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라는 동물이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압도적으로 비난을 함유하고 있다. 교활하다는 의미와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거니와 여우라는 동물이 갖는 이런 특성은 저 서구 문명과 비교해서 아주 재미있는 것은 거기서도 그런 맥락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즉, fox의 형용사형인 foxy는 말할 것도 없이 sly 혹은 shrewd와 동의어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동서양 문화권 여우가 갖는 공통분모는 예외없이 여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여우 같다고 하면 그 의미가 무엇이건 무엇보다 그 여우 같은 대상은 일단은 여성이다는 전제를 깔아 뭉개고 있다.

영어에서는 she's a fox하면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칭송의 의미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한 한국어 대응 표현 여우 같다도 요즘은 서구권 영향 때문인지 많이 긍정적으로 변모되어 한때 일세를 풍미한 저 여인. 

요즘의 문근영이나 김태희가 누리는 권능에 맞먹는 세련미를 발산했던 여배우 고소영을 여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고소영과 여우를 연계하는 이미지는 그가 주연했으나 참담하게 흥행에서 실패한 영화가 마침 '구미호'였다는 점과 더욱 오버랩 되어 있으니, 암튼 여우가 주는 압도적인 이미지는 무엇인가 앙칼진듯 하면서도 교활하면서, 여성적이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있을수가 없으리라.

이 여우가 동아시아권에서는 거의 압도적으로 칭송으로 일관되는 경우가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구초심(首丘初心)

이니, 이것이야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 죽을 때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니라. 여담이지만 저 수구초심에서 首는 '대가리'라는 명사(NOUN)이 아니라 '대갈통을 어디로 쳐박는다'고 하는 동사(VERB)임을 명심하기 바라노라.

하지만 이 수구초심에서도 유의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여우조차도"(even a fox)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저 동물 축에도 들지 못할 저 여우라고 하는 미물(微物)조차도 고향을 그리워 할진대 인간 나부랭이가 되어가지고도 여우보다 못하면 쓰겠는냐는 반어적인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발전하면? 우리가 남이가?)

암튼 여우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부정적 인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니,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여우는 흔히 요괴와 연동되고 있으니, 여시한테 홀린듯하다는 표현이 그 대표성이니라.

이런 모든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이 여우가 주는 그 날카로움에서 말미암았을 것이다. 특히 그 길쭉한 주둥아리 하며, 날카로운 눈탱이 하며, 뭔가 요기를 발산하는 듯한 그 모습. 그래서일까?

어찌된 셈인지 이 여우는 둔갑(遁甲)의 대명사로 간주되고 있다. 둔갑이란 말할 것도 없이 A라는 형체에서 B, B에서 A로 환원하는 형체의 변환 기술이니, 여우는 흔히 여자 귀신 혹은 여자 요괴의 변신물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둔갑의 대명사로서 여우가 갖는 이미지, 그 역사는 언제쯤일까?

나는 요즘 각종 문헌을 들쩍거리는 과정에서 둔갑술과 연동된 여우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원시적인 형태의 여우는 잠시 제쳐두고 비교적 현대에 가까운 문헌을 일별하건대 먼저 청대 초기에 포송령(齡)이란 자가 완성한 괴기 이야기집인 요재지이(異)가 있으니 최근에 국내에는 총 6권짜리 방대한 분량으로 완역이 이뤄진 이 짤막한 이야기 모음집에 수록된 각종 이야기는 한마디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라.
온통 귀신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단연 압도적인 귀신은 그 원판이 여우임을 볼 수 있으니,

나아가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이제 위진남북조 시대, 우리 한반도 문화로 말할 것 같으면 신라-고구려-백제가 솥발처럼 이전투구를 감행하게 되는 그 시점, 저 중국에서는 특히 양자강 유역 남방문화권을 중심으로 화려한 지괴(志怪)의 시대로 접어드나니, 괴기스런 일들을 기록했다 하여 이러한 문학을 지괴소설이라 하고, 나아가 그 중심에 사람이 있으면 지인(志人)소설이라고도 하는 판타지 문학에 접어드나니, 여기에서도 여우는 곳곳에서 둔갑하는 귀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시대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 선진(先秦)시대, 즉 기원전 221년, 진의 시황제라는 요망한 군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어떠한가?
여기서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관련 사료를 엄격하게 제시해야 하겠으나, 아래서 드는 것 외에 다른 하나는 기억만을 더듬어 얘기하기로 한다.

