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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妓生 - 1967.

fabiano 8 2606  

학사기생 - 어느「멜로드라마」의 제목 아닌 생생한 현실속의 이야기다. 역경을 디디고 일어선 방년 24세, 한 아가씨의 의지가 오히려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신파조(新派調)의 눈물보단 냉엄한 현실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이 아가씨의 일기장을 뒤져 보면 -

67년 7월 ○일

집에 돌아오니 11시 20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건너왔다. 옷을 갈아 입으니 벗어놓은 옷이 마치 뱀껍질처럼 징그럽다. 왈칵 울음이 솟구쳤다. 울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끝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선운각(仙雲閣) - 흔히들 기생「하우스」라고 하는 곳의 기생이 되어버린 내 자신이 초라하다. 내일 아침 학교에 어떻게 나가나? 이제 여섯달이면 졸업이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의 차이가 몸서리치도록 무섭다. 오늘로 내 삶은 또 하나의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성도 이름도 낯설기만 한 박은숙(朴恩淑) 세 글자 - 나에게 붙여진 이 새 이름 뒤엔 그림자처럼「기생」이란 두 글자가 따라다닐 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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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도 떨렸을까? 아까 처음으로 곱게 단장하고「유니폼」인 하늘색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손님방엘 들어설 때, 방안에 몇 사람이나 있는 줄도 몰랐었지. 그저 두렵고 떨리기만. 푹 고개를 숙인 채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모두 동문서답. 손님들은 또 어째 그럴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딸 같은 내게 그렇게 짓궂은 질문을.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언니들 이야길 들으니 처음 나오는 애들한텐 대개 그렇단다. 몸 둘 곳 모르고 앉아 있기 두어 시간. 얼떨결에 받아 쥔「팁」이 2천원. 돈 때문에 나왔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기생충같이 여겨지는 이 불결함.

낮엔 부업 피아노 선생님

밤에는 본업 박은숙 아씨

67년 8월 ○일

아침에 S가 찾아왔다.

밉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계집애. S는 자상히 지난 한 달 동안의 일을 묻고 선배다운 충고를 몇 마디 했다. 생각해보면 묘한 인연이다. 대학입시 공부하러 그 절에 가지 않았던들 S와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럼「여대생 기생」이 되지도 않았을 걸. 서로 외로우니 공부하다 쉬는 틈에 사귀고 보니 정이 들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언니, 동생이 되어 버렸다.

S가 기생「하우스」에 나가고 있는 걸 알기는 대학교 3학년 때. 그리고 석 달 전 학교를 그만두느냐 마느냐 할 때 이 집을 제의한 게 바로 S였으니. 한 달이나 망설였다. 천하고 밑바닥 인생이라는 느낌이 강박관념처럼 머리에서 뱅뱅 돌았다. S와 두어 시간 얘기를 하고 나니 한결 가슴이 후련하다. S는 역시 좋은 계집애다. S에게서 그녀의 의지 같은 걸 더 배워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레슨」시간이 됐기에 S를 보내고 아이네 집으로 갔다. 모여대 기악과 졸업반 학생이란 것만 알 뿐「그 집」얘길 모르는 아이 어머니는 그저 상냥스럽기만 하다. 좀 극성이긴 하지만.

두 시간 아이와「피아노」앞에서 실랑일 하다 보니 전에는 몰랐던 즐거움이 느껴졌다. 전엔 신경 쓰이고 피곤하기만 하더니 이젠 오히려 아이와「피아노」치는 시간이 뭔지 모르게 즐거웠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는「레슨」이 끝나자 한 곡 쳐달라고 자꾸 조른다. 어젯밤 마지 못해 마신 두어 잔 술 때문인지 머리가 무겁긴 했으나 꼬마의 청을 들어주었다.

「모짜르트」를 한 곡. 오래간만에 속이 후련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버스」속에서도 연방「모짜르트」를 흥얼거리던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을까?

67년 10월 ○일

꼭 석 달째다. 이젠 손님방에 들어가도 떨리는 버릇은 없어졌다. 모르는 사이에 나도 동화되어 가는 것일까?「레슨」을 끝내고 미장원엘 다녀오니까「마이크로·버스」가 떠날 5시가 다 되었다. 통근「버스」속에서 나는「핸드백」속에 든 세 아이의「피아노·레슨」값 1만 5천원과 오늘 받을 월급 5만원의 지출 내역을 곰곰히 생각한다. 생각하던 것보다 늘어난 내 쓰임새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팁」으로 받은 1~2천원은 미장원 가고「택시」타고 하면 하루 용돈으로 다 없어지고 어쩌다 좀 두둑한「팁」을 받아도 공돈이란 생각 때문인지 친구들과 구경가고 점심 먹고 나면 그만.

손님이 적어 월급만 받고 일찍 돌아왔다. 어머님에게 가니 8살짜리 막내와 어머니가 반겨 맞는다. 다 큰 딸년이 내놓은 3만원에 어머니는 또 치맛자락으로 얼굴을 가리신다.

