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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중대마다 30~40명 영양실조”

fabiano 0 1107  

북한군 상위 출신 탈북자 “병사들 악만 남아 통제하기 힘들어…”

북한이 지난해 당한 수해 피해로 군인들에 식량배급량이 줄어들어 평양인근 군부대에서는 중대마다 30~40명 정도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21일 배포한 북한 내부 소식지(NK In & Out)에서 13년간 평양수도방위사령부에서 근무한 북한군 상위(한국군의 중위와 대위사이의 계급) 출신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최근 북한군 실태를 소개했다.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탈북자 김성철(가명) 씨는 “(제대 후) 군관학교 졸업증 같은 것은 사회에서 인정도 안 해주고 배급도 없으니, 당장 먹고 살기도 힘이 들었다”며 “조선(북한)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탈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대에 있을 때 중대마다(120명 기준) 30~40명은 허약자”라며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도 뼈에 가죽만 남아있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질병을 만나서 죽는 사람은 많다”고 밝혔다.

김 씨가 상위로 근무하면서 받았던 월급은 북한 돈 2천800원. 그는 “봉급을 받으면 동무들하고 두부 한 모에 술 한 두병 마시면 모두 다 나간다”며 “봉급은 그냥 술이나 한 잔 하라고 받는 돈이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각종 비리가 만연하고 있는 북한군 내부 실태와 열악한 물자공급 상황 등을 설명하며 “먹고 살기 힘드니 군인도 악만 남아 병사들 통제 힘들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소식지에 실린 김 씨의 인터뷰 전문]

-군관 생활은 언제까지 했으며, 언제 중국으로 나왔나?

올해 초까지 계속 군관으로 근무를 했다. 중국에는 9월 초에 나왔다. 중국 싼허(三合)로 경비대 하사(하사관)가 카바(망을 봐주는 것)를 서서 인민폐(중국 돈) 1,000 위안을 주고 두만강을 건넜다. 나를 넘겨준 하사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고, 내가 도움을 많이 주기도 했던 사이어서 인민폐 1,000 위안만 받고 그냥 넘겨줬다.

-군관으로 생활하다 탈북을 결심한 직접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부모들이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군관으로 산다는 게 너무도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제대신청서’를 내고 제대됐다. 제대 후 사회에 나와 보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막연(막막)했다. 올해는 내가 복무(근무)하던 평양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사정이 형편없었다. 지방은 말 할 것도 못되고…

30년 이상 군사복무를 한 좌급(영관급) 이상 사람들도 국가적으로 집을 주기 힘든데 우리 같은 위급(위관급)사람들은 말도 못 꺼낸다. 군관학교(장교 양성학교) 졸업증 같은 것은 사회에서 인정도 안 해주고 배급도 없으니 당장 먹고 살기도 힘이 들고… 내가 볼 때 조선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래서 탈북하기로 결심했다.

군인 생활 13년, “직장도 없고 배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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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군 만기 전역증 ⓒ데일리NK
-군 입대는 언제 했나?

1995년도에 입대해서 5년 동안 하전사(하사관)로 근무를 했다. 하전사로 복무 하던 중 정치지도원이 군관학교 추천을 해주어서 운 좋게 군관학교에 가게 되었다. 2000년에 군관학교에 들어갔다. 군관학교를 졸업(2년)하고 부대로 배치 받아서 쭉 군관으로 복무를 했다.

-군관학교는 어떤 사람들이 갈 수 있나?

아무나 갈 수 없고 제한이 많다. 일단 토대(출신성분)를 본다. 신원확인을 해서 합격된 사람, 과거 특별한 사고에 얽힌 경험이 없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분상 문제가 없다고 증명되거나, 정치지도원이 모범군인으로 추천을 하면 시험을 볼 수 있다. 나이는 23~26살 사이여야 하고, 자연과목이나 문학, 체력시험 같은 시험을 보는데 시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뇌물을 고이는(바치는) 것이 있어야 한다. 희망자는 많고 인원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뇌물을)많이 고이는 순서로 합격한다.