장주(莊周)라는 자를 아는가?
우리 교육이 어이된 판대기인지, 노담(老聃)하면 아무도 못 알아 듣고 노자(老子) 해야만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공구(孔丘)하면 전부다 뭔 소리여 하다가도 공자(孔子)해야 알아들으니,

저 장주라는 자도 중국 남방 宋나라 변방 귀퉁이 옷칠 나무 동산을 관리하는 말단 지방공무원이었다. 저 촌뜨기가 유명해 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장자(莊子)라는 책 때문이었다. 장자는 장주라는 촌뜨기를 선생화한 존칭이기도 하면서 그가 지은 책을 높이여 일컫는 말이니, 이는 맹가(孟軻)라는 노(魯)나라 출신 시건방진 늙은이를 드높여 맹자(孟子)라 하고, 그가 제자들과 문답한 모음집 또한 맹자라고 부르고 있는 발상과 같다.

애니웨이, 이 장주라는 촌뜨기 어록집인 저 장자에는 여우가 이미 둔갑하는 동물로 고정되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장자 내편이 아니라 잡편 아니면 외편이었다고 그 출전을 기억한다.

저 장주라는 자 자체가 둔갑의 대명사격이니, 장주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데 깨어보니 나비가 장주인지 장주가 나비인지 모르겠다는 탄설은 바로 둔갑을 부리는 도사로서의 장주를 말해 준다 하겠거니와 실제 그 자신이 썼거나 혹은 그를 종조로 섬기는 장주학파의 저작물로 간주되는 장자에서 벌써 여우는 둔갑하는 동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이 장자라는 텍스트는 내편/외편/잡편의 3부작이니, 이 중 내편은 장주 자신이 직접 썼다고 간주되고 있거니와 이를 존중한다면 그 성립시기는 장주는 대체로 기원전 370년 무렵에 나서 기원전 300년 어간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니 기원전 4세기에 완성됐다고 볼 수 있으며 외편과 잡편은 그의 사후에 이룩되어 아무리 늦어도 진한교체기인 서기 200년 무렵에는 완성돼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니,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기원전 150년 무렵에 출생한 사마천이가 이 장자 내편뿐만 아니라 외편 잡편까지도 싸잡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자에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둔갑술은 실은 장주 자신의 저작임이 명백하다고 간주되는 그 첫머리, 즉, 소요유편이 단적으로 증명을 하고 있으니, 저 남해 곤이라는 물고기가 새로 변한다는 발상, 그것이 둔갑술 아니면 무슨 개뼉다귀란 말이더냐? 이런 둔갑술은 나중에 불교가 중국에 상륙하면서 더욱 극성을 이룩하게 되나니, 손오공 저팔계 삼장법사가 바로 둔갑의 대명사들 아니고 무엇이더냐? 

둔갑하는 교활한 동물 여우와 관련해 우리의 흥미를 돋구는 것은 바로 구미호이다.

구미호 : 九尾狐

말 그대로 꼬랑지 아홉개 달린 여우이며 그런 여우에게 홀렸다간 패가망신한다는 언설의 주창의 근거가 되는 여우 요괴의 전형이다.

그렇다면 여우와 연동된 구미호는 과연 언제쯤 작품인가?

거의 모든 면에서 장자와 통한다고 할 수 있는(저작 시기도 거의 같다)는 선진시대 중국의 괴기 지리지로 간주되는 산해경(山海經). 산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인데 거기에 수록된 성향은 괴상하고도 망칙하다. 혹자는 이런 산해경을요즘은 판타지 문학이라는 범주로 포함시키는데, 이 산해경 중에서도 그 첫 머리 산경(山經)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발견된다.

