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중병설(重病說)까지 곁들인 또 한 차례의 대미(對美) ‘벼랑 끝 외교’(brinkmanship diplomacy)를 성사시켜 순진한(?)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라는 대어(大魚)를 낚아올린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이제는 승세(勝勢)를 몰아 창끝을 남쪽으로 돌려 남쪽의 ‘친북’ 세력과 손을 잡고 이명박(李明博) 정부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하늘에다 주먹질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10.4 선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북에 대한 정면 대결 선언”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호응하여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통일부장관이었던 이재정(李在禎) 전 성공회 신부는 “<10.4 선언>이 현 정부에 의해 거의 사문화(死文化)되었다”고 맞장구를 친 것으로 보도되었다.
지금 이른바 <10.4 선언>이 “사문화되었다”는 이재정 씨의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건이 “현 정부에 의해 사문화되었다”는 그의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왜냐 하면 이 문건이 ‘사문화’된 것은 이 문건에 담겨진 실현 불가능한 내용 때문이고 따라서 이를 ‘사문화’시킨 쪽은 ‘현 정부’가 아니라 이 부실문건을 만들어낸 노무현 정권 쪽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처럼 김해로부터 ‘와룡(臥龍) 선생 상경(上京)’을 연출한 노 대통령도 이재정 씨와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었다.
즉 “현 정부가 <10.4 선언>을 부도수표로 만들었다”고 비난한 것이다.
이 역시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10.4 선언>은 지금 ‘부도수표’가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0.4 선언>이 ‘부도수표’가 된 것은 발행될 때 이미 ‘불량수표’였기 때문이지 ‘현 정부’가 ‘진성’ 어음을 ‘불량’ 어음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에 대하여 노무현 씨나, 이재정 씨는 스스로 ‘불량’ 어음을 발행한 ‘경제사범’으로 자수(自首)하여 광명(光明)을 찾아야 마땅하지 문제의 ‘불량’ 어음을 결제하지 않은 ‘현 정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재개하여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 선언>, <10.4 선언> 등 그 동안 남북이 이룩한 모든 합의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그 구체적 실행방안을 성실하게 마련하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말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왜냐 하면, 특히 <10.4 선언>의 경우, 이 문건에는, 특히 남북간 경제협력에 관하여,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행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합의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이 대통령은 가장 합리적인 처리 원칙을 밝혀 놓은 바 있다.
‘남북경협 3대원칙’이 그것이다. 즉 <10.4 선언>과 이의 후속 합의문건인 <11.16 합의서>에 담겨진 방만한 경제관계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① 북핵 문제의 해결, ② 경제적 타당성, ③ 재정부담 능력, ④ 국민적 합의 등 4개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여 ① 당장 이행 가능한 것, ② 차후 이행 가능한 것, ③ 이행 불가능 한 것 등 세가지 부류로 구분하여 추진하자는 것이다.
만약, 북한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면 북한은 당연히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입장을 수용해야 하는 것인지 덮어놓고 "10.4선언을 시비하다 못해 북남 수뇌상봉에 대해서까지 험담하는 것은 하늘에 대고 주먹질하는 격의 무엄한 망동으로 추호도 용납될 수 없다"고 트집을 잡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하늘에다 주먹질하는 어리석은 망발(妄發)”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10.4 선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 내용은 <6.15 선언>에 관한 것이다.
2000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대중(金大中) 씨가 5억 달러 이상의 ‘검은 돈’을 김정일(金正日)에게 온갖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뇌물로 상납(上納)하고 이를 대가(代價)로 하여 김정일과 만들어 낸 합의문건인 <6.15 선언>은 우선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ㆍ유린하는 제2항 때문에, 이 조항을 그대로 두고는, 도저히 이행될 수 없는 위헌문건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통일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공산당의 존재를 불법화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15 선언>은 ‘공산국가’인 북한과 대한민국 사이의 ‘연방제’ 구성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6.15 선언> 역시 문제의 제2항과 함께 제1항을 수정하지 않는 한 이행이 불가능한 불법ㆍ부실 문건이다.
이 대통령도 과거에 만들어진 모든 합의문건들의 ‘정신’의 ‘존중’을 다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도 당연히 이 대통령의 그 같은 입장을 수용하고 대화의 석상에 나와서 과거에 타결된 합의문건들, 특히 <6.15 선언>과 <10.4 선언>의 내용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놓고 남측과 성실한 대화를 가짐으로써 문제가 있는 내용들을 가려내어 필요한 수정을 가함으로써 이들 합의문건들이 원만하게 이행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지금처럼 삿대질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더구나, 과거 김대중ㆍ노무현 씨를 지지했던 ‘친북ㆍ좌파’ 세력도 남쪽의 현 정부를 상대로 시비할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북한에게 사리(事理)를 일러주어서 문제 해결의 정도(正道)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듯 하다.(konas)
李東馥(전 명지대 초빙교수/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http://www.dblee2000.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