-군관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 희망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 하전사는 제대를 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도 농사짓는 것 이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나라에서 기업소로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농촌으로 무리배치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다. 그러나 군관으로 제대를 하게 되면 자기 고향이나 희망하는 시(도시)에 갈 수 있다. 옛날에는 직업(일자리)도 배치해 주었는데 지금은 큰 사람(고위 장교)이 아니면 직업 같은 것은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나도 그것 때문에 군관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해당지역에) 배치를 받아도 나라에서 직업도 안 주고 배급도 없기 때문에 군관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나도 OO시에 있는 기업소에 지도원으로 배치를 받았지만, 배급과 노임이 없어서 출근도 하지 않았다.

군관(장교) 월급 2,800원, “두부 한 모에 술 한 두병이면 끝나”

-근무는 어디에서 몇 년간 했나?

평양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부대에서 군관으로 근무했다. 제대할 당시 내 계급은 상위였다.

-군관으로 근무를 하면 보통 봉급은 얼마인가?

2008년도 현재 수준으로, 상위는 (조선 돈으로)한 달에 2,800원을 받는다. 소위는 2,300원, 중위는 2,500원, 대위는 3,000원을 받는다. 월급은 적지만 그래도 군대에서는 배급이 나오니까 먹고 살기는 괜찮다.

-한 달에 2,800원을 받으면 주로 어떻게 사용하나?

봉급으로 쓸 것이 뭐가 있겠나? 봉급을 받으면 동무들하고 두부 한 모에 술 한 두병 마시면 모두 다 나간다. 봉급은 그냥 술이나 한 잔 하라고 받는 돈이다.

-일반 군부대의 물자공급 상황은 어떤가?

한심하다. 피복, 신발 뭐 할 것 없이 공급이 잘 안 된다. 내 기억에는 2005년 이후로 공급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최근 2년 내에는 거의 공급이 없었던 것 같다. 한심할 뿐이다.

-군부대에 식량배급은 잘되는 편인가?

우리 부대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병사 기준으로 한 끼 강냉이 230g이 나오는데 이것을 쌀로 만들면 200g이 조금 못 된다. 반찬은 염장무 조각 3~4개 정도, 배추소금국 정도가 나온다. 군관은 입쌀과 강냉이가 5:5로 나오고 나머지는 같다. 그래서 군인들 중에 허약자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부대에 있을 때 허약자가 많이 있었나?

내가 부대에 있을 때 한 개 중대 120명 기준으로 볼 때 30~40명은 허약자라고 보면 된다. 영양실조인 셈이다. 부대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도 뼈에 가죽만 남아있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질병을 만나서 죽는 사람은 많다. 작년에 평양에 수해가 나서 올해 배급량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허약자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군부대 내의 전기사정은 어떤가?

그래도 군부대는 전기를 잘 주는 편이다. 대충 하루 24시간 중에 18시간 정도는 들어왔던 것 같다. 우리 부대는 평양 시내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늘 전기가 들어온다. 올해는 평양의 전기 상황이 좋아서 군대도 예년에 비해 전기 사정이 좋았다.

-내무반 내의 시설은 어떤가?

개인이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사물함이 있는 정도다. 우리 부대는 올해 초에 텔레비(TV)와 DVD가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예전에는 알판(CD)을 넣는 것이 아니라 테이프가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최근에 알판용으로 교체를 했다. 주로 교육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DVD는 전부 중국제품이다. 그 외에 물을 마실 수 있는 거치대가 있고… 뭐 그렇다.

먹고 살기 힘드니 군인도 악만 남아, 병사들 통제도 힘들어

-군대 내의 일상생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6시에 기상을 해서 청소를 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면 8시부터 정치교육을 받고 훈련에 들어간다. 식사를 못하는 날도 훈련은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12시부터 점심시간인데 2시까지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일과를 진행한다. 오후 5시까지 기본 훈련을 진행한다. 이 때 작업을 나가는 경우도 많다. 일과가 모두 끝나면 저녁 시간에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9시에 취침을 한다.

