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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대포 한잔

fabiano 0 1253  



젓가락 노래방’ 은 돌고

한 두 잎 남은 은행나무 이파리가 달랑거리고 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하다. 공사판에서 힘들게 벽돌을 지고 나르던 일꾼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퍼질고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다. 길게 내 뿜는 담배 연기에 그들의 고단함이 짙게 빼어 있다. 모두다 말이 귀찮은 듯 한참동안 한마디도 않고 담배만 뻐끔거려 분위기가 썰렁하다 못해 삭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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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공사판은 찬바람이 쫙 깔리면서 을씨년스럽다. “이마에 땀이 마르니 춥다” 으스스한 한기에 땅 바닥에 말없이 퍼질고 않았던 사람들이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서기 시작한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더 어깨가 묵직하다. 별명이 술독인 작업반장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 것 봤나” 날씨도 쌀쌀한데 따끈따끈한 오뎅 국물에다 아주 간단하게 대포 한잔하고 가자고 바람을 잡기 시작한다.

어려웠던 시절 도시의 뒷골목에 어둠이 깔리면 활기가 넘쳤다. 즐비하게 늘어선 선술집에는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려는 사나이들로 꽉 찼다. 곱게 차려 입은 아가씨들의 짙은 분 냄새는 온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풍겨 삶에 지친 뭇 사나이들의 발걸음을 잡아당겼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사연도 만들어 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술 잔에 손은 절로 가고

모두 고된 일을 한터라 배는 출출해 막걸리 주전자는 들어오기 바쁘게 비워졌다.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술잔이 서너 순배 돌고 나면 돈 따라 전국으로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옆에 앉은 술집 종업원을 잡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 어느 놈은 팔자가 좋아 대궐 같은 집에 흰 쌀밥이 지겨운데 이놈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드니 말이다.

내가 문교부 혜택을 입어 일년만 꼬부랑 글을 배웠어도… 저 지독한 감독 놈 밑에서 일하는 악연은 없을 텐데… 내 입은 염라대왕이 허가했다. 내입에서 욕 떨어지면 그 날은 내가 죽는 날이다. 그러니 알아서 기라며 길길이 설치는 저 놈의 독종 밑에서 올 겨울을 지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말끝마다 당신은 하나 시키면 하나 밖에 몰라…머리는 남산만하면서… 오늘 삼뽀 왔나 … 핫바지 바람 들었나 … 게걸음도 아니고 그게 뭐고… 집에서 잠이나 자라… 내일부터 일 나오지 말라 하는 줄 알고 눈앞이 캄캄했다. 주둥아리는 어찌나 매운지 고놈의 집구석은 대대로 땡 고추만 먹고 살았나… 저 놈과 전생에 무슨 원한을 맺었는지 그 놈이 기침만 해도 나는 감기가 들어 콧물이 졸졸 흐르니 말이다. 눈빛만 마주쳐도 주눅이 들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줌을 찔끔거려 사타구니가 축축해져 팬티를 두개 벗어내야 한다.

갑자기 “그래 네 엉덩이 크다 천년만년 해먹어라”며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그리고는 속에 열불이 나는지 막걸리 잔을 단번에 벌컥 벌컥 들이켜기 시작한다. 이 풍진 세상에 별수 있나 힘없는 놈이 참아야지 막걸리 잔에 흐르는 신세타령은 밤이 늦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저놈에게 두 달 시달리고 보니 바다 보다 넓은 이 가슴은 바짝 말라붙어 악만 남았다.

그래 사나이 마음 아픈 데는 술이 약이다. 네가 없다면 많은 사나이들의 가슴이 까맣게 탔을 것이다. 네가 아니면 구중궁궐 보다 더 깊고 깊은 사나이의 닫힌 가슴을 누가 열수 있겠느냐… 처진 어깨는 누가 세울 것이며… 가슴에 맺힌 고리는 또 누가 풀 것이며 술 너야 말로 사나이의 진정한 벗이로다.

괴로워도 한잔 고달파도 한잔 즐거워도 한잔 오늘도 이 술잔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담고 또 떠나보낼 것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선술집으로 찾아든 사나이들의 술판은 밤이 깊어 갈수록 더욱 달아올랐다.

