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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 설립 50주년-(1) 원자력 태동기(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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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로 간 청년 3명 ‘원자력의 꿈’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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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TRIGA Mark-II 기공식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원자력시대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시삽을 하고 있다.(1959년 7월 14일)

2009년은 대한민국 원자력 역사에서 뜻깊은 한해다. 지난 1959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인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설립됐던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기관 중 최초로 ‘지천명(知天命)’이 됐기 때문이다. 새정부 출범 이후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 축으로 새롭게 부상하며 ‘新 르네상스시대’를 맞고 있는 원자력연구원의 ‘어제와 오늘’ 등 지난 반세기를 조명하고 ‘미래’를 전망해보는 시리즈를 게재하기로 했다.

▲원자력연구소 설립=1955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개최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박철재 등 3명이 참석해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전망과 우라늄, 토륨 등 지하자원 실태를 발표했었다. 이 회의를 계기로 원자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들은 연구 그룹을 구성해 원자력에 관한 전문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1955년 12월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한·미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이 우리나라 국회에서 비준됨으로써 한·미간 원자력에 관한 기술협력이 시작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해 미국과의 원자력 기술 협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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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3월 9일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의 연구개발 및 이용을 위한 행정부서인 ‘원자력과’가 신설됐다. 이 부서의 임무는 원자력법 제정, 전담 행정기구의 조직 및 직제 구성, 향후 설립될 연구소의 직제 구성과 도입될 연구용 원자로의 노형 선정 및 건설 등 이었다. 원자력법은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을 토대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전문 13조와 부칙으로 구성됐으며 1958년 3월 11일 법률로 공포됐다.

법률이 공포된 후 10월 1일에는 ‘원자력원’ 직제가 공포돼 행정기구의 기틀이 마련됐다. 원자력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원장을 각료급으로 임명하고 사무총국, 원자력위원회와 원자력연구소를 두었다.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 관련 정책, 예산, 관계 법령 및 규정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기구인데 정원 5명의 원자력위원은 1급 공무원 신분이고 대통령이 임명했다. 위원장은 원자력원장이, 위원 중 한 사람은 원자력연구소장이 겸임했다.

원자력연구소 설립에 앞서 연구용 원자로를 포함한 연구시설이 들어설 부지로 서울공대 13만평 중 5만평을 할애받기로 했다. 1959년 2월 9일 ‘원자력연구소 설립 장소 선정에 관한 일’이라는 원자력원장 명의의 공문을 대통령이 재가했다.

원자력원 발족과 함께 1959년 2월 3일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됐고, 문교부 기술교육국장이던 박철재씨가 초대 소장으로 임명됐다. 같은 해 3월 1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4호관을 빌려 원자력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당시 연구소 조직은 원자로부·기초연구부·방사성동위원소부 등 3부 체제였다.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및 TRIGA Mark-Ⅲ의 건설=문교부는 1957년부터 연구용 원자로 도입을 계획했다. 도입을 추진했던 인사들은 당초 50 kWt 급 비등수형 원자로를 염두에 뒀으나 가격과 활용성 등을 고려해 General Atomic(GA)의 TRIGA Mark-Ⅱ를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계획에 따라 우리나라의 원자로 구입비 35만 달러를 무상 원조했고, 우리 정부가 1958년 확보한 35만 달러를 합쳐 총 70만 달러를 원자로 및 부속 기자재 도입비로 확보했다.

1959년 양흥석·이관·이창건씨 등 6명은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 부설 국제원자력과정 제8기를 수료하고 GA의 TRIGA 원자로 운전훈련을 받은 뒤 미국 원자력위원회가 발행한 TRIGA 원자로 운전면허증을 최초로 획득했다.

