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원고지시대 작가들] 時의 자유정신 김수영… 분신으로 살아온 여동생 수명
fabiano
사진으로 보는 小說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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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0 22:34
[원고지시대 작가들] 時의 자유정신 김수영… 분신으로 살아온 여동생 수명씨 |
[2007.05.20 17:40] | ||
김수명씨는 1955년 창간된 월간 '현대문학'에 입사, 초대 편집장 오영수씨에 이어 2대 편집장을 20년 가까이 지냈다. 문예지로서는 국내 최초의, 그리고 최장기 여성편집장이었다. 필화사건으로 유명한 남정현의 '분지'도 그의 손을 거쳐갔다. 1969년 2월 그는 '분지' 원고를 받아 교정을 본 뒤 '현대문학' 3월호에 실었다. 김씨는 주간인 조연현과 함께 중앙정보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지요. 남산 밑 명보극장 근처의 안가에서 며칠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관이 그러더군요. 이까짓 잡지사 기자를 왜 하느냐고요. 그러면서 차라리 같이 일하면 어떻겠냐고 농담까지 하더군요. 아침에 소환되면 진을 다 빼놓고 한밤중에 내보냈는데 그게 다 전략이었지요. 몸이 녹초가 되었으니 다른 곳에 가서 조사받은 내용을 털어놓을 새가 없이 귀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어요." 김씨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60년대 문단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미모와 지적 매력이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젊었을 적 미모를 어림하기란 어렵지 않다.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연정을 품었고 그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 오빠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당시 숱한 문인의 사랑방이었던 광화문통 아리스 다방이었다. 박용래 전봉건 김종삼 유정 안동림 이호철 유종호 최인훈 박재삼 이병주 고은 염무웅 김치수…. 삼삼오오 진을 치고 앉았다가 기지개를 켜며 건너간 곳은 맞은 편 골목의 단층 기와집이 처마에 처마를 맞대고 있는 허름한 대포집이었다. "내가 치기가 없어요. 오빠랑 함께 술좌석에 앉아있다가도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났지요. 오빠는 고지식하다고 지청구를 날렸지요. 그때는 도봉산 기슭에 집이 있었는데 돈암동까지 가야 시외버스를 탈 수 있었지요. 집에 도착하면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더군요. 그래도 힘든줄 모르고 시외에서 시내로 꼬박꼬박 출퇴근을 했지요." 요즘엔 동년배 문인들의 부고가 자주 들려온다며 소설가 이호철씨와 1년에 한 두 차례 만날 뿐 문단 사람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다고 귀띔했다. "최근 결심한 게 하나 있는데 조카들에게 유언을 할까봐요. 내가 죽거든 분골해 김수영 시비가 세워진 잔디밭에 뿌리라고 말이죠. 시비 뒤쪽 어디쯤.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풀도 잘 자랄거고요."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에게 김수영은 혈육 이상의 절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자신을 활활 태운 오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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