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내고향 영동(永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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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영동(永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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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읍을 관통하는 경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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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둥근 돔형의 건물이 영동역(驛). 위로 긴 건물 : 영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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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邑 외곽을 지나는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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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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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건물이 영동읍 사무소로 신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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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군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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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있는 충혼탑 부근.
이곳은 절벽인데다 수목이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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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995 _ 고려 성종(成宗) 14년, 계주자사(稽州刺史)를 두었음
1018 _ 현종(顯宗) 9년, 경상도 상주(尙州)에 소속하였음

1172 _

명종(明宗) 2년, 감무(監務)를 두었고, 동(同) 6년(1176)에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다가 다시 감무를 두었고 뒤에 폐지하였음
1413 _
조선 태종(太宗) 13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속시키고 현감(縣監)을 두었음. 이때 용화(龍化)가 이속


1895.05.26 _
고종(高宗) 32년, 칙령(勅令) 제98호로 영동군(永同郡)이라 칭하고 군내(郡內), 군동(郡東),남일(南一), 남이(南二), 서일(西一), 서이(西二), 북일(北一), 북이(北二), 양내(陽內), 양남일소(陽南一所), 양남이소(陽南二所), 용화(龍化)의 12개면을 관할하였음
1914.03.01 _
부령(府令) 제111호(1913. 12. 29 공포) 부 · 군 · 면(府 · 郡 · 面)폐합령에 의하여 황간군(黃澗郡), 옥천군(沃川郡) 및 경상도 상주군(尙州郡) 일부를 합병하여 영동(永同), 용산(龍山), 심천(深川), 양강(楊江), 양산(陽山), 용화(龍化), 학산(鶴山), 황간(黃澗), 매곡(梅谷), 상촌(上村), 황금(黃金)의 11개면으로 개편하였음


1940.11.01 _
부령(府令) 제221호에 의해 영동면(永同面)이 읍(邑)으로 승격, 1읍 10면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음
1961.10.01 _
법률 제707호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하여 읍면 자치제가 폐지되고 군(郡)이 기초적 지방자치단체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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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31 _
법률 제4310호 지방자치법에 의하여 기초(군) 자치제 실시
(91. 3. 26 의회 의원선거, 4.15 의회개원)
1991.07.01 _ 군 조례1332호로 황금면을 추풍령면으로 명칭변경
1995.07.01 _
법률 제4739호 공직선서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의하여 지방자체 단체장 선거실시
(95. 6. 27. 군수.의회의원선거. 7.1초대민선 군수취임 제2대 의회개원)

8 Comments
함박웃음 2006.01.06 19:31  
영동도 많이 변했군요. 파비노님은 영동의 홍보대사이신가 봅니다. 교통의 요지인데 인구는 얼마나 늘었는지 모르겠군요.
푸른깃발 2006.01.06 19:45  
영동 추억이 있는 도시입니다. "영동 설계리 농요" 한국도자기 부회장으로 계시는 김은수 씨가 충북 예총회장을 지내실 때( 72년) 교대 박진교수가 작품을 정리하여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아지요 ㅎㅎ 곁에 나도 한목 거들고요ㅎㅎ
fabiano 2006.01.07 08:57  
영동에서 높은곳이 충혼탑이 있는 곳인데 절벽인데다 나무가 꽉차서 시내 전경을 찍을 수가 없어서인지 영동 전경 사진을 발견 못했는데 제가 현대아파트 15층에 가서 찍었습니다. 1280모드로 찍었지만 이 게시물에서는 원본 크기가 안되네요.시정해야 할 사항입니다. 한때 9만여명 까지 늘었는데 지금은 약 5만5천 정도입니다.
fabiano 2006.01.07 09:01  
푸른깃발님께서 그런 추억이 있었군요. 가만히 보면 영동에서는 藝에 관련된 인물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藝鄕의 고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습니다.
함박웃음 2006.01.07 09:14  
충북의 도시하면 떠 오르던 곳인데 많이 줄었다니 안타깝습니다. 지방에도 직장이 많아야 하는데 참, 문제입니다.
mulim1672 2006.01.10 00:57  
영동이 많이 변해 이따금 들르면 어리둥절합니다. 영동고 뒤쪽 조심동 너머로 공설운동장이 생기고 새로운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더군요. 저는 1964. 3월에서 67.2월까지 3년간 고등학교 다니느라 적을 두었지요. 그 때 잘 대해주던 철길 옆 하숙집도 불로 사라지고...40년이 넘었으니 많이도 변했겠죠...
fabiano 2006.01.10 10:55  
문제는 경제가 너무 침체되었고...이곳에서 번 돈을 타지에 투자하거나,유지급 인사들이 자녀들을 타 대학에 보내고...금융권도 폐쇄되고 혁신도시에도 제외되고....무척 안타까운 맘임다.
mulim1672 2006.01.10 16:57  
저희들 고등학교 재학 때에도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대전 청주 서울로 가 공부를 하였지요. 영동 인구가 자꾸 줄어 걱정입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고향을 지키시는 분들이 분발하시어 영동의 농업 경제를 일르켜야겠지요. 이형! 힘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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