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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헐, x이 나와야지!

fabiano 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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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달에 두 서너 번씩 노인정을 드나든다.

물론 회원으로 자격이 있거나 벌써부터 소일거리가 없어서 어슬렁거리는 것 또한 아니다.

내가 만 65세에 닿으려면 한참이나 더 가야하기도 하지만 해야 할 일도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왜? 노인정을 들랑거리는가.

명분이야, 잔심부름과 청소로 그럴듯하게 내세웠지만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노인들의 삶 속에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월들이 담겨져 있고 그것들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쿠리한 된장이나 신 김치의 군내처럼 처음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좀더 들어보면 보골보골 된장국이 끓듯이 냄새도 구수하거니와 매큼들큼한 맛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모두가 자신의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자학하며 한탄하는 부분이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의 척도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식들에 있었다.



노인정에 들어서면 언제나 내기 장기 아니면 고스톱을 치는 분들과 이런저런 소싯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대분류된다.

그들은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붙어 있다보니 다툼도 있지만 정이 들어선지 오래지 않아 화해를 한다.

화해에는 중개인이 나서기 마련이며 술 또한 빠질 수 없는 명약이다.

나는 노인들의 다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들의 잦은 다툼과 화해는 노인들 스스로 설정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본능인지도 모른다.’

다툼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칫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목청만

높았지 다툼에도 서로를 배려하는, 죽마고우와 같은 어떤 정이 깔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짚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이내 삭으려 들고 술잔이 오고가는 것이다.

불콰해진 볼처럼 기분이 상승하면 노랫가락이라도 뽑아야 제격이건만 그들은 금세 우울해

하면서 아들이나 며느리를 성토하기 시작한다.

불만은 直系일수록 더 크고 높은 것 같았다.






거듭되는 술잔으로 용기를 얻었는지 정노인은 감춰둔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날도 변기가 말썽이었다.

화장실이 하나 뿐인 작은 아파트에서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공동으로 사용하다보니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 중에 상 고역이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편안하게 앉아서 누면 X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변기 깔판에 폭신한 양털이라도 깔리는 겨울철이면 더욱 더 나오지 않아서 변비로 고생을 한다고 했다.

그런 그는 생각 끝에 고안해 낸 것이 있었다.

그냥 양변기 위에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밑살 끝까지 미치는 힘으로 얼른 덩어리를 밀어낼 수 있어서 참으로 개운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깔판 위에 맨발로 올라서서 일을 보다보니 힘의 편중으로 플라스틱 깔판이 우그러지거나 심지어는

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그런 날이면 며느리의 눈 꼬리가 여느 때보다 한층 더 올라가고 시원하게 덩어리를 빼냈는데도

뭔가 덜 빠진 것처럼 꿀꿀한, 두엄 썩는 냄새처럼 하루 종일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그런 며느리의 눈치는 영감님의 변비를 더욱 도지게 하였으며 결국에는 양변기에서 낙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지고 보면 정씨 영감님의 낙상은 재래식 변소에 길들여진 그분의 습관에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실제적 행동을(눈물겨운 노력) 며느리가 알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은 생존을 위하여 또 아이디어를 짜고 짜내었다.

"오라, 변기 깔판을 위로 재껴 놓고 그 위에서 일을 보면 더 이상 깨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기 깔판을 올리면 발바닥에 닿는 세라믹 용기의 면적이 얼마나 협소한가.

마치, 외줄 위에 올라앉은 것 같아 과학적으로 보아도 한쪽 발이 미끄러질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정씨 영감님은 낙상을 하였다. 젊은 놈들이야 미끄러져도 이내 균형을 잡을 수 있지만

팔순이 낼 모래인 영감님은 그럴만한 감각이 없었다.

결국 팔이 부러지고 얼굴에 찰과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일이 발생하고부터는 며느리는 물론 아들 손자까지 망령든 노인네로 취급을 하니 더 이상 버텨볼

재간이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두 분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씨 영감님의 귀향이 꼭 화장실사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온 환경 속에서 얻어진 "습관과 버릇"이 있다.

좋은 습관이나 버릇도 있지만 그것들은 문장이나 입으로 전달할 때는 대개 부정적의미로 작용이 된다.

습관이란 보통 똑같은 상황에서 되풀이되는 행동이 그 상황에 적절한 방법으로 안정되어 막힘없이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씨 영감님의 습관이 보편적이지 못하다 해서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분의 화장실 사용 습관은 이미 선조 때부터 길들여졌고 쪼그리고 앉아야만 가장 편안하게 X을 눌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 후반,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 중인 정유공장에 한국인 기술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는 건설회사는 ‘아람코’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계 석유회사. 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의 약칭.) 회사와 기술협력에 따라

엔지니어와 다수의 기능사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도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다름 아닌 화장실 소동이었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화장실엔 자주 변기 뚜껑이나 깔판이 깨어지고 떨어졌다.

그 원인이 양변기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인의 습관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한국인들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한 행위는 자국에 대한 불만이거나 저임금 때문이 아닌가하고.

결국 나는 그들과 회의를 갖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결론을 얻어내었다. 그 결론이란 아주 합리적이었다.

한국인 숙소에 있는 공중화장실은 쪼그리고 앉는 것과 편안하게 앉는 것을 오십대 오십으로 재 설치하였던 것이다.

조치 후 화장실 때문에 한국인 간부들이 더 이상 불려 가는 일은 없었다.

그때 나는 아무리 선진 된 문화가 편리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해도 길들여지지 않은 것은 불편하기 때문에 금방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씨 영감님께서 흥분하는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분의 불만이 크면 클수록 자식과 며느리의 괴로움 역시 배가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 또한 세대간이 풀어야할 갈등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너나없이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무 급하게 변화하고 싶어 한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그 빠름 속에는 가시적인 성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옛것을 무시하는

경향 때문에 그리움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정씨 영감님께 다가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영감님, 이제는 "X"도 편안하시죠?"



from     Konas.net (작성자  海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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