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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아련한 그리움 싣고 ‘빠른 시대’ 관통하다

fabiano 0 1156  
ㆍ고유가시대 다시 주목받는 기차

흥행질주를 하고 있는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은 열차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만주를 거쳐 대륙으로 달리는 제국 열차가 1930년대 다양한 인종이 뒤엉키고 총칼이 난무하는 무법천지 만주를 응축해 내기 위해 기차라는 공간을 설정했다는 것이 영화 제작사 측의 설명이다. 열차 안에서 ‘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에 대응해 간다. 열차는 그렇다. 세계 곳곳의 땅 위와 땅 아래를 달리는 기차는 시대와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달린다.

18세기 신기술의 총아로 태어났지만 다른 운송 수단에 밀려 지금은 향수를 자극하는 ‘구식’으로 인식됐던 열차. 그 열차가 고유가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미국 2위 철도업체인 버링턴 노던 산타페에 투자를 늘렸고 국내 열차 이용객 수도 요즘 늘어났다.

기차, 시대를 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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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을 떠난 KTX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하차하고 있다. 사람들의 손에는 어떤 짐이, 가슴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남호진기자>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30일 부산 기관차 승무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전재경씨(59)와 전화를 통해 만났다. “1974년에 처음엔 검수원으로 시작했어요. 철도 차량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수리하는 정비일이죠. 그러다 78년에 기관차 운전을 시작했죠.” 이렇게 그와 열차가 함께한 지도 30년이 넘는다. 지난 해엔 정년퇴직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 여전히 기관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와 철도의 인연은 아버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시 30여년 동안 철도 기관사로 일했던 아버지 전광하씨의 뒤를 따라 기관사가 됐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들 부자의 주요 루트는 경부선. 철도 초기 증기기관차에서부터 60년대 말 등장한 신형 디젤엔진 기관차, 전기를 이용한 고속철까지 2대에 걸쳐 역사와 함께 철도를 경험했다. 부자의 기관차는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 시대를 싣고 달린 셈이다.

우리나라 철도의 시작은 1899년 일제에 의해서였다.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33.2㎞에 경인선 철도가 놓였고 경부선(1901년), 경의선(1906년), 호남선(1913년), 경원선(1913년)이 차례로 연결된다. 근대 문명을 접한 당시 조선사람들의 감정은 놀라움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최남선은 ‘경부철도가’에서 “우렁탸게 토하난 긔뎍(汽笛) 소리에 / 남대문을 등디고 떠나 나가서 / 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 / 날개 가딘 새라도 못 따르겟네”라고 적었다. 시속 30㎞의 속도였지만 새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느껴졌나보다. 이후 60~70년대 철도는 강원도의 석탄과 석회석을 실어나르는 등 산업화의 선봉에 섰다. 중국, 러시아 등 대륙 강대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정치적, 군사적인 목적의 건설이었지만 물류와 정보가 교류하는 가장 큰 길이 철도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60~70년대 철도는 강원도의 석탄과 석회석을 실어 날랐다.

2004년 고속철이 처음으로 운행되면서 시속 300㎞로 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전국이 3시간 생활권에 접어들었다.

빠른 속도 때문에 추억은 아련해졌다. 전씨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석탄을 때는 열차 운전엔 낭만이 있었다”라며 에피소드를 꺼내놓는다. “지금과 같은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에어컨도 없는 열차가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그 안에서 운전하면 땀이 비오듯 했지요. 창문을 열어놓고 참고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기관사들은 바지까지 벗고 운전했다고 합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승객이야 속도가 빨라진 게 좋겠지만 낭만은 줄었지요.”

그러면서도 전씨는 “기차는 여전히 현재를 싣고 달린다”고 말한다. “가장 보람있을 때가 설, 추석 등 명절에 귀향객 태우는 일입니다. 다른 교통수단으로도 많이들 움직이겠지만 여전히 기차를 이용하잖아요.” 기차의 인기가 식지 않는 것은 아련한 향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현재를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란 얘기였다.

