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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fabiano 0 1298  
누가 나를 알아줄꼬.......관포지교(管鮑之交)

오늘은 친구란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중국의 고전적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무대는 주(周)왕실의 권위가 쇠락하면서 제후국들이 독립적 체제를 구축해가던 춘추시대 초기 제(齊)나라입니다. 제나라의 양공(襄公, 기원전 698-686)은 말하기 민망하지만, 노(魯)나라 궁중에 시집간 여동생과 불륜의 관계를 맺기도 한 흉악한 임금이었습니다. 어느날 변방을 지키던 두 장수가 교대를 안 해 주는데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양공을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들 또한 조정의 공신들에 의해 죽고 맙니다. 이로써 제나라의 임금 자리가 비게 되었습니다.

  제 양공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규(糾), 둘째가 소백(小白)인데, 일찌기 포악한 형을 피해 규는 노(魯)나라에 있었고, 소백은 외가인 거나라에 가 있었습니다. 규를 모시고 있었던 사람이 관중(管仲, 이름은 夷吾)과 소홀(召忽)이었고, 소백을 모시고 있던 사람은 포숙(鮑叔)이었습니다. 임금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왕자는 급히 수레를 몰아 제나라로 향했습니다. 먼저 들어가 임금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무래도 우선권이 있을 것이겠지요.

  관중은 공자 규를 제나라로 먼저 출발시킨 다음, 자신은 경쟁자인 소백이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관중은 소백에게 법통상 형인 공자 규가 당연히 제위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먹혀 들지 않자, 관중은 돌아서는 척하며 활을 쏘았습니다. 활솜씨가 뛰어났던 관중이어서 화살은 정확하게 소백을 맞추었습니다. 소백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관중은 공자 규의 대열에 합세해 느긋하게 제나라로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나라에는 죽은 줄 알았던 공자 소백이 버젓이 왕위에 올라 왕실의 체제를 정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관중이 날린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버클에 맞았던 것입니다. 소백은 관중이 다시 화살을 날릴까 싶어 짐짓 죽은 시늉을 하고 관에 실려 급히 말을 몰아 제나라에 입성했던 것이지요.(이때가 기원전 685년입니다)

  공자 규와 관중 일행은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기회를 엿보려 했으나, 제나라의 체제를 정비한 소백이 군사를 몰고 먼저 노나라를 쳤고, 노나라가 싸움에 지자 공자 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관중과 함께 그를 모시던 소홀도 자결했지만, 관중은 주군을 따라 죽지 않고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소백의 충신인 포숙의 권고를 받은 사신 습붕이 관중을 산 채로 달라고 노나라에 요구했습니다. 일전에 소백에게 화살을 날린 죄를 직접 묻겠다는데야 노나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관중이 제나라로 무사히 돌아 오자 포숙은 그를 등용하라고 소백, 즉 제(齊)의 환공(桓公)에게 간했습니다. 그것도 예를 갖추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재상에 앉히라는 권고에 제환공은 처음 아연했습니다.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사람을 예를 갖추어 일국의 재상으로 삼으라니 말입니다.

  포숙은 그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관중보다 못한 점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정치의 혜택을 주어 그들의 고충을 어루만지는 능력이 그만 못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기강을 세우는 능력이 그만 못하며, 덕으로 백성들을 한마음으로 묶는 능력이 그만 못하며, 제도와 정치를 정비하여 사방에 떨치는 능력이 그만 못하며, 군사적 지휘능력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이 그만 못합니다... 안으로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 밖으로 오랑캐를 막으며 공을 사방에 떨쳐 천하를 안정시키려면 저같은 좁은 능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오직 관중만이 그런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국어(國語)》, 제어(齊語) )
  제 환공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관중의 탁월한 국정 관리 능력으로 제나라는 춘추시대 초기 가장 강력한 패권국으로 맹위를 사방에 떨쳤습니다. 노나라와 회맹(會盟)하고 뺏은 땅을 돌려 주어 신망을 얻고 중원 밖의 오랑캐를 막는 등, 내정과 외치에 걸쳐 든든한 기반을 다져나갔던 것입니다. 정치 경제, 외교 전쟁에 대한 그의 경륜은 《관자(管子)》라는 책에 실려 있어 지금도 그 규모와 깊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때부터 사귄 오랜 친구였습니다.
젊었을 때 관중은 포숙과 같이 생선장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익금은 언제나 관중이 많이 집어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관중을 욕하자 포숙은 이렇게 변호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집에는 딸린 식구가 많다. 욕심이 많아서가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에 관중은 언제나 뒷전에서 얼쩡거리다가 싸움이 끝나면 맨앞에서 걸어오곤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를 욕하자 포숙은 또 이렇게 변호했습니다. “관중이 비겁하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계신다. 몸을 아껴 어머니에게 길이 효도를 다하려는 갸륵한 생각에서이다.” 그리고 장년이 되어 정계에서 그를 둘러싼 잡음이 있을 때마다 포숙은 그를 이해하고 감싸 주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의 <관안열전(管晏列傳)> 에서 관중과 포숙의 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관중(管仲)은 영수(穎水) 근처에서 태어났다. 포숙(鮑叔)과는 어렸을 때부터 사귄 친구로 언제나 사업을 같이 했다. 포숙은 일찌감치 관중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관중이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늘 포숙을 속여 먹어도 포숙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우정을 지켜 나갔다.
그후 포숙은 제나라 공자 소백(小白)을 모셨고,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는데, 결국 소백이 환공(桓公)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규는 자살하고 관중은 붙들린 몸이 되었다. 포숙이 관중을 천거했다. 관중에게 제나라의 실권을 맡김으로써 제환공은 천하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아홉번이나 제후들과 동맹하여 천하의 안정을 이룩한 것은 바로 관중의 경륜이었다. 관중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곤궁하여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금을 내가 훨씬 많이 챙겼어도 그는 나를 욕심많은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군주에게 세번 등용되었다가 세번 다 쫓겨났어도 그는 나를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제대로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에 나갔다가 매번 도망쳤어도 그는 나를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는 늙은 노모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왕위쟁탈전에 지고 같이 모시던 소홀(召忽)이 죽었는데도 나는 포로로 붙들려 욕되게 목숨을 이어가는데도 그는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에 연연해하지 않고 천하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포부가 워낙 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었다.[생아자(生我者), 부모(父母). 지아자(知我者), 포숙(鮑叔)]”  
  이 글의 마지막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은 결미를 잊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뛰어난 재능과 경륜보다도 포숙의 사람 알아보는 혜안을 더 높이 쳤다.”

  이것이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우정의 이야기입니다.  
관중은 그 뛰어난 경륜과 능력으로 제나라로 하여금 천하를 호령하게 했지만 그 뒷면에 그를 알아준 포숙이 없었다면 그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널려 있는 세상에서 평생을 친구를 믿고 자신보다 더 나은 자리에 세워준 것은 참으로 드물고 희귀하며, 또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관중과 포숙의 우정’즉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불러 영원한 우정의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출처   <쏘사랑> 가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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