-군대 내에서 사건 사고는 많은가?

군대 안에서야 사고가 일어날 것이 많지 않고, 군인들이 사회 사람들을 상대로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 때문에 교양을 쎄게(심하게) 하지만 효과가 거의 없다. 배급이 충분해야 도둑질을 안 하지….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다가 잡히면 예전에는 모두 생활제대를 시켰는데 요즘은 특별히 심한 경우에 한해서만 그렇게 한다. 예전처럼 생활제대를 시키다가는 군인들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지난 2000년부터 의무복무제가 실시되었는데 의무복무제를 실시한 후 규율을 세우기도 더 힘들어 졌다.

-구타는 많은가? 내무반 안에서 구타가 있나?

당연히 많다. 최근에도 구타가 문제가 되어 특별히 교양을 한 적이 있다. 구타는 구대원(선임병)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것이 기본이지만, 가끔씩 신입병사(후임병)들이 구대원을 구타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구타라기보다는 싸움질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다.
구타가 일어나는 원인은 가지각색이다. 작고 사소한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예전보다 구타가 더 많아졌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 군대도 악만 남아서, 예전처럼 군관들이 병사들을 통제하기도 쉽지가 않다.

-군대 내에서의 비리는 어떤가?

군대 내에서의 비리야 일상적인 것이니 특별히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계급을 이용한 비리가 많은데 아마 나도 돈만 좀 있었으면 몇 달 안에 별을 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실력이 좋고 진급성적이 좋더라도 돈이 없으면 진급을 하기가 쉽지 않고, 실력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진급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걸려서 생활제대를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경 연선의 군관으로 가면 돈을 적지 않게 번다는 말이 있던데?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평양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특별히 평양에서 근무를 할 것이 아니라면, 국경 연선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많이 늘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직장 배치도 어렵고 직장 배치를 받아도 월급이나 배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군관을 하다가 제대 되더라도 국가에서 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군대에 있을 때 한 몫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희망을 한다. 위험하지만, 제일 쉽게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이 연선이기 때문이다.
나도 13년 동안 근무를 했는데 나올 때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겨우 직장이라고 배치를 받은 곳도 배급도 나오지 않는 곳이다. 국경 연선에 군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돈이 필요하다. 연선 쪽 군관들은 민가를 돌면서 ‘혹시 밀수 할 것이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하면서 밀수를 시켜주는 대가로 돈을 번다고 들었다.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군인들도 사회에 대한 불만 많아,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과거에 비해 군인들도 불만이 많은 편인가?

불만이 많다.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관의 입장에서도 이런 저런 불만들이 많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에 들어온 군인들은 돈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통솔하기도 쉽지 않다. ‘총폭탄’ 정신도 다 옛날 얘기다. 그들은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총폭탄’ 정신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 돈맛을 알고 장사 맛을 들인 그들에게 ‘총폭탄’ 정신을 이야기 하는데 그게 먹히겠나? 백성들이고 군인들이고 불만이 많은 것은 똑같다.

-군관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나?

군대에서는 2명 이상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한다. 군관들도 마찬가지다. 2명 이상이 만나면 국가 욕을 할 것이 뻔하니까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술도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 특히 내 얘기가 어떻게 위로 들어갈지 모르니까 애지간해서는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주로 어떤 내용으로 군인들을 교양하나?

군관들에게는 외국에서 비료나 식량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미사일이 무서워서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교양을 한다. 우리가 ‘선군노선’을 강조하며 힘을 키우니까 쌀이라도 줘서 얼리려고(달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병사들에게도 교양 내용은 비슷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얘기뿐이고 특이한 것은 없다.

-최근 김정일의 와병설에 대해서 알고 있나? 군관의 입장에서 느낌은 어떤가?

내가 중국으로 나온 뒤에 생긴 일이다. 나는 여기서 TV를 보고 알았는데 조선에 있는 동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군관들이야 이런 느낌을 갖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럴거면 차라리 자리를 빨리 내놓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와서 TV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 계획인가?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친척을 찾아서 만난 다음 토의를 해봐야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박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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