그림자도 함께 달린다

근대를 열어젖힌 철도의 이면엔 그림자도 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 2004년 ‘한국 근현대사와 철도사’라는 글에서 “1899년 경인선 개통으로 막을 연 철도시대는 일본과 러시아 등 강대국의 수탈과 대륙 진출 목적으로 시작됐다”며 “이후 남북분단으로 한국 철도는 반신불수로 전락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씨도 ‘아버지에게 들은 사연’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열차를 운전했다가 전쟁이 일어나 열차를 버리고 피란민과 함께 부산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고 소개했다. 이후 남북간 철도는 끊겼고 부산에서 서울, 신의주까지도 달리던 열차는 멈추어서게 된다. 시작부터 식민지의 아픔을 담았던 우리나라 철도사에는 식민지 민족의 수난사와 전쟁을 거친 분단의 상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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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도 기차가 싣고 달리는 굴곡은 여전하다. KTX 속도혁명의 이면엔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절규가 있다.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당초 신규인력으로 정식 채용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외주업체에 위탁을 맡기는 비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이를 거부한 승무원들은 모두 정리됐다. 2006년 3월부터 이들은 외주위탁·불법파견 철회, 해고자 복귀 등을 요구하며 투쟁에 들어간다. 같은 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성별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에 해당한다며 철도공사에 고용구조 개선을 권고했고 지난해 12월 철도공사와 철도노조가 공사의 직접 고용형태로 이들의 복직에 합의했다고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2년이 넘는 동안 외로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인의 발’이라는 지하철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발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리는 지하철 역에선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데다 수직 리프트의 경우엔 정확한 안전 규정도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장애인이 추락하는 참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 따르면 2007년 말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가 운행하는 144개 역사 가운데 66개 역사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미설치 비율이 43%에 이르렀다. 박해수 간사는 “98년 이전에 만들어진 역사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거, 법 시행 7년 이내로 편의시설을 정비해야 하는 정비대상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시행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런 승강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역이 있기도 하다”며 “엘리베이터, 휠체어 리프트 등의 승강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역사일지라도 시설이 노후하여 고장이 잦고 위험해도 교체나 정비를 미루고 있는 역사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열차를 논하다

100년 넘게 지속해오고 있는 열차지만 속도 측면에서라면 기차는 자동차와 비행기 등에 밀려난 지 오래다. 그렇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2위 철도사 버링턴 노던 산타페 지분을 확대하고, 4위인 노포크 서던 주식도 사들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21세기에 근대의 상징인 기차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버핏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고유가로 인해 다른 운송수단이 원료값 상승으로 줄줄이 타격을 입었지만 철도는 물류운송 수요 자체는 줄었다고 하더라도 트럭, 비행기 등에 비해 운임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는 호전되고 있는 실적을 바탕으로 철도 노선을 신설하고 신형 열차를 구입하는 등 투자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나 유럽, 중국, 인도, 남미 각 국가도 철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료 수입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에서 고유가 영향은 더욱 크다. 새마을, KTX 등 기차와 광역전철을 운행하는 코레일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지난 4월에서 6월 사이 광역전철 이용객이 크게 늘어 5월 이용객수는 8179만9000명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는 전년대비 3.2%가량 증가한 수치다. 기차 이용객도 6월 한달간 900만7164명을 기록하며 최근 7년 동안 최고를 기록했고 KTX도 개통 이래 가장 많은 301만4677명이 이용했다.

지하철의 경우엔 출퇴근 시간대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 메트로에 따르면 지난 6월 오전 7~9시까지 출근시간대 하루 평균 이용승객이 약 122만50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3만1000명이 증가했다. 퇴근시간 이용객도 비슷한 수준으로 늘었다.

승객뿐 아니라 물류 수송에서도 기차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기차를 통한 ‘유(油)테크’다. 한 기업이 부산항에서 수도권까지 20~40피트 컨테이너를 화물로 운송할 경우 52만~57만원가량의 운송비가 들어간다. 그러나 철도를 이용하면 28만~39만원이면 운송비가 해결된다. 많은 양의 컨테이너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철도화물 수송실적은 전년에 비해 4.4%가량 증가해 1478만t(1~4월)을 기록했다. 평균적으로 경유 가격의 평균 증감률이 1.03%포인트 증가하면 철도화물의 수송량은 비슷한 수준인 1.01% 증가하는 것으로 코레일 물류수송팀은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철도는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2005년 자료에 따르면 1t의 화물을 1㎞ 수송할 경우를 기준으로 수송수단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자동차 178g, 항공기 1483g, 선박 40g, 철도 21g순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분단 국가로 사는 우리에게 철도는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경의선과 동해선이 시범운행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분단 57년 만의 시범운행은 우선 남북의 혈맥을 잇는다는 평화적 의미를 갖는다. 정재정 교수는 남북철도 운행 당시 “이제는 100년 전처럼 철도가 침략의 수단이 된다든지 군사병참로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라며 “서로 공존공영하는 평화의 루트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제의했다.

철도를 바탕으로 TKR-TSR(남북종단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 등을 연결해 대륙으로 뻗어나가며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읽을 수 있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1세기는 20세기와는 달리 농산물, 원자재, 석유, 가스 등을 중심으로 한 원시적 자원 경제에 의존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고 자원의 공급지가 곧 거대한 시장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철도를 통해서 가능하고 현재 대륙철도 연결 사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긴 하지만 시간이 걸리거나 불협화음이 있다고 해도 꼭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또 “현재 우리 정부의 대북 관계,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 사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만약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가들이 북한의 조건을 자국이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지선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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