번역 : 다시 동쪽으로 3백리를 가면 청구(靑丘)라는 산이 있는데 그 남쪽에는 玉이 많고 그 북쪽에는 청호(靑호<護에서 言 대신 靑>)가 많이 난다. 거기에 들짐승이 있으니 그 모양은 마치 여우와 같아 꼬리는 아홉 개가 달려 있고,그것이 내는 소리는 어린아이와 같으며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것을 먹으면 고(蠱)에 걸리지 않는다. 거기에 날짐승이 있으니 그 모양은 비둘기와 같은데 그 소리는 마치 꾸짖는 듯하니 그래서 이름하기를 관관(灌灌)이라 한다. 그것을 허리춤에 차면 의혹이 없어진다. 영수(英水)가 그곳에서 나서 남쪽으로 흘러 즉익(卽翼)이라는 못으로 흘러든다. 거기에는 적유(赤유<儒에서 사람인변 대신 魚>)가 많으니 그 모양은 물고기 같으나 사람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 소리는 원앙(鴛鴦)과 같다. 그것을 잡아먹으면 옴병에 걸리지 않는다.


원문 :
又東三百里,曰靑丘之山〔1〕,其陽多玉,其陰多靑호<護에서 言 대신 靑>〔2〕. 有獸焉,其狀如狐而九尾〔3〕,其音如?兒,能食人;食者不蠱〔4〕. 有鳥焉,其狀如鳩,其音若呵〔5〕,名曰灌灌〔6〕,佩之不惑. 英水出焉,南流注于卽翼之澤〔7〕. 其中多赤?〔8〕,其狀如魚而人面,其音如鴛鴦,食之不疥〔9〕.



주석 :
〔1〕郭璞云 : “亦有靑丘國在海外.”  珂案:靑丘國見海外東經(海經新釋卷四).

〔2〕?懿行云:“호<護에서 言 대신 靑>當爲?;說文云:‘?,善丹也.’ 《初學記》五卷引此經正作?.”  珂案:畢沅校本亦作?.

〔3〕郭璞云:“卽九尾狐.” 

〔4〕郭璞云:“?其肉令人不逢妖邪之氣. 或曰:蠱,蠱毒.” 

〔5〕郭璞云:“如人相呵呼聲.” 

〔6〕郭璞云:“或作濩濩.”  珂案:呂氏春秋本味篇云:“肉之美者,??之炙.”  高誘注:“??,鳥名,形則未聞. ?一作獲.”  卽此鳥也.

〔7〕珂案:見上文“猿翼之山”注〔1〕.

〔8〕珂案:?音儒;赤?,蓋人魚之類. 參見海經新釋卷七“陵魚”節注〔1〕.

〔9〕 郭璞云:“一作疾.” 


 위 몇 구절을 注한다.
청구(靑丘), 어데서 많이 듣던 말이리라. 맞다, 무궁화 동산, 저 청구라는 말은 출전이 바로 이 산해경인데 그것을 동이족 터전으로 보아 청구라는 말이 난데없이 한반도의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 일본놈들이 식민지시대에 한국학 관련 전문 학술지를 맹글게 되는게 그 이름이 청구학총이었다.

관관(灌灌) ;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소리를 그대로 옮긴 의성어이니, 우리말로 굳이 옮기면 꽥꽥 이다. 오리 울음 소리 같다.

고(蠱)라는 글자 말이다. 이 글자는 생긴 꼬락서니를 보면 그릇(皿) 위에 벌레 세 마리가 득실거리는 모습이다. 여기서 벌레를 저 잠실동 누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독기를 몰아오는 바이러스라고 보면 된다. 이 蠱라는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기원전 600년 무렵 중국 秦나라에서 시작된 전통이 바로 복날 개고기 먹기 풍습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태식의 관련 기사가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여름 더위 먹었다 하는데 그 더위를 몰고온 주범이 蠱인 것이다.

위 산해경 문장은 마치 의사의 처방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