『얼마나 고되냐』는 엄마의 말에 찔리는 듯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레슨」을 위해 할머니와 방을 따로 얻어 나가 살고 있는 것으로만 아는 어머니. 아무리「피아노」를 가르쳐도 7식구의 생활비는 못 된다는 걸 모르시는 선량한 엄마가 사실을 알아 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철없는 막내가 20가지 색나는「크레용」사게 2백원 달라기에 내주었더니 좋다고 매달리며『큰 언니가 최고』란다. 그「최고」의 말 뒤에 숨은 이야길 언젠가 저 애가 알게 되면 언니를 어떻게 생각할까?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생활비로 2만원을 내놓았다. 할머닌 이 큰 손녀가 자랑스러워 동네방네 효녀라고 떠들고 다니신다.

이부자리 속에 누워 곰곰히 생각했다. 이젠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누가 무어라 손가락질 해도 나는 떳떳하고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은 보람을 느낀다.「백」속에 남아 있는 1만 5천원은 내일 아침 우선 은행에 달려가 예금해야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화려한「리사이틀」에 나가「모짜르트」를 치고 있었다.

68년 2월 ○일

졸업이다. 내 생의 가장 즐거웠고 슬펐던 기억들이 담긴 4년의 맺음이다. 검은「가운」을 입은 이 많은 동창들이 저마다 숱한 사연이 담긴「캠퍼스」를 떠나길 서러워 한다. 엄마와 몇몇 이웃들의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끝없이 울었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외쳤다.

『은숙아 - 잘했어』

각(閣)에서도 아줌마랑 한바탕 축하연을 벌여 주었다. 그러면서 이젠「여대생 기생」이 아니라 어엿한「학사 기생」이란다.

아직 학교에 나가고 있는 아이들은 내 졸업이 무척 부러운 모양이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언젠가 S가 내게 들려주던 식으로 마음을 굳게 가지라고 일러주었다.

이젠 나도 제법 고참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단골 손님이 두 패가 왔을 땐 아직도 쩔쩔매지만 웬만한 농이나 유혹은 적당히 넘겨버리는 여유가 생겼다. 어쩌다 단골 손님들과 낮에「데이트」를 할 정도로 -「데이트」라야 점심을 먹거나 영화구경을 하는 게 고작이지만 - .

외국손님이 60%가 넘는 이 곳 생활에도 익숙하고 영어회화도 자신이 붙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를 관광요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에 알맞은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기에 무척 노력도 하고 혹시 몸에「기생티」가 밸까 제일 두려워 한다.

이제 졸업했으니 목표는 하나. 외국유학을 가는 거다. 그래서 맘껏「피아노」공부를 할 테다. 그래서 박은숙이란 이름이 결코 천하지 않았던 것임을 언젠가 알려 주리라.             <Z>

[ 선데이서울 68년 9/29 제1권 제2호 ]

8 Comments
고운 2005.10.31 13:12  
우리보다 몇살위의 연배되시는 어느여인의 파란 만장한 인생의 단면 을 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옛날엔 모두가 가난해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지요 ,취직해도 월급 이라야 쥐꼬리만큼 되고 그나마 월급이 정해진 직장은 좋은 직장 이였지요 대부분 그냥 밥만 멱여 주는걸 보수로 생각 하고 변변치 못한 기술이나 장사 노하우를 익히는게 고작 이고 그게 월급 이였으니까요지금 우리는 그때 비하면 너무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지요타이머신을 타고 먼 나라 여행을 하고온 기분 입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fabiano 2005.10.31 17:19  
그 시절에 본인은 부모님 잘 만난 덕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윗글의 주인공인 박은숙씨는 기생 노릇하며 공부를 하였고 일부는 창녀,니나노집 작부 노릇을 하며 공부하는 것도 봤습니다.친구 고운이가 말했듯 그 시절엔 너나 할 것 없이 호구지책에 힘들었었지요.
어여쁜 나 2017.02.20 13:37  
옛날 호스티스들도 알고보면 학사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적지않게 널려있었네요?
fabiano 2017.02.21 15:23  
여성들의 취업이랬자 고작, 공장, 식모 등이었으니...배웠다는 여성들은 사무실이나 비서직 정도.
어여쁜 나 2017.06.21 11:10  
중동권지역이야 남자들과 접촉이 일체불가능하므로 주로 여학교나 여성전용병원 혹은 여성전용회사가 아니면 취직이 불가능했으니....!!!!
fabiano 2017.06.28 13:08  
중동지역은 여성들의 권리나 지위가 여전히 낮을 것으로 봅니다.
어여쁜 나 2017.10.23 18:13  
옛날미녀들과 요즘미녀들을 비교해볼때 옛날미녀들은 그야말로 직업을 불문하고 슬프게 살았죠~!!!! ㅠㅠㅠㅠㅠ
fabiano 2017.10.24 21:24  
옛적의 그 시절은 恨이 많은 세월이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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