 줄 끼 하나도 없다"
"그라모 그 뺏떼기라도 주라"
"아나~ 인자 니한테 줄 끼 아무 것도 없다"
"피이~ 니 참말로 줄 끼 뺏떼기뿐이가"
"가시나 니, 내 말 못 믿것나?"
"피이~ 머스마 니, 참말로 내가 하는 말 뜻을 그리도 못 알아듣것나?"
"우짜라꼬?"
"이런 툭구(바보)~ 드~응~신"


                                                                   출처 :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26>고구마  이종찬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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