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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박기당 3 : 바다의 독수리

fabiano 0 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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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독수리 문고에서 나온 바다의 독수리 초판본. 표지는 박광현이 그렸다
65년 제일문고에서 출간된 바다의 독수리 재판. 이후 68년 삼판이 계속 발행됐다

1961년 발표된 기당의 바다의 독수리는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지는 둘 다 박광현의 그림으로 되어 있다. 당시의 표지는 칼라인쇄의 기술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시절이라 잘 어울어진 삼색분해가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 어릴 때부터 인쇄기술을 익혀 만화 출판계의 원색분판 일인자로 소문을 날리던 박광현이 직접 표지삽화를 그리고 인쇄까지 맡아 했다한다. (수동으로 색깔 배합)

기당의 그림체와는 상당히 다른 그의 그림체는(단순, 간결) 이 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다의 독수리는 임진왜란 비사라는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는데 기당이 늘 존경해 오던 충무공의 무용담을 바탕으로 각색한 극화체 만화로 당시의 조선, 중국, 일본이 조선땅에서 일으킨 임진란을 내용으로 바다에서 싸움을 벌이고 여기에 이순신 장군까지 출연을 시킨다. 이전 한 일간신문에도 연재되었고 56년도 야담 잡지에 삽화가 김영주가 그린 바다의 왕자라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가 있으나 당시에는 신문소설, 잡지, 또 일반대중소설이던 노인들이 즐겨 읽던 임진록 딱지본들이 많이 각색되어 나왔다. 그러나 기당은 단순한 충무공의 이야기가 아닌 한 주인공 소년을 주제로 그가 겪은 시대의 이야기를 만화라는 아주 적절한 매체를 이용해 극화체 이야기 형식으로 그 재미를 더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1515067501196637.jpg 평범한 고래잡이 선원 상철은 외국(해적)야다로의 습격을 받고 간신히 바다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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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중국 무역선이 상철을 발견하고 구출한다(가운데. 백사낭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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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두목 야다로와 부하 스키하치. 너무나 악당같은 그의 모습은 오히려 멋스러움

이야기 줄거리는 지금의 남해, 거제도 부근에서 고래잡이를 하는 상철이 가족이 고래사냥을 나갔다가 일본 해적선을 만나 배를 갈취 당하고 상철이 아버지를 비롯한 선원들은 노예가 된다.

그러나 운좋게 상철이만은 탈출하여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중국 무역선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상철은 그 배의 주인인 중국소녀 백사낭낭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해적들에게 복수를 준비한다.

상철은 그곳에서 해적들에게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무기 개발과 철갑선을 만들어 해적들과 큰 싸움을 벌여 승리하고 선원들을 구출하나 아버지는 일본 대마도로 끌려간 사실을 알고 다시 구출길에 오른다.

아버지 만중이는 그곳에서 배신했던 용수리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상철은 아버지를 구출하고 백사낭낭과 함께 해적 야다로 두목을 처치하고 이순신 장군 배와 합류하여 외적을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이 작품을 아주 감명깊게 읽고 그 만화에 나오는 그림을 공책 여기 저기 따라 그렸던 기억이 새롭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뚜렷이 기억하는 것은 당시 3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전투장면(노량해전)과 더불어 거북선의 전투장면 그림이 실려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이 만화에서 주는 생생한 그림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극중에 주인공 상철이 역시 일본해적들에게 고기잡이배를 빼앗기고 중국인들에 구출되어 철갑선을 구상, 제작하여 후에 일본배와 싸움을 벌이고 일본 해적을 쫓아 내는 장면의 연출은 당시 어린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재미있고 통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몇해전 교보문고에서 일본 역사 교과서를 7-8종 전시한 적이 있는데 그 중 거의 대부분이 풍신수길이 지배했던 당시 임진란의 조선 침략과정을 상세히 지도에 도표까지 넣어 설명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은 거북선의 전투장면을 리얼하게 실어 깜짝 놀랬다. 그 거북선의 전투장면 그림은 얼마나 잘그려져 있는지 내가 지금껏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거북모습이나 철갑, 포 등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썩 잘된, 아주 정밀하게 삽화체로 묘사되어 있었다. 우리의 교과서나 동화책, 그리고 박물관 안내지에 삽화로 그린 그림 보다도 정확하게 그린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그뒤 백과사전이나 다른 여러 가지 거북선에 대한 그림자료를 대별해 보았으나 역시 성의부족으로 그 모습이 제각기 다다르고 고증자료없는 엉터리 그림들만 많았다.

