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추억의 저 멀리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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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저 멀리에.....(18)

fabiano 0 1191  

*  * 슬픈 나날들(7) *  *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궂은비는 계속 내렸고 할머니가 그토록 우려 했던 일이 또 벌어졌다.

마루 끝 뜨락 위로, 마루로, 안방 흙 담벼락을 타고 초가지붕이 썩어 커피색으로 변한 시커먼 빗물이 사방에서 흘러 내렸다.
 
할머니와 나는 서러움을 삭일 시간도 없이 부엌에서 넓은 양재기며 양푼 세숫대야 등 큰 그릇을 모두 동원해  떨어지는
시커먼 빗물을 받아 내야했다.

사방에 받쳐놓은 그릇위에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정적을 깨며 처량하도록 슬픈 소리를 내고 있고  무너진 흙 담 위로
비가 계속 내려  담 윗모서리를 서서히 뭉개 뜨리며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할머니와 나는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내리니 집안은 더욱 적막 한 침묵 속에 잠겨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비는 멎었지만 밤중에 비가 더 내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시커먼 빗물이 벽을 타고 흘러 내려 폐가처럼 우중충한채, 
을씨년스런 모습을 한 텅 빈 집안에서 할머니와 단둘이서 잠을 자려니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이 참담한 상황에 작은 아버지는 어디 가시고 안오시는 걸까?...
가뜩이나 서러워하시는 할머니에게 작은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 볼 수도 없고....이럴 때 엄마라도 옆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
이 생각 저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장마철 습도 때문에 온 몸이 땀에 젖어 끈적끈적한 불쾌한 밤은 깊어만 가는데  할머니는 말없이 뒤척이는 나에게
설렁설렁 부채질을 해 모기를 쫓아주시며 나의 자그마한 등을 어루만져 주셨다.
 
가끔씩 정적을 깨뜨리고 새는 곳에  받쳐둔 양푼위로  “뿅, 뿅”... 방울마다 다른 소리로 묘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처마 밑 낙수 물이 파놓은  작은 물웅덩이 위로  칙칙거리며 떨어지는 지시랑 물소리,  바람이 부는지 감나무 잎에
고였던  빗물이 소나기가 시작될 때와 같은 소리로 후두둑거리며 떨어져 가뜩이나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한 여름밤의 공허한 심정을 더욱 심란하게 했다.
 
비가 갠 뒤, 물이 가득 고인 울밑의 논구렁에선 캄캄한 밤의 정적을 깨며 제 세상을 만난 듯, 예나 다름없이 맹꽁이가 쉴 새 없이 울어 제꼈다.
 
전에는 그 소리가 정겹고 감미로운 노래소리처럼 들리던 것이 지금은 우리 집의 서러움을 대변 해주려는 듯 구슬픈 소리가 되어
구성지게 가슴 속을 헤집듯 파고 들고 있었다.
 
수 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장마철이 되면 그 옛날 그 충격적인 장면들이 생각나고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날 밤의 초라한 모습들이
떠올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웬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지고  비오는 그 자체가 이유없이 쓸쓸해지며 우울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있는 날 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작은 아버지께서 갑자기 대구에 계신 엄마를 만나러 가시자고 하여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따라나섰다.
 
엄마를 만나러 가신다는 작은 아버지는 곧장 대구로 가시질 않고 볼 일이 있으시다 며 김천에 들러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가게 됐다.
 
철없는 꼬맹이는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냥 즐거운 일인데 작은 아버지께서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몰라도 그곳에서 난생 처음 극장이라는 데를 데리고 가서 영화구경도 시켜 주셨고 좀처럼 먹기 힘든 맛있는 자장면과  과자도
많이 사 주시니 그저 좋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하여 대구에 도착했다.

고모님과 함께 집을 찾을 때 보다 고생도 덜하고 더 빨리 엄마가 계신 집을 찾았는데 작은 아버지는 대문 초인종을 누르시고는
나만 들어가서 엄마를 모셔 오란다.
시키는 대로 하니 엄마가 대문간에 나오셔서 작은아버지와 무어라고 말씀을 나누신 후, 잠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오신 엄마는
꽤 많은 돈을 작은 아버지께 건네주셨다.
 
작은 아버지는 그길로 나와 함께 되돌아 나오셨다 .
나는 너무 의아해 하며 왜 엄마가 계신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가느냐 고 하니 너도 학교에 가야 되고 작은 아버지도
시간이 없으시다며 빨리 가셔야 된다고 하셨다.
 
잠시 만났다 헤어져야 하는 엄마를 뒤돌아보며 또다시 기약 없이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울먹이는 나에게
어서 가라며 손짓을 하시며 조금만 참고 있으면 곧 집으로 오신다고 촉촉이 젖은 눈으로 힘없이 손을 흔들어 보이셨다.

나는 그날, 엄마가 흘리시는 그 눈물의 의미도 모르는 채, 세월은 흘러갔고 엄마한테 다녀온 지  며칠도 안되서 
작은 아버지마저 말없이 어디론가 집을 나가시더니 그 후론 영영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해 늦여름에 태풍 사라호가 경상도와  대구 쪽으로 상륙하여  엄청난 농작물 피해와 인명피해를
내고 지나갔다.
 
사라호 태풍 때문에 경상도 일대의 사과밭은 거의 다 떨어졌었다.

태풍이 지나간지 얼마 안 되던 어느 날,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은 엄마가 돌아오셨다.
 
막대한 태풍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얼마라도 건져보려고 그런대로 상태가 좋은 떨어진 풋사과를 주워다 팔게 되었고 
그 바람에 엄청 싸다며 한 보따리나 사들고 아주 집으로 돌아오셨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집에선 불길한 일들이 계속 됐으나 나는 일단 엄마가 내 곁으로 돌아오셔서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안정이되어 제일 좋았다.

가끔씩 우리 집에는 낯선 손님들이 오갔고 때로는 그 손님들과 고성이 오가며 어머니와 다투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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