원자로 건물은 당시 촉망받던 건축가 김중업씨가 설계했다. 1959년 7월 14일 역사적인 TRIGA Mark-Ⅱ 기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 등 3부 요인과 외교사절 등이 참석했다. 1962년 3월 19일 오전 10시 50분 핵연료 장전시험을 시작으로 같은 날 오후 4시 52분 원자로가 임계에 도달했다. 이후 제어봉 반응도 측정, 출력 보정 등을 거쳐 3월 23일에 100 kWt의 정격 열출력에 도달했다. 3월 30일 준공식은 국가의 경사가 됐고, 기념우표도 발행됐다. TRIGA Mark-Ⅱ는 1967년부터 출력을 100 kWt에서 250 kWt로 증강하는 계획을 추진해 1969년 6월 24일 달성했다. 1965년부터 열출력 MW급의 제2 연구용 원자로 도입 계획이 추진돼 연구소의 많은 논의끝에 TRIGA Mark-Ⅲ를 도입키로 했다. 1969년 4월 기공식을 가졌고 1972년 3월 임계에 도달했다.

▲방사선의학연구소 및 방사선농학연구소의 설립=원자력원은 1962년 3월 29일 연구소 내에 방사선의학연구실을 설치하고, 이듬해 9월에는 서울 서대문구 정동 2번지 옛 중앙방송 자리에 연면적 2150 ㎡ 규모의 방사선의학연구소 건물을 준공했다. 같은해 11월부터 일부 진료 업무에 착수해 1963년 12월 17일 방사선의학연구소로 정식 출범했다. 1968년 2월 부속 암병원을 개원했는데 1972년까지 진료한 환자의 수는 48만 명 정도였다. 1969년부터 암 조지 진단사업에 착수했다.

또 연구소 내 방사선농학연구실은 농학계의 확대 주장에 따라 1966년 11월 방사선농학연구소로 독립·분리됐다가 1972년 통폐합됐다.

▲원자력발전소 건설 추진=1962년 11월 원자력원은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해 그동안 산발적으로 수행하던 원자력 발전 관련 조사연구 업무를 총괄하고 국내 에너지 수급 전망 및 세계 에너지 시장 및 원자력 발전기술 개발 현황 조사, 원자력발전소 부지에 대한 예비조사 등을 연구소가 추진하게 했다.

원자력원이 1965년 12월 구성한 실무위원회인 ‘원자력발전조사위원회‘는 에너지 및 전력의 장기 수급계획, 원자력 발전의 기술성 및 경제성 분석 등을 통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타당성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원자력청(前 원자력원)의 주관아래 한국전력, 석유공사, 지질조사소, 석탄공사, 산림청 등이 참여해 구성된 원자력발전소 조사작업반은 후보지 조사 등을 통해 양산군 장안면 고리를 발전소 부지로 최종 결정했다.

▲연구활동=물리학, 화학, 생물학, 원자로공학, 전자공학, 보건물리학, 의학, 농학 등 분야에서 연구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물리학분야에서는 1962-1963년에 걸쳐 파일 오실레이터(pile oscillator)에 의한 열중성자 흡수단면적 측정연구와 원자로 접선실험공에서 투과시험법에 의한 중성자의 전단면적 측정연구, Ge(Li) 검출기의 국산화, anti-Compton 분광기 개발 등이 이루어졌다.

생물학분야에서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IAEA의 위탁연구로 감마선 조사에 의한 송충이의 불임 효과 연구를 수행해 좋은 결과를 얻었으나 실용화하지는 못했었다. 한반도 연안의 기초 생산력 조사연구는 연안 어업에 귀중한 자료가 됐다. 전자공학분야에서는 베타선 및 감마선을 이용한 종이, 철판, 플라스틱 판 등의 두께 측정기를 개발해 생산공정 자동화와 품질향상을 위한 방사선 이용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보건물리학분야에서는 중국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성 낙진에 의한 환경시료의 오염상황을 측정해 방사능대책위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정재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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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 서울 공대 5호관에서 개최된 원자력연구소 개소식(1959년 3월 1일, 앞줄 왼쪽에서 6번째가 박철재 초대소장, 다음이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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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3월 30일 과학기술처의 발족과 함께 원자력연이 원자력청으로 개편 출범했다.(1967년 4월 12일, 치사를 하는 윤일선 원장, 성좌경 초대 원자력청장, 조백현 원자력위원

정재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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