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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 체결 55주년을 맞이하여

fabiano 0 1157  
튼튼한 안보의식으로 무장해야

 금년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55주년이 되는 해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불법 기습 남침으로 인해 평화로웠던 이 땅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전개되었고 우리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피해와 함께 심대한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전쟁이 장기회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희생을 치를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해져 갔다. 공산군 측 역시 한반도 적화통일이 어렵게 된 데다 승산 없는 전쟁에 대한 과중한 부담으로 인해 휴전회담 타결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리하여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한국민의 열화와 같은 휴전 반대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소련·중국에 의해 휴전회담이 주도되어 갔다. 1951년 7월 8일 양측은 개성에서 예비회담을 시작한데 이어 9월 6일 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 이후 2년여 동안 1000시간에 가까운 지루한 회담이 계속되었다.

 6월 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휴전이 성립된 후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과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양측 휴전회담 대표는 제159차 본회의장에 입장한 후 서로 인사나 악수도 교환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18통의 각 협정문서에 사무적인 서명을 했다. 양측 대표가 협정문서에 서명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1분이었다.

 이로써 3년 1개월 2일의 한국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이날 밤 10시가 되자 한반도 전역에서 포성이 멎으면서 한국전쟁은 평화도, 승리도 없는 미해결의 장(章)으로 매듭지어진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제2의 38선인 휴전선으로 인해 국토와 민족분단의 비운을 다시 한번 맞게 되었고 나아가 한반도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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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전 협정에 조인하고 있는 유엔군 대표 해리슨 중장(左)과 남일(右) 인민군 대표(1953. 7. 27)

 한·미 군사동맹과 대한민국의 발전

 휴전협정 후 한·미 양국은 한반도 전쟁억지와 군사협력을 위해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약소국인 우리나라가 미국과 방위조약을 맺는 큰 성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조약은 지금까지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유지·관리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한국 안보태세의 초석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만약 이러한 강력한 한·미동맹 체제가 없었더라면 한반도에 구축된 준평화체제는 북한의 제2의 6·25도발에 의해 무너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조국통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휴전을 하고 말았지만 미국으로부터 전력증강과 경제원조를 받아냄으로써 우리가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고 국가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난 55년간 튼튼한 안보태세가 유지되고 경제건설과 정치 발전이 이룩된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한 한·미 군사동맹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할 수 있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전하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와 평화는 '이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가치'임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한·미 군사동맹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최강의 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튼튼한 안보의식으로 무장해야

 6·25는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을 가져다준 북한에 의한 남침전쟁이며 오늘날 민족의 번영을 가로막아 온 역사의 장애물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6·25에 대해 전쟁의 진실을 은폐하면서 소위 북침설을 날조하여 이를 대남 심리전에서의 단골 메뉴로 삼아오고 있다.

 1994년 러시아는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김일성이 남침계획을 담은 300여 종의 문서를 넘겨주었다. 이 문서들의 요지는 "6·25는 김일성이가 주도면밀하게 수립한 계획을 소련과 중국이 승인하였으며 북한은 양국의 승인과 무기 및 장비 지원 하에 남한에 대한 기습남침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진실이 이러하므로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터무니없는 북침설을 조작하지 말고 진실한 자세로 대한민국에게 용서를 빌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재도 남북한 간은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200만에 가까운 대군이 24시간 총성 없는 대치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안보불감증이 만연해 있고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전후세대는 대부분 6·25 당시의 북한의 만행과 죄악상을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고 감상적 민족주의에 의한 통일 우선론에 젖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시급히 바로 잡기 위해서 기성세대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기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들에게 6·25의 진실에 대해 설명해 줌으로써 굳건한 안보의식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휴전 5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군 장병들은 한국전쟁이 아직 완전한 종전이 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확고한 대적관으로 정신무장을 강화하여 국토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신성한 사명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한 각오를 굳게 다짐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konas)

 이종구(성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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