조선의 역사, 그리고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최고의 영웅으로 존경하고 추앙받는 충무공의 위대한 발명품 거북선이 일제중학 교과서에 실린 그림보다 정확하지 않게 나열되고 있다니 참으로 실망스런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당의 바다의 독수리에 나오는 상철이가 제작한 철갑선 독수리호는 지금 곰씹어 보아도 참 잘 그려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다의 독수리에 나오는 인상적인 그림은 왜장의 복장이나 중국인들의 의복 모습 등이 지금 보아도 고칠 것 없이 잘 그려져 있는 것 같음은 물론이다. 특히 기당은 일본무사들의 갑옷입은 모습이나 칼을 차고 게다를 신은 모습, 또 그리고 작으마한 키에 훈도시를 걸친 리얼한 모습이 많은데 이것 역시 그가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에서 직접 보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사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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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철은 백사낭낭과 함께 철갑선(독수리호)를 만들고 외구, 해적들과 싸움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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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 용수리의 도움으로 상철아버지 만

중은 탈출을 시도한다. 이 책에서 가장 좋
아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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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3-1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린 이순신
장군-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은 글과 김태
형 선생이 그린 거북선. 너무나 단조롭고.
감동을 주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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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같은 시기에 그려진 전투장면. 상철
과 백사낭낭은 이순신장군을 도와 외구를
물리친다. 당시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그림과 비교하면 얼마나 멋진 그림들인가?

바다의 독수리는 당시 어린이는 물론 중고교, 고학년 학생들이나 일반 어른 독자도 많았다고 청량리 인근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했던 김인욱씨는 전한다. 김인욱씨는 60년대 초반부터 70년도 중반까지 15년간 만화가게를 운영했었다. 아이들이 빌려가면 자꾸 책을 찢어와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때는 만화방에서 책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간혹 책을 소유하고 싶은 아이들이 그림 좋은 부분을 오려가지려고 한일도 있었고 아예 잃어 버렸다고 하고 책값을 가져오는 아이들, 이들은 대부분 단골손님으로 후에 만화가가 되어서 찾아온 아이도 있었다 한다.

박기당의 책들 가운데 지금 껏 가장 여러권 발견된 것이 몇가지 있다. 만리종(85년작), 눈물의 호궁(60년), 바다의 독수리(60년)등이 그나마 몇몇 권 씩 만날 수 있는데 이 책들은 기당의 오백여 편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라 그런지 잘 보관되어있다.

하지만 500여권의 많은 책을 발간했었다며 다작의 작가였다하나 지금껏 그의 책을 보아온 것은 30여권에 지나지 않으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들 역시 만화를 좋아했던 매니아가 고이 간직한 것 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아껴 온 오육십대의 원로작가들이 본인의 작품은 이사 갈 때마다 버리면서도 기당의 책만큼은 교과서처럼 소중하게 잘 간직해 온 덕분이다.

어떻게 지금껏 이 책을 간직하게 되었느냐 사연을 물어보면, 그림이 독특하고 남달라 참고자료를 하려고 간직해온 것이고 이를 토대로 작품을 구성하려고 한 이도 많이 있었다 한다. 한잔술을 마시며 옛이야기를 들으면 당시 만화가 지망생들이 인기작가들을 찾아 문하생이 되고자 편지도 하고 무작정 상경해 작가의 집으로 이불 보따리를 싸가지고 처들어가고 때로는 그림 시험을 보고 문하생으로 기거하게 된 과정은 그 시대 만화가가 되기위해 얼마나 열정적 자세와 만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졌었는지 감동할 수 밖에 없다.

60년대 초판 발행에 이어 65년 재판, 그리고 68년 삼판 제작에 이르렀고 아이들은 물론이지만 나이들은 어른들도 많이 좋아했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후에 표지는 기당이 직접 그렸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그의 가장 절정기였을 것이다.



                                                                                                                                    글 : 오 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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