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site-verification: naverf83ad7df1bcc827c523456dbbc661233.html 江南曲 / 許蘭雪軒
홈 > 블로그 > 내 블로그 > 그림, Flash essay
내 블로그

江南曲 / 許蘭雪軒

fabiano 0 1275  
1514971934454471.gif 
              허난설헌 친필과 앙간비금도


江南曲 / 許蘭雪軒

人言江南樂(인언강남락)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

사람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나,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고있네.
해마다 이 포구에서
애타게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1514971935906506.jpg
                                       墨 鳥 圖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명종 18)∼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에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허난설헌은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에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다.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다.

허난설헌은 15세 무렵에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원만한 부부가 되지 못하였다. 남편은 급제한 뒤에 관직에 나갔다. 그러나 가정의 즐거움보다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풍류를 즐겼다. 거기에다가 고부간에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다.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에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의 비극이 연속되었다.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 묵)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계속된 가정의 참화 때문에, 허난설헌의 시 213수 가운데에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허균이 허난설헌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난설헌집≫은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 (文台屋次郎)가 간행하여 애송되었다.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국한문가사 〈규원가 閨怨歌〉와 〈봉선화가 鳳仙花歌〉가 있다. 그러나 〈규원가〉는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지었다고도 한다고 하고 〈봉선화가〉는 정일당김씨(貞一堂金氏)가 지었다고도 한다.



0 Comments
Hot

인기 그 시절이 생각나누나

댓글 0 | 조회 1,474
Hot

인기 작가미상의 그림(4)

댓글 2 | 조회 1,653
Hot

인기 작가미상의 그림(3)

댓글 2 | 조회 1,704
Hot

인기 작가미상의 그림(2)

댓글 0 | 조회 1,729
Hot

인기 작가 미상의 그림(1)

댓글 4 | 조회 2,531
Hot

인기 그림같은 사진

댓글 0 | 조회 1,574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57 명
  • 오늘 방문자 2,461 명
  • 어제 방문자 2,400 명
  • 최대 방문자 14,296 명
  • 전체 방문자 1,345,538 명
  • 전체 게시물 11,133 개
  • 전체 댓글수 35,742 개
  • 전체 회원수 72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