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25] 경부고속도로 건설
fabiano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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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2008.08.06 02:04
- "하면 된다" 밀어붙인 국토 대(大)동맥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25] 경부고속도로 건설
- ▲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보도한 1970년 7월 8일자 조선일보.
1964년 서독을 방문했던 박정희에게 충격을 준 것은 확 트인 아우토반이었다. 귀국 뒤에도 틈만 나면 종이 위에 도로망을 낙서하던 그는, 1967년 대선 공약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내놓았다. 고속도로? 그런 말조차 생소하던 한국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일어났다. "부유층의 유람로를 만들려느냐." "1인당 GNP 142달러인 나라에서 그게 왜 필요하냐." 박정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공식 석 달 전부터 예산 한 푼 없이 육군 공병단을 투입, 서울~오산 구간의 건설에 들어갔던 것이다.
노선, 공정 계획, 추진 방식을 모두 대통령이 결정했다. 상공부장관 김정렴은 훗날 "대통령이 마치 전쟁처럼 직접 '전투 병사들'을 지휘했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은 공식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카이저 지프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장 어려운 대전~대구 구간 중에서도 당재터널(현 옥천터널)은 지형적으로 험난한 '마(魔)의 구간'이어서 숱한 고초를 겪었다. 2년 5개월의 공사기간 동안 77명이 순직했다.
- ▲ 1970년 7월 7일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왼쪽)와 1968년 7월 9일 공사현장을 시찰하며 지시를 내리는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한국도로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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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물. 차례대로 1967년 11월의 '건설의 메아리', 1969년 1월의 '건설의 메아리', 1969년 5월의 '우리는 건설한다', 1970년 7월의 '경부고속도로 준공'. /유석재 기자
입력 : 2008.07.11 03:05 / 수정 : 2008.07.11 0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