거나하게 무르익은 술판에 젓가락 장단은 빠지지 않았다. 지금 노래방이 있다면 그 시절은 젓가락 노래방이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술집마다 사나이들의 텁텁한 목소리가 창문을 타고 흘렀다. 이 술집 저 술집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 소리는 흥에 흥을 더했다. 한번 불붙은 젓가락 노래방은 지금의 노래방 열기 못지않았다. 흥에 겨워 덩실 덩실 춤을 췄다.

다정했던 선술집 아가씨는 사랑으로 다가오고

젓가락 장단을 타고 흐르는 노래 마디마디 마다 사나이들의 고단함이 물씬 묻어났다. 한 잔 술에 불현듯 떠나온 고향이 그리워 눈물을 주르르 쏟기도 했다. 늦은 일을 마치고 바쁘게 길을 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길을 세우고 그냥 따라 흥얼거렸다.

가을 끝자락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소리 없이 세상을 적시면 선술집의 밤은 더욱 쓸쓸하다. 손님들도 분위기 탓인지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손님 옆에서 분위기를 맞추던 아가씨도 비에 젖는 창문을 바라보며 애절한 육자배기를 깊은 가슴으로 밀어 올렸다. 뱃길 따라 팔 백리 머나먼 외딴섬에서 뭍으로 왔다… 임 찾아 왔나… 돈 찾아 왔나… 오늘 밤도 또 술잔에 지는 구나 … 와서 보면 별것도 아닌데 무엇 하려 왔던갉 머나먼 외딴섬 미치도록 그립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지어 부른 애절한 한마디에 손님들도 가슴이 찡한지 연거푸 막걸리를 들이마셨다. 손님이나 술집 종업원이나 다 타향살이 몸, 별반 다를 게 없는 처지다보니 느끼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우리한번 열심히 일해 잘 살아 봅시다”며 서로를 다독거리며 용기를 북돋웠다.

어려웠던 시절 그들은 선술집에서 그렇게 인생의 고단함을 풀어냈다. 그리고 내일의 힘찬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김수한(56)씨는 총각 때 가끔씩 퇴근길에 선술집을 찾았다. 술값도 비싸지도 않아 부담 없이 한잔 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술도 따라주며 말벗이 되어주는 아가씨도 있었으니 선술집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꽉 찼다. 특히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은 객지생활에 외롭다 보니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는 술집 아가씨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가난이 지긋 지긋해 시골에서 무작정 나와 도시를 헤매다가 그 곳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뭇 남성들의 옆에 앉아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번 돈으로 매달 집으로 동생들의 학비를 보냈다.

어느 날 늦은 퇴근길 가벼운 발걸음으로 선술집을 찾았을 때 그 아가씨는 말없이 떠나고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전해주는 쪽지에는 아저씨 찾지 말라 좋은 인연으로 기억하며 살겠다는 글 두 줄이 전부였다. 너무나 야속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허전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힘없이 돌렸다.

그 뒤로도 퇴근길이면 무엇이 씐 것처럼 발걸음을 당겼다. 그 여인이 있었던 선술집을 바라보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작정 서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혹시나 왔을까 반쯤 열린 선술집의 창문 새로 눈이 빠지게 살피고 또 살폈다. 진한 분 냄새만 풍겨도 얼른 고개를 돌려 살폈다. 꼭 언젠가 그 여인이 나타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루가 가고 열흘이 가고 일년이 흘러도 그 여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다시 찾았을 때 즐비하던 선술집은 흔적도 없었다. 선술집이 뜯기면서 서민들의 고단함을 잊게 했던 젓가락 장단도 끝이었다.

이처럼 그 당시 선술집에는 손님과 아가씨의 진한 감동도 심심찮게 있었다. 또 정만 듬뿍 남겨 놓고 떠나버린 사람으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나이들도 많았다. 인연을 만나러 왔다가 못 만나고 돌아서는 애틋한 그 발걸음은 그 당시 선술집가의 흔한 풍경이었다. 잃어버린 그 사람을 찾아왔다가 돌아서며 눈물 짓던 이야기도 순수했던 그 시절만의 아름다움이었다.

 

경남도민일보 2005년 11월 26일

        
                                                                                                펌글   장병길 부장 bk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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