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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사형장 76년 만에 확인돼

fabiano 6 1283  
SBS 스페셜, "윤봉길은 이렇게 총살됐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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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 의사의 사형직전으로 보여지는 사진. 이마에 찍힌 점은 사형전에 총상을 위장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양재동에 위치한 윤 의사 기념관에 소장된 사진임

 지난 1932년 4월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기념식이 열린 천장절 행사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상해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등을 제거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일본에서의 사형 집행 장소가 윤 의사 의거 76년만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SBS 스페셜은 15일 저녁 11시20분 윤봉길 의사 탄생 100주년(6월22일) 기념일을 앞두고 탐사 제작한 '일본군의 처절한 복수 - 윤봉길 이렇게 총살됐다'를 현지 사형장소를 비롯한 당시 윤 의사 의거를 최초로 세계적 특종 보도한 아사히 신문사를 비롯한 사형 집행 후 유해를 암매장했던 지역 등을 찾아 취재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현재까지 알려진 의거 후 일경에 체포돼 이끌려 나오는 윤 의사 사진을 두고 논란이 증폭되어왔는데, 보도에는 '25살에서 26살의 양복 입은 청년'이었으나 호외 사진 속의 인물은 '스프링 코트'의 남자임을 지적, 아사히 신문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체포 사진'에 잘못이 있음을 시인 받기도 했다.

 이 날 방송에서는 윤 의사의 사형 집행지를 정확하게 밝혀내 그동안 일본이 일급비밀로 극비에 붙였던 사형집행장소를 확인하고 총살에 사용된 실탄까지 확인하는 등 윤 의사 탄생 100주년 앞두고 큰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방위성의 '윤봉길 사형 전말 보고서'는 윤 의사를 상해에서 일본으로 이송해 사형시킨 후 매장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문서이지만 정확한 사형장소와 매장지는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 윤 의사의 사형집행과 매장지 등을 극비에 붙여온 것은 윤 의사의 배후에 또 다른 독립운동이 뒤따를 것으로 추측했을 뿐 아니라 일본인들의 패배의식을 더 이상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윤 의사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는 일본인 르뽀 작가 야마구치 씨의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이 날 방송에서 야마구치 씨는 일본이 윤 의사를 군법에 회부해서 총살형에 처한 것은 문제 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는 군인도 아니고 당시 홍구공원은 군 작전지역도 아닌 곳인데 군법에 회부해 총살한 것은 다분히 윤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한 행위"라고 당시 일본의 처사를 비판했다.

 또 다른 일본인도 "윤 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애국자이고 레지스탕스(저항자)"라고 말했다.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완전무장한 군·경이 이중 삼중으로 경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뚫고 들어간 것은 특공작전이지 테러가 아니다"고 일본 내 일각에서 윤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일축했다.

 이들 취재팀은 위성 등 첨단 방법을 동원하고, 당시의 지도와 문서 등을 통해 정확한 사형 집행 장소를 찾는데 성공했는데, 사형집행장소는 당시 일본 육군 9사단이 위치하고 현재는 일본군 자위대의 훈련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가나자와시의 윤군 작업장으로 산 대나무 등이 무성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계곡으로 형 집행 후 무려 76년 만에 확인되었다.

 또 윤 의사의 총살형도 사진 상으로는 한발로 집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당시 사형장 주변에 있었던 제일 교포 1세는 그 당시 한 발이 아닌 굉장히 많은 총성이 들린 것으로 증언했다. 당시 일본 북극 신문의 오토 기자는 일본군이 사형 집행을 감추기 위해 적어도 10발의 실탄과 30여 발의 공포탄을 쏴 윤 의사의 사형 집행을 연습으로 위장했다고 메모했다.

 따라서 말목에 묶인 사형 집행 바로 전의 사진 속 이마의 점은 총살을 위한 마크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적어도 세 방의 총알이 이마를 관통, 머리의 반이 산산 조각난 것으로 보여진다.
    
 윤 의사의 매장지도 사형 집행지 옆에 자리한 일본군 묘지의 쓰레기 하치장 바로 옆 길가 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군이 이처럼 윤 의사를 쓰레기 하치장 옆 길에 매장한 이유도 윤 의사의 유골을 한국인이나 반제 동맹에 도난 당할 것을 우려, 제 2의 3.1운동과 같은 반일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묘지 관리인이 관리소에 위치한 상태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윤 의사의 시신을 매장한 것으로 추측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의 해외에서 우리민족의 독립운동방해가 고조되고 이로 인해 해외 독립운동이 빛을 잃어가던 때인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40분경 홍구공원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들어가 미리 준비한 도시락폭탄(가로16.4㎝ ×세로10.3㎝ ×4.3㎝)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 등 수십명을 살상케 해 대한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으며, 곧장 체포돼 일본으로 압송, 군법에 회부돼 사형을 언도 받고 같은 해인 12월 19일 오전 7시 20분경 총살형에 처해졌다.  

 한편 윤 의사가 사형 당할 당시 묶여 있던 말목 이라며 현재 윤봉길 기념관에 전시된 말목은 증언과 사진을 통해 가짜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의 사진은 밑이 뭉툭한 형태이나 전시된 말목은 뾰쪽한 형태임이 당시 윤 의사 유골발굴에 참여했던 박기동(84세)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 의사의 폭탄으로 사망한 시라까와 대장의 피 묻은 옷은 현재 일본 야스꾸니 신사에 전시돼있지만 우리나라는 윤 의사의 모든 유물을 도난 당하고 말목 마저 분실돼 대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6 Comments
2008.06.17 15:42  
그나마 이제라도 제대로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草阿(초아) 2008.06.17 16:46  
늦었지만, 진실이 밝혀져 다행입니다.
fabiano 2008.06.17 21:14  
아마도, 이보다 더한 것도 일본의 어딘가 묻혀 있을 듯...
fabiano 2008.06.17 21:15  
모든 정황으로 보아 일본엔 엄청난 비밀이 묻혀져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안익수 2008.09.08 08:06  
그래도 일본인중 양심적인분들이 꽤많군요. 저는 가끔 이런생각을합니다. 만약 우리가 일본을 지배했었고 일본인중 안중근의사나 윤봉길의사 사람이있어 우리측 요인을 암살했다치고 만약에라도 누군가 그들-일본판 윤봉길등등-을 옹호했자치면  아마도 쪽발이편입네 매국노입네 벌떼처럼들고일어나겠죠 그런면에서는 일본이 조금 관대하지않나봅니다 물론 남의나라를 강점한 일본편을 든건아닙니다.그저 순개인적인생가가입니다.
fabiano 2008.09.08 09:00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물의 이치가... 냄비 끓듯, 우~하면서도 또한 저력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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