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추억의 저 멀리에......(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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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저 멀리에......(17)

fabiano 0 1356  

*  * 슬픈 지난날들(6) *  *

우리 집은 전과 변함없이 매일같이 할머니의 한숨소리가 멎을 날이 없었고 작은아버지는 어딜 다니시는지
농사일도 겨우 하시며 외출이 잦으시다가 어쩌다 집에 오실 때는 술이 곤드레, 만드레 되어 들어오셨다.

그해 여름은 유별나게 덥기도 하고 장마가 길어 비가 많이 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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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하면 이내  흙먼지를 흩날리며 시원한 바람이 불고  “후두둑 ,후두둑” 하며 비가 쏟아졌다.
 
그  당시 나는 비 오는 날을 무척 좋아했다.

비만 오면 공연히 우산을 찾아 쓰고 우산 위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즐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옷이 젖는것은 조금도 아랑곳 않고 길바닥이던 작은 도랑이던 철벅대며 놀기를 좋아했고 비가 와서 밭 가의 배수로로 흘러넘치는 빗물을 막아 작은 뚝을 쌓고 좀 아래쪽에 또 다른 둑을 쌓아놓고는 윗 둑에 고인 물을 갑자기 터서 아래 둑이 얼마나 버티다 무너지는지를 보며 노는 걸 무척 좋아했다.
 
철없는 꼬맹이는 비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이 공부를 한답시고 마루에 책을 펴 놓고 배를 쭉 깔고 엎드려 비가 쏟아지면서 빗방울소리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대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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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텃밭의 넓적한 토란잎과 흙담장 위를 기어가듯  뻗어가는 호박넝쿨의 호박잎을 두드려 드럼 소리를 내고 감나무 잎, 콩잎을 두드려 작은 북소리를,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지시랑 물 소리, 온갖 사물을 스치며 내는 바람소리, 천둥소리, 감 나뭇잎우산을 둘러쓰고 엄마가 떠내려간다며  슬피 우는 청개구리 소리까지 하모니를 이루면 토담 밑에  줄을 맞춰 늘어선 옥수수가 흥겨운 율동으로 두 팔을 휘저으며 멋진 군무(群舞)를 추어댔었다.

아무 생각 없는 꼬맹이는 나름대로의 낭만에  빠져 있는데  어느새 소리 없이 내 옆으로 다가오신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혹시라도 지붕이 샐까봐 걱정이 되시는지 조용히 먹구름이 두텁게 깔려 컴컴해진 하늘을 쳐다보시며 혼잣말로 한숨 섞인 푸념을 하셨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가을 남들은 모두 새 볏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새로 덮었으나  우리 집은 그걸 하지 않아 초가지붕이 잿빛으로 변한데다 군데군데 고랑이 생겨나고 버섯대가 길고 갓이 조그마한 시커먼 버섯이 돋아나며 썩고 있어 지붕이 새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신다며 걱정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근심어린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턱을 고이고 엎드려 억수같이 비가 내려  수채 구멍으로 미처 빠지지 못한 빗물 때문에 온 마당이 연못이 되어 흥건히 고인 물위로 처마밑 지시랑 물과 빗방울이 만들어낸 공기방울이 무수히 수채를 향해 떠내려가면서  어느 공기 방울이 터지지 않고 오래 버티며 더 멀리 떠내려가는가를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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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우~ 루~ 룩 !, 쿵 ! 쿵 !"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높다란 담배 건조실이 이상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힘없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그것 역시 새 이엉을 얹지 못해 걱정하시던 할머니의 우려가 적중했던 것이다.

집안에 계셔야 할 작은 아버지는 어딜 가셨는지 며칠째 보이지 않으니 할머니와 나는 그저 이 맹랑한 현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 보아야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건조실 안엔 허접한 물건들 뿐 이었지만 무너진 건조실 흙벽돌에 모두 묻혀 그것마저도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할머니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무너져 내려 폐허로 변한  들쑥날쑥한 건조실 흙담 위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쳐다보고 계시다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싹 마른 가냘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하셨다.

나는 아직까지 할머니가 그렇게 쓸쓸하고 초라하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우시는 것을 한번도 본 일이 없어 순간 당황 하여 그저 할머니를 달래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기껏 할머니 치마폭을 잡고 흔들어
대며 한다는 짓이 "울 지 마!~,할 머~니!~, 우~ㄹ 지~ 말란, 말 이 야~이~ㅇ, 잉 잉,"
하고는 나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서러움을 참지 못하신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어 방문을 닫으시고 달래는 나를 잡고 한동안 현실을 개탄하시며 어린애처럼 엉엉 목을 놓아 우셨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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