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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書堂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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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풍속도첩 25점에 들어 있는 < 書堂 >


단원 김홍도의  <書堂>에 관한 견해.

김홍도의 회화사적 비중을 한결 높여주고 있는 분야는 풍속화이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광경을 간략하면서도 짜임새있는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과 더불어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했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나란히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당시 속화체(俗畵體)로도 불렸던 그의 풍속화풍은 현실적인 소재를 소박한 생활정서와 풍류적 감성이 가미된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창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안견(安堅)·정선·장승업(張承業)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이 서당이란 작품에서 맨 먼저 느껴지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서민적이다' 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수 있을 것 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김홍도가 살았던 그 당시에는 산천이나 대쪽같은 선비들을 그리는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왕이었던 정조가 평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궁밖의 김홍도에게 시켜 이러한 풍속도를 그리게 했다고 합니다.

 

  김홍도[1745(영조 21)~? 1810년경 이지만 불확실함,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의 풍속화가 더 유명한것은 서민들의 생활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회초리로 맞는 소년이나 그뒤에 웃는 동무들이나 웃음을 참는듯한 서당훈장의 모습은 너무나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이 작품 하나 만으로도 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한눈에 생각이 날 정도로 정겨운 느낌과 향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민화의 특징이고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당에서 공부하는 소년들은 모두 대갓집자제같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정황이 기층민에대한 상층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것을 뜻하며  기층민들의 신분상승을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서당에 평민으로 보이는 소년과 양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함께 줌으로써 양반과 평민이 함께 공부함으로써 그들이 배움에 있어 차등을 두지 않는다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이 김홍도가 '서당'을 그린 시대가 조선후기로 알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천민이 아닌 평민들은 글을 배우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그 당시를 생각하면 농민의 자식들이 글을 배우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조선 후기가 실학이 등장 발전했던 시기지 지배적이진 않았습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훨신 이후에 근대화가 조금씩 이뤄지면서 양반과 평민이 같이 공부하게 되는 상황이 조금씩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황을 볼때,  김홍도가 이 '서당'이라는 작품을 내면서 말하고자 했던것은 당시의 생활을 실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경제력이 있는 평민들이 서당에서 공부하는 그런 소수의 모습이 아닌 모두가 함께 공부하고 평등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마음을
이 '서당' 이란 작품을 통해서 해학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 내지 않았을까 하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보물 제 527 호)

  이 화첩에는 〈서당〉·〈밭갈이〉·〈활쏘기〉·〈씨름〉·〈행상〉·〈무동〉·〈기와이기〉·〈대장간〉·〈나늘이〉·〈시주〉·〈나루터〉·〈주막〉·〈고누놀이〉·〈빨래터〉·〈우물가〉·〈담배썰기〉·〈자리짜기〉·〈벼타작〉·〈그림감상〉·〈길쌈〉·〈말징박기〉·〈고기잡이〉·〈신행길〉·〈점심〉·〈장터길〉 등 당시 풍속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예리한 관찰이 돋보이는 작품 25점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완전히 생략 처리된 배경은 감상자로 하여금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 하나 하나에 보다 집중하게 함으로서, 각각의 주제를 군더더기 없이 간명히 드러나게 한다.

이렇게 배경이 생략된 화면에서도 작가는 인물들 사이의 적절한 공간배치를 통해 충분한 공간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상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다소 투박한 필선은 등장인물들의 옷 주름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고, 간략한 몇 번의 붓질만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표정은 각자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전반적으로 밝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력으로 볼 때, 이 화첩은 김홍도의 40대 무렵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같은 풍속화풍은 화원(?員)들의 정형을 이루면서 김득신(金得臣)·김양기(金良驥)·김후신(金厚臣) 등의 후대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 서민을 소재로 한 풍속화는 왕실과 사대부의 입장과 취향에서 그려지던 것으로 교화나 구휼의 대상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형사적(形似的) 전신론(傳神論)에 따른 창작태도의 변화와 실제적 체험을 통해 나타내는 사실적이고 현세적인 취향의 풍속화들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건강하고 힘차며 익살스럽게 표현된 등장인물들과 각 계층의 생업장면, 놀이장면 등 서민생활의 이모저모가 생동감 넘치게 처리된 이들 작품은 18세기 후반의 변화된 창작경향 속에서 탄생될 수 있었다.

단원풍속도첩은 작가 김홍도의 예리한 시각에서 포착된 당시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 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화첩 수록된 일부 작품에 대해서는 진위문제가 제기되어 있어 좀더 세밀한 분석 연구가 요망된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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