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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 남침에서 휴전선까지(2)

fabiano 6 2669  

북진(1950. 10. 1) 및 평양 입성(1950. 10. 19) 

  서울 탈환 후 맥아더 원수는 1950년 9월 30일 적에게 최후의 항복 권고를 하였으나, 적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저항해왔다. 이에 UN은 북진을 결정하였고, 국군 제1군단이 10월 1일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한 이후 중부 전선과 서부 전선에서도 38도선을 돌파, 북진을 계속하였다. 적은 주력을 청천강선에 재배치하고 대동강선에서 지연전을 전개하였으나, 국군 제1ㆍ7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은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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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서 최초로 38도선을 돌파하면서 기념표지판을 세우는제3사단 장병들 (1950. 10.1), 정부는 1956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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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광장에서 평양 탈환 환영을
받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195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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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교에서 미 제1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전황을 보고하는 백선엽
제1사단장(1950.10.20)

선

 

한ㆍ만국경 진격(1950. 10. 20~11. 24) 

  동부 전선으로 진격한 국군 제1군단과 미 제10군단은 10월 10일 원산을 탈환, 17일에는 함흥을 거쳐 11월 25일 청진에 입성하는 한편, 미 제2사단 17연대는 11월 21일 한·만 국경선상에 있는 해산진까지 진격하였고, 중부 전선으로 진격한 제7사단은 10월 21일 순천, 제8사단은 10월 23일 덕천, 제6사단은 10월 26일 최초로 한·만 국경선상의 초산에 돌입하여 국토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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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만 국경 진격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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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평양 북방 숙천과
순천 지구에서 공정 작전 실시(195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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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하는 국군에 환호하는 청천강 연변의 회천 주민들(195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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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 국경선인 초산까지 진출하는데 최선봉의 영예를
얻은 제6사단 7연대 병사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고
있음 (1950. 10. 26)

선

 

중공군 개입(1950. 10. 25)과 1ㆍ4후퇴(1951. 1. 4) 

  UN군이 평양, 함흥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무렵인 1950년 10월 19일경부터 중공군은 은밀하게 압록강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중공군 제4야전군은 서부 지역에서 1950년 10월 25일 회천 지역의 국군에 대해 공격을 실시하였고, 제3야전군은 동부 지역에서 사상 유례없는 인해전술로 UN군을 공격해왔다. 이에 UN군은 12월 4일에는 평양을 내주고 2월 14일에는 평양을 내주고, 12월 14일에는 흥남 철수 작전을 전개하였으며, 12월 31일 38도선을 경유, 1951년 1월 4일에는 다시 서울을 포기, 전략적 후퇴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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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개입 경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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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공세를 위해 한·만 국경을 넘어서는 중공군 제4야전군 (1950. 10) 이들은 6.25전쟁 발발 2개월전인 4월에 화남에서 만주로 이미 전개되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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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얼음이 채 녹지 않은 대동강을 건너 월남하는 북한 주민들 (1950. 12.3)

선

 

서울 재 탈환(1951. 3. 15)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던 아군은 1951년 1월 오산-제천-삼척을 연결하는 선에서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고, 1월 25일 대 반격을 개시하여 서부 전선의 미 제1군단은 2월 10일 인천-김포를 거쳐 예하의 국군 제1사단이 3월 15일 수도 서울에 입성하였다. 중부 전선의 미 제9구간은 3월 15일 홍천을, 동부 전선의 국군 제1군단은 3월 27일 양양으로 진출하였으며, 3월 말에는 현재의 휴전선을 형성하여,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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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 쟁탈전의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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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도하 마포로 진격하는
제1사단 (19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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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쟁탈전 중 밀려오는 중공군을
향해 산 정상 사격을 가하는 국군

선

 

휴전 회담(1953. 7. 27)

  1951년도에 접어들어 미·소는 더 이상의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합의하여, 동년 7월 8일 예비 회담에 이어 7월 10일부터 온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성에서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으며, 그 후 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겨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군사분계선과 전쟁포로 교환 문제로 난항을 거듭하다가 1952년 7월 27일 휴전 협정에 조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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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측, 공산측 연락 장교들이 휴전 회담 중 판문점에서 지도위에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있는 모습 (195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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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 포로교환 협정 협의
(1953.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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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를 끌어온 휴전 협정이 조인되는 역사적 순간 (1953. 7.27)

6 Comments
은하수 2008.02.10 08:13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지요 ,,
fabiano 2008.02.10 08:59  
그런데도 지난 10년간 퍼주기만 한 결과가?.....
mulim1672 2008.02.10 10:18  
북침으로 잘못 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fabiano 2008.02.10 13:30  
그러니까, 친북,반미를 외치는 녀석들은 죄다 빨갱이 아니면 사주받은 넘이거나, 간첩입니다. 10년동안 뿔갱이들이 요소요소에 뿌리를 내렸을 터이니....  (>_
뿔따구 2008.02.10 22:47  
깨구리 개 쉐이
fabiano 2008.02.10 22:56  
좌우간, 저놈들땜에 한많은 피난살이를 했